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 강광석 외 38인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포항으로 일자리를 옮겨 맞는 첫번째 휴일, 달팽이 책방으로 향합니다. 포항에 작은 책방이라도 있을까 싶어 검색을 했더니, 온통 달팽이 책방만 나옵니다. 큰 책방, 서점, 그냥 책방으로 검색해도 달팽이 책방만 나오는군요. 호기심이 일고, 마침 읽을 책도 떨어졌기에 겸사겸사 나섰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카카오맵이 가르쳐주는 대로 발길을 옮깁니다. 철길을 건너 주택가가 나옵니다. 지도상으로는 다와가는데 도무지 책방이 나올 그럴 골목이 아닌데, 그럴 골목이 정말 아닌 곳에 책방이 툭 하고 나타났습니다. 낡았지만 나름 운치가 있는 건물 외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책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몇몇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습니다. 작은 책방이라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좁다고도 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봅니다. 주인장은 꼼꼼하게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큰 서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책들도 많았고, 독립출판물도 따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 관련 책들도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쒸, 이 작은 책방에 '건축' 챕터가 따로 있다니요. 감동입니다. 이 책방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 정도를 책 구경을 하고 세 권의 책을 샀습니다. 책방의 정식 이름은 <달팽이 Books and Tea>입니다. 하여, 차도 팔았지만, 웬지 자주 들릴 것만 같은 예감에 차는 천천히 마시기로 하고 책방을 나왔습니다.
다음 날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있습니다. 책방의 블로그가요. 책방을 열 때부터의 기록이 블로그에 담겨 있었습니다. 책방 주인장 아버지가 그랬다는 군요. "니가 들으면 섭섭할진 몰라도 그냥 몇 개월 재미삼아 한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돈 까먹지 말고 어디 일자리나 구해 다니다 시집이나 가." ㅋㅋㅋ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책방 주인장은, 그러나 몇 개월 짜리의 책장수가 아니라 벌써 4년째 그 자리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문 닫을 걱정을 매일매일 하면서 말이죠. 그 시간 동안 책방은 독서모임부터 공부모임, 낭송모임, 작은 이벤트 뿐만 아니라 달팽이 트리뷴이라는 책 이야기 신문까지 발행하는,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책방 주인의 책방에 대한 생각이 잘 담긴 인터뷰 기사가 있어서 옮깁니다. 2015년 4월에 달팽이 트리뷴을 내면서 쓴 글이라고 합니다.
책방을 열고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동네책방에 걸음하고, 종이책을 정가로 구입해서 읽는 일의 귀함을 자주 곱씹게 됩니다. 더구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문학 도서와 생경한 독립출판물을 파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책방을 열 때부터 이곳이 책에 대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습니다. 독자와 저자, 다독하는 사람과 책 울렁증인 사람, 독립출판물과 기성 출판물, 글쓰기와 책 팔기 등 책에 대한 다양한 끝과 끝을 잇는 곳으로 말이지요.
책방의 문을 열고 두 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은 왠지 그럴듯해 보이는 저자 강연회나 출판 강좌 같은 일을 당장 벌여 보고 싶기도 했지만 지금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저자와 독립출판물 제작자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어서, 가뜩이나 가난한 책장수로서 사례를 하면서 그분들을 모셔올 수도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그런 이유 말고도 제가 '달인 마켓'이라는 언뜻 무용(無用)해 보이는 그런 사소한 이벤트를 벌이려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런 일부터 이 작은 책방의 뿌리가 뻗어 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긴 지방이라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런 부정적인 것들은 쿨하게 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책방에 오는 여러분이기 때문에만 가능한 그런 우리들의 창조물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제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당장 두 달 전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 공간을 반갑게 찾아주고, 선뜻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이곳에 추억을 쌓아 주는 손님들을 그동안 목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 삭막한 철강도시에서 서로 모르던 우리가 만나, 책에 대한 다양한 끝과 끝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무용(無用)한 일을 함께 만들고 펼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인용글 및 사진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18059#cb
순전히 책의 제목 때문에 손에 든 책
달팽이 책방에서 이리저리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들어오는 책 제목이 있습니다. '노동이 풍경과 삶의 향기를 담은 내 인생의 문장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바로 이 책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입니다. 좋은 시를 모은 책은 많은데, 좋은 산문을 모은 책은 의외로 없어서 '한국에 볼만한 산문 선집 한 권쯤 있어도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봄날의 책 편집자가 만든 책인데, 나는 왜 저런 제목을 지었을까? 갸우뚱 해졌습니다. 책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천천히 울기 시작하려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 앞뒤 재지않고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나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39꼭지의 산문인데, 서두르지 않고 하루에 몇 꼭지씩 아껴 읽었습니다. 글을 잔잔하고 쉬웠으나 그 여운은 길었습니다. '좋은 글이란 이런 글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동네 아저씨가 옆세서 담담하게 읊어주는 듯한 글들은,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서정성을 건드리는 한편, 바로 내 주위의 이야기 같은 현실감이 가득했습니다.
