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나 붕어빵 장사 해볼까요?
- 응? 웬 붕어빵?
산이가 붕어빵 얘길 하길래 뒤통수로 들었습니다. 붕어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뭐 이런 거였죠. 근데 지 나름대로 뭔가 사부작사부작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뒤통수에 대고 "아빠, 오늘부터 장사 시작해요." 하고 한마디를 날리는 거였습니다. 진짜 한다고?
오후 두 시에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일하는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밤 열 시쯤 퇴근하면서 가보았습니다. 붕어빵을 굽는 아들을 보니 하~ 진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좁디 좁은 공간에서 여덟 시간을 내내 서서 일을 했을 아들을 생각하니 맘이 아팠습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재미있댑니다. 하!
그제서야 이것저것을 물어봤습니다. 붕어빵 리어카는 임댄지 대연지, 유통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원가에서 재료비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붕어빵은 어떻게 하면 잘 굽는지, 한 마리 굽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그래서 하루에 몇 마리를 팔아야 인건비가 나오는지 등등을요.
처음엔 안타까운 마음이 아주 컸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추진력이 대단하기도 합니다. 해봐야겠다고 맘 먹은 건 척척 잘 합니다. 포기도 빠릅니다. 붕어빵 팔아서는 평범한 노가다보다 돈을 벌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텐데, 굳이 붕어빵을 하겠다는 산이의 의도가 짐작이 됩니다.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고생하는 걸 보니, 하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근데, 붕어빵을 열심히 굽는 아들을 보니 갑자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우라 아이 셋은 모두 간디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첫째 산이와 둘째 들이는 대학에서 가야할 이유, 대학에서 배워할 것을 찾지 못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막내인 강이는 간디학교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곡을 만드는데, 대학에서 제대로 음악을 배우면 좋겠다고 스스로 생각해서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산이와 들이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경험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알바를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찾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은 제천간디학교 교장으로 계시는 이병곤 선생님의 에세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닌 산청간디고등학교는 대안학교이긴 하지만 인가학교입니다. 하지만 제천간디학교와 금산간디학교는 비인가입니다. 그래서 산청간디학교보다 훨씬 자유로롭고 실험적입니다. 간디학교의 뿌리는 제천간디학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에는 대안학교 일선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교육 실험과 에피소드, 선생님의 갈등과 보람, 비인가 대안학교의 한계와 슬픔 등이 나와 있습니다.
닐에 따르면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본성이 슬기롭고 실제적이다. 만약 어른들이 아이의 본성 발현을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면 아이는 자기가 이를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성장해나갈 것이다. 닐은 끝까지 믿었다. 어린이는 결코 악하지 않고 선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 지점이 어렵다. 대안학교 현장을 지키다 보면 자꾸 '선생 본능'이 작동한다. 내가 조금만 도움을 주면 아이가 더 바람직하게 성장할 것 같다.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아이의 내면 의식이 깨어날 것인가? (68쪽)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요청한다, 이것이 아니다 싶은 상황에서는 "아니오" 하며 외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라고. 독립적으로 사유하며 비판적으로 의식하는 개별자를 키워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침묵과 복종, 순응을 강요하지 말라. (83쪽)
우리나라 어른들, 특히 교육계가 크게 책임질 일이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그것이다. 2014년 이래로 5년 사이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청소년은 3만 4552명이고, 이 가운데 무려 3748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청소년 2.6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다. 2021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연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823명으로 하루 평균 2.3명에 이른다. 청소년 자살이 재해 사망자 숫자보다 많다. (106쪽)
그런데도 가난해서 곧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을 견뎌온 비인가 대안학교들에 배정하는 지원금은 너무 빈약하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비인가 대안학교 한 곳당 '무려' 연평균 370만원을 지원했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초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이 땅에 제대로 된 교육 한번 해보겠다고 나선 교육실천가들에게 공교육은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112쪽)
지난 6년간 약 400명의 학부모를 만났다. 각종 위원회 회의, 학부모 연수, 포럼, 공동작업, 술자리, 개별 면담, 발표회, 독서회, 간담회, 지역모임, 마을축제, 장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만나 갖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자발적 비주류'를 선택할 만큼 강단지고, 의식도 깨어있는 학부모들이었다. 그럼에도 학부모가 대안학교와 청소년의 성장에 관해 웬만큼 몸으로 이해하는 데까지 6년이 걸린다. 졸업을 앞둔 즈음 프로젝프 발표회를 참관하면서 부모들은 손수건으로 연신 눈꼬리를 닦는다. 지난 세월 불안 속에서도 참고 기다리며 말없이 자녀를 지원했던 자신을 위한 다독거림의 눈물이리라. (188쪽)
배움에 늦은 시기란 없다. 살아가면서 나중에 필요성을 깨달아 늦게 배워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들 각자의 보석 같은 삶을 '그 시기에 필요한 교육'이라는 맹목적인 통념에 양보하지 말자. (200쪽)
아이 셋을 간디학교에 보내고 7년째 간디 학부모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발적 비주류를 선택했습니다. 비자발적 주류의 삶도 살아보니 별 것 없더라.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믿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끔 맘에 안들 때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을 믿습니다. 아이의 선택이 나의 기준과 다르다 할지라도 응원합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음, 무엇보다 붕어빵, 맛납니다. 제가 먹어봤습니다. 오가시다 한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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