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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

시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 김도언의 세속 도시의 시인들

by Keaton Kim 2017. 1. 30.

 

 

 

시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 김도언의 세속 도시의 시인들

 

 

 

아직 멀었다

 

 

지하철 광고에서 보았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옵니다.

그 이유는,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얼마나 높고

넓고 깊고 맑고 멀고 푸르른가.

 

 

땅 위에서

삶의 안팎에서

나의 기도는 얼마나 짧은가

 

 

어림도 없다.

난 아직 멀었다.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73페이지에 수록된 시

 

 

 

다시 디아스포라

 

 

한국에서 태어나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나 역시 난민이었다.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서울에서 서울에 정착하지 못한 나는

종이 위에 쓴다.

한 사람을 바꿀 수 없어서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아니,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어서

한 사람을 바꾸지 못했다고,

그래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하얀 종이 위에 또박또박 쓴다.

 

 

또박또박 쓴 종이를 구기며 다시 말한다.

나는 한국에 서울에 정착하고 싶었다라고,

아니, 나는 오직 나에게 정착하고 싶었다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174페이지에 수록된 시

 

 

 

 

시인은 만들어지거나 발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발견되는 존재, 다시 말해 원래 있는 존재일 것이다. 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이 세계의 작동 방식, 다시 말해 자연이나 사물이 존재하거나 관계 맺는 방식에 제각기 반응하며 특유의 이미지를 자신의 몸에 투과시켜 음악적 언어로 표현한다. (p.226)

 

 

 

 

 

시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백석은 시인이란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대해 슬퍼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감각이 발달되어 있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특출한 감각으로 우리보다 먼저 감응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표현된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며 우리의 시대상를 보여주기도 하고,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고결해 보이고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에도 그런 구절이 보입니다. 시인 황인숙은 불리한 시대적 상황에서 시가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 시 자체의 힘이라고 했고, 권혁웅 시인은 시인이란 사람들이 삶과 사회, 역사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으며, 이문재 시인은 병들고 타락한 세계,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문명을 시인이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인은 그것을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세속 도시의 시인들> 15명의 시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가 김도언이 만나보고 싶은 시인들을 골라 그들과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작가는 시인들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기준을 만들었는데, 개성적인 스타일이 농후한 시인, 텍스트의 바깥에서 부단한 모욕과 쟁투를 벌이면서 삶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시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시인은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50년대 생),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권혁웅, 김이듬 (60년대 생). 문태준, 안현미, 김경주 (70년대 생), 서효인, 황인찬 (80년대 생) 등 입니다.

 

 

 

 

 

 

 

 

 

 

 

그가 실패하는 데 성공한 시인인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부터다. 실패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일지 모르지만, 아니 확실히 그렇겠지만, 나는 그것이 오늘날 시인에게 요구되는 매우 핵심적 요건이라고 믿는다. 모든 시인이 시를 써서 성공하고 그것을 지향한다면, 시는 목소리를 잃고 하수구에 처박힐 것이다. 왜냐하면 타락한 시대의 성공만큼 비루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시는, 가장 실패한 방식으로 타락한 시대를 증거하면서 자기 회복과 갱신의 가능성을 실험해야 하는 것. (p.115)

 

 

 

 

 

 

시라는 것의 위력이 이전보다 훨씬 쇠퇴한 지금입니다. 시를 대신할 만한 유희가 많아졌고 시를 대신하여 읽을 거리도 많아진 시대입니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인의 인터뷰집이 재미있을 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시인이기도 하지만 밥벌이에 대해, 자신의 시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진부함과 치열함에 대해 부대끼고 좌절하고 극복하려 하는 인간의 모습이 책에서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우리보다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인 동시에, 책 속에서 보여지는 시인의 모습은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시인을 모른다 하더라고, 시인이 지은 시를 한번도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책은 하나의 훌륭한 에세이입니다. 글로 먹고 사는 이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집중하게끔 하는 그들의 솔직함이 책에 묻어납니다. 그리하여 그 시인이 쓴 시는 어떨까? 하는 흥미를 유발하여 시를 찾아보게까지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시인이 있고, 그 시인들은 시를 쓰고 있고, 그렇게 시집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인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세속 도시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이 고민하고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은 잘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책으로 그들이 살며시 드러났습니다. 고결하고, 삶의 진부함에 맞서고, 방황하고, 고민하고,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시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