할머니, 회사 대리가 괴롭혀요.
아가야, 속 좁은 놈들은 별것도 아닝게 무시해버려라잉.
할머니, 저 회사 그만 뒀어요, 이제 어떡해요?
아가, 앞으로 돈 벌 날 하고많응께 쪼매 안 벌어도 돼야. 안 굶어 죽는다.
할머니, 저 이렇게 술 많이 마셔서 어떡해요?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들어갈 때 실컷 마셔라. 안 들어갈 날이 곧 온다.
(p.176 김현진 <들어갈 때 실컷 마셔라> 중에서)
1980년대 박종철 이한열의 사망은 즉각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각성했고 연대했으며 행동했다. 그때는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어떤 신호도, 의미도 없이 죽어간다. 잠자는 사회를 깨우면 안 될 것처럼 남몰래 세상을 뜬다. 그런 죽음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다. 성공한 자와 이긴 자들이 구축한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이 죽음의 레짐에서 살아남는 것, 이것만 문제일 뿐이다.
(p.247 이대근 <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중에서)
표현의 발명에 관한 한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여섯 살 아이를 그린 김소연의 <선물이 되는 사람>, 자신이 몰던 트랙터에 이름까지 붙이며 당당하게 '반려'한다고 고백한 한 강광석의 <내 인생의 반려 농기계>, 가족만큼이나 애정이 깊은 소에 관한 단상인 박성대의 <소 이야기>, 박찬호가 한창 전성기인 시절에 애정어린 학교 앞 식당에 대한 기억을 꺼내어 쓴 김광준의 <박찬호와 2001년의 어느 식당 아주머니>, 제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셔 놓고 돌아오는 그 길었던 길에 대한 글인 김언의 <봄날의 요양병원>, 롯데 조성환 선수의 숨은 이야기인 김광준의 <2루로 출근하는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 등은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쓴 글 같지 않은데, 투박하면서도 살아있는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은 여기에 실린 대부분은 소설가나 시인, 언론인, 기자 같은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쓴 글이다.)
공선옥의 <쑥>은 전라도 촌가시내들의 순진무구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슬며시 웃음 짓게 했구요, 하종강의 <고문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에서는 만화 <송곳>에 나오는 노동운동가 고구신의 모델이 송영수라는 사실은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자살을 그린 이대근의 <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와 밀양 송전탑의 할매 할배들을 그린 이계삼의 <송전탑 분신 자결의 진상>을 읽고나서는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송경동이 일용공이었던 자신의 청년 시절 이야기를 쓴 <그 잡부 숙소를 잊지 못한다>를 읽고는 송경동 시인의 시와 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찾아보기도 했으며, 다운증후군 아들의 출생 과정에서 자신의 찌질함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가는 서효인의 <증명한는 인간>도 참말로 애틋했습니다.
우리는 강물과 강물 주변에서 함께 어우러지던 나무와 풀들, 풀 속에 살던 곤충들, 물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들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때 어린 내 마음 속으로 천천히 흘러드는 서늘하게 일렁이던 물비늘들. 아침 해를 맞아 조금식 부풀어오르던 착한 물방울들.
무릎을 모아 가슴께에 끌어안고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푸른 나무와 풀잎들을 지나 고요히 흘러가는 물의 끝을 바라보면서, 나는 울어도 좋은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린 나에게 어떤 슬픔이 있었던 것일까? 이제 와 그때를 떠올리면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저, 뭔지 모르지만, 맑고 투명한 강물의 흐름이 주는 알 수 없는 포근함 때문에, 그 청명한 물소리 때문에, 끝을 알 수 없는 물의 신비로운 질서 때문에, 아마도 그냥 울었던 것은 아닐까.
(p.269 이영주 <파괴된 강에서 우리는 작별한다> 중에서)
자연이 주는 신비함으로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는 이영주 시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글을 보며 저런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구나 싶으면서 책 제목의 의미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히힛, 발견! 여기서 책의 제목을 땄구나. 오~ 궁금증 해결. 응, 근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구? 음, 뭐, 흐흠..... 이 구절에서 제목을 따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웬지 이 책엔 이 제목이 어울린다.)
어떤 지식을 직접 가르쳐주는 책이나, 몰랐던 사연을 알려주는 책, 혹은 무언가 행동을 촉구하는 책도 좋지만, 마음에 은은하게 퍼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도 좋군요. 바쁜 일상의 틈 사이로 삶의 향기가 퍼집니다. 참 오랜만에 좋은 책방에서 좋은 책을 골라 좋은 산문을 읽었습니다. 편집자의 의도가 저에게 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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