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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지혜는 나를 현명하게 만들어 줄까? 전호근 <사람의 씨앗> 1. 사람이 다쳤느냐? 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난생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도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칠 만큼 재미난 이야기도 아니고 가슴 불타는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다.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퇴근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다쳤느냐?" 그러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p.17) 즐겨보는 드라마 에 겨울이가 정원이에게 자기 집안의 개판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빠는 가정 폭행범이고 엄마는 아빠한테 맞아서 반병신이 되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정원이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니 탓이 아니야. 니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라고 위로한다. 의 저 구절이 생각났다. 논어는 이천오백 년 .. 2021. 8. 28.
사이보그지만 괜찮지 않아 : 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 1. 아파트 경비원 민수는 1995년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이후 줄곧 의족을 착용한 채 일했다. 2010년 12월 민수는 근무하던 아파트 단지의 눈을 치우다 넘어졌고, 그 일로 의족이 파손되고 말았다. 업무 중 의족이 부서졌기에 민수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산재에 해당된다. 민수의 산재 신청 결과는? # 2. 23살의 무용수 승희는 2013년, 우연히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코스 근처에 있었고, 폭탄 테러에 휘말려 다리 하나를 잃었다. 승희에게 잃어버린 다리는 좀 더 특별했다. 그는 단순히 다리 하나를 잃은 게 아니라 춤을 추며 살아왔던 시간과 앞으로 춤을 추며 살아갈 날들에 대한 꿈을 잃었다... 2021. 8. 24.
무림 최강자가 되기 위한 잎싹의 여정 : 황선미 김환영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은 슬쩍 마당을 봤다. 늙은 개와 역시 늙은 수탉과 암탉, 날기를 포기한 오리 몇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닭장에서 나가기만 하면 마당의 저들을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닭장이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여기서 탈출하기란 불가능했다. 닭장을 들락날락하던 주인을 유심히 관찰한 잎싹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닭이나 알을 낳지 못하는 닭은 낡은 수레에 실려 나갔다. 잎싹의 머리는 번개같이 회전했다. 그날부터 잎싹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았지만, 닭장을 탈출할 수 있다면야. 단식 닷새째가 되니 모가지를 가눌 수 없게 되었다. 다리에 힘도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거, 닭장을 나가기 전에 먼저 죽는 거 아냐?"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 2021. 8. 19.
경계의 시간, 이름 짓기를 희망하다 : 허태준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동네 책방 에 저자의 초청 강의가 있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설레는 마음으로 책방에 갔습니다. 잘 생긴 청년이 와 있었습니다. 마스크 속의 얼굴이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대면으로 하는 북토크는 이제 겨우 두 번째라 많이 긴장된다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존재를 증명받을 수 있다. '대학생', '군인', '직장인', '사회초년생'이라는 말 안에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의 서사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일하는 청년, 대학생이 아닌 이십대, 군인이 아닌 군 복무자였던 나는,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채 경계 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p.6) 책의 부제는 .. 2021.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