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 붕어, 개구리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회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1.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미국인이 하위 50퍼센트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2.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연간 63만 달러 이상)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3. 미국과 영국에서는 부모의 부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이어지는 일이 거의 절반에 이르지만,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는 그 절반 정도일 뿐이다. 밝혀진 대로라면 덴마크와 캐나다의 청소년이 미국 청소년에 비해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가 부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4. 부잣집(연소득 20만 달러 이상) 출신으로 SAT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은 다섯에 하나다. 가난한 집(연소득 2만 달러 이하) 출신은 그 가능성이 오십에 하나다.
5. 가장 경쟁률이 높은 미국 100개 대학 재학생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소득분위 상위 4분의 일 가정 출신이다. 겨우 3퍼센트만이 하위 사분의 일 출신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직역하면 있는 넘들의 횡포 쯤 되겠다. 우리말 제목을 너무 잘 붙였다.
The Winner Takes It All
스웨덴 혼성 가수 아바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has to fall, It's simple and plain, Why should I complain. 그래 이긴 넘이 모든 걸 다 가지지. 진 넘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인데 어떻게 거기에 불평을 하겠어?
그래, 맞다. 이 노래에서는 실연당한 여자의 입장에서, 불평할 수도 그립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그게 규칙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너무 냉정하다고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한다. 이긴 사람이 다 가지는 게 어디 사랑뿐이랴, 돈도 명예도 이제는 심지어 희망조차도 다 가져가 버린다.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 발보아가 상징하는 '아메리칸 드림', 누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다는 그 절대 명제가 이제는 거짓말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그렇다고 한다. 능력 있는 넘이 잘 되는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능력이라는 게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기업이나 단체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는 것다. 근데 요즘은 있는 집에서 태어난 이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보수를 받으며 더 선망하는 직장에 다닌다. 있는 집 넘들이 다 가진다는 말이다.
1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우리 현장에 신입사원이 왔는데, 꽤나 어리버리했다. 너 학교 어디에서 나왔냐? 저 서울에서 나왔는데요. 얌마 서울 어데? 서울대 나왔습니다. 뭬라? 이런 녀석이 서울대라고? 이후로 그 친구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얌마 설대! 라고 불리기도 하며 놀림을 당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적응하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일도 똑부러지게 잘했다. 그 친구는 이른 나이에 팀장이 되어 회사에서 잘 나간다.
능력 있는 사람과 같이 일하면 편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도 당연하다. 능력이 있으면 대접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능력을 우대하는 사회다. 특히나 공부 잘하는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이 무지 오래 지속되고 있다. 울 조상들은 과거에 합격하는 게 출세의 길이었다. 밤잠 안자고 공부했다.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오직 공부만 디립다 판다. 오죽 했으면 1시간 덜 자고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고 했을까. 능력만큼 대접 받는 사회,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몫을 받는 사회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샌델 교수가 말하는 건 두 가지다. 첫번째는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있는 넘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능력이 점점 배가되는 반면에 없는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 두번째는 그래서 능력이 출중하여 대접 받는 넘들이 '지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안다는 거다. 지가 잘나서 출세한 넘들은 밑바닥의 사람들을 아주 물로 본다.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사회에서 잘 안풀리는 사람들도 이게 다 자신이 못나서 그렇다고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샌델 교수는 현재의 능력주의 시스템 때문에 동료 시민에게 덜 의존적이 되고, 서로의 일에 덜 감시하게 되고, 연대하자는 주장에 덜 호응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음, 능력주의 땜시 그런건가. 공감이 되긴 하다.
용이 아니어도 괜찮아. 붕어라서 행복해
자, 이제 샌델 교수의 이야기는 잘 알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결론은 이렇다. '내 노력에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만난 건 내가 시대를 잘 만난 행운의 결과다. 그러니 겸손하자.' 사실 좀 김빠지는 결론이다. 어떤 시스템이나 제도나 교육으로 능력주의 사회를 바꾸는 게 아니라 개인의 각성으로 바꾸자는 거 아니가. 아주 거창하고 훌륭한 문제 제기에, 그 전개 과정도 매우 좋았는데, 결론은 그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
오히려 역자가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다. 모두가 개천에서 난 용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재, 붕어, 개구리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회제도와 사회문화를 만드는 거다. 그래. 이게 정답이지. 사실 책보다 역자 후기가 더 깔끔하다.
책에도 잠깐 언급되기도 했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반대인 세습사회는 어떨까. 하류층은 오히려 세습사회에 사는 것이 덜 모욕적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오히려 하층 계급들이 더 만족하고 살지 않았나. 중국 작가 위화는 직업이 치과의사였다. 나라에서 정해준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사회는 또 어떨까. 아, 어렵다. 나는 그냥 붕어로 만족하며 살면 되는데..... 이 시점에서 마르크스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논제
1.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보상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끝없는 경쟁과 완벽주의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쪽에 가까우신가요? 그 경험담을 들려주세요.
2.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 출신의 학생이 하위 50% 출신의 학생보다 많다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소득에 따른 교육의 질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공정’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 저자는 능력사회와 세습사회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를 제시합니다. 내가 상류층이라는 조건 하에는 능력주의 사회를 선택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하류층인 경우는 오히려 세습사회에 사는 것이 덜 모욕적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 동의하시나요?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Feat,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4. 과도한 입시 경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아주 많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제비뽑기를 들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어떠한가요?
5. 역자는 역자후기에서 ‘모두가 개천에서 난 용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재, 붕어, 개구리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회제도와 사회문화를 만드는 것’을 능력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