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 자신을 견디고 있는 나에게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1845년의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가 집을 지을 장소로 봐둔 곳이었는데, 나는 집터 바로 옆에 자라던 곧게 뻗은 한창때의 백송나무들을 재목감으로 베어넘기기 시작했다. (p.68)
"그냥 내 자신을 견디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두통이 시작되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아니라, 머리가 아프구나 라고 자각할 정도의 미미한 통증인데, 이게 꽤 신경이 쓰인다. 퇴근 무렵이면 증세가 좀 심해지지만, 업무가 종료되고 약간의 운동과 샤워를 하고 나면 없어진다.
아침에는 배가 아픈 일도 잦다. '오늘은 진짜 회사 가기 싫어' 라고 생각이 들면 배도 많이 아프다. 그런데 막상 출근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프지 않다.
회사에 가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몇 개 해결하지도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처리하지 못한 메일은 더 쌓인다. 회사 메신저는 나 좀 해결해줘 라는 절박함으로 깜박인다.
주말이 오면, 그간의 스트레스로 시체가 된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욕 자체가 없다. 머리속도 그저 멍하다.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아까운 주말을 헛되게 보냈다는 자책감으로 또 지옥도 속으로 걸어간다.
회사만 없어지면, 모든 질병이 나을 거란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네면서 동료들과 담배를 태운다. 그들도 나랑 똑같다. 나의 시간을 저당잡혀 그 댓가로 얼마의 새경을 받는다. 일의 의미? 가치? 같은 거는 개나 줘버리라지.....
억울하고 쓸쓸하고 무기력한 현실을 사는 한 기러기 아빠의 영화 속 대사다. 그렇다. 나도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견디고 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하나가 지나면 더 큰 또 하나가 온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다. 오히려 불안한 미래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진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좀 더 잘 살아보자고 한 거 뿐인데, 내 삶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닐까? 아직 돌이킬 수 있을까?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그들의 열 손가락은 그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다. (p.20)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안다구. 이렇게 일만 해서는 그 열매를 딸 수 없다는 거, 당연한 거 아냐? 나도 내 삶의 대부분을 내가 결정하고 나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내 것인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그래서 아침에 명상도 하고 시시때때로 다짐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기도 하는데....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린 넘들을 내려놓은 게, 좀 가볍게 가볍게 사는게 잘 안돼.
Simplify.
단순하게 살아라. 간소하게 살아라. 소로우 아저씨가 그렇게 외쳤던 건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이름만 바뀌었다. YOLO 라는 이름도 있기도 하고....
버릴 것 버리고, 집중할 거에 집중하고, 즐길 거 좀 즐기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 수는 없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사진 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486107353499560547/
소로우는 왜 숲으로 들어갔을까? 하버드까지 나온 인재가? 그것도 인생의 절정기인 28살에? 그 시절에도 피하고 싶은 현실이 있었을까? 숲에서의 2년 2개월 동안 그는 그가 원하는 해답을 얻었을까?
그는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 숲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살았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해 보려고,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기 위해, 오직 인생의 골수를 빼먹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주로 여행을 간다. 소로우는 은둔하여 자급자족하는 실험을 택했다. 고독속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다고 하는데,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것도 결코 평범하지 않지만, 그 생활을 일일이 기록한 것은 더 대단하다. 심지어 글은 회한과 비판보다 긍정과 환희로 차 있다.
그러니까 '본질에 가까운 간소한 삶'을 직접 실천해 보니 더 즐겁더라.... 라는 말이다.
자연과 마주하게 되면 삶에서 필요한 게 무언지 잘 알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월든>은 무려 170년 전에 쓴 글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세심한 관찰, 깊은 사색, 자연이 주는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감성을 탁월한 문장력으로 표현했다.
또한 이 책은 자본과 무분별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 고독, 육체노동, 자급자족 그리고 자발적 가난에 대한 예찬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글은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절실하다.
몹시도 상쾌한 저녁이다. 이런 때는 온몸이 하나의 감각기관이 되어 모든 땀구멍으로 기쁨을 들어마신다.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자연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날씨는 다소 싸늘한 데다 구름이 끼고 바람까지 불지만 셔츠만 입은 채 돌이 많은 호숫가를 거닐어본다. 특별히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없으나 모든 자연현상들이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p.196)
산골 오지에 혼자 집을 짓고 살면, 소로우가 느낀 저 경탄의 감정이 살아날까?
지금 내 주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되찾는 것. 월든이 내게 하는 말이다.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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