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도서관 엿보기 : 강예린 이지훈 <도서관 산책자>
도서관은 제가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잘 다니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엔 좋은 도서관이 많습니다. 학창 시절엔 김해도서관에 갔습니다. 라면 먹으러, 혹은 여학생 만나러 열심히 다녔더랬지요. 대학 다닐 땐 대학 도서관이 놀이터였습니다. 정기용 선생이 설계한 김해기적의도서관이 생기고는 나들이로 도서관 주위를 어슬렁거리도 했습니다.
일거리가 없어 거의 백수에 가까운 요즘 즐겨 찾는 곳은 <김해지혜의바다>와 <헌쇠도서관>입니다. <김해지혜의바다>는 제가 나온 국민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도서관입니다. 그래서 은근히 정이 갑니다. 탁 트인 공간과 높은 층고가 보기에도 시원합니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와 더위를 피하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헌쇠도서관>은 헌쇠 박중기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김해인물연구회에서 받아 만든 도서관입니다. 약 1,200권의 책이 있는데 대부분 사회 과학 분야의 책과 근현대의 역사책입니다. 관심이 가는 책이 많아 자주 애용합니다. 냉장고에 주인 없는 새우깡을 꺼내 먹으면서 책을 읽는 맛이 꽤 쏠쏠합니다.
두 젊은 건축가가 쓴 도서관에 관한 책이라 흥미가 돋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건축가이니 건축 계획과 디자인의 관점에서 각 도서관의 건축적 특징에 대해 썼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물론 그런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서관의 스토리에 대해 쓴 책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출판사의 기획 의도를 명확하게 썼는데, 개별 도서관이 갖고 있는 숨은 매력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그 도서관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수많은 도서관 중에서 어떤 도서관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저자들의 고민 끝에 광진정보도서관, 부산시립시민도서관,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등 열 네개의 도서관을 선별하여 이들 도서관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를 소개하였습니다. 몇몇 도서관은 가본 적이 있는 도서관이기도 해서 느낌이 색달랐습니다. 책에 나온 도서관을 몇 개 소개합니다.
** 주민들의 문화 텃밭 이진아기념도서관
35p
이진아기념도서관의 시작은, 딸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도서관은 치유를 넘어 더욱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도서관을 그릴 때 상상했던 의도보다 훨씬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와서 1박 2일 캠프를 하고, 노인들은 도서관에서 휴대폰 사용법을 익힌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도서관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다.
저는 구본준의 책 <마음을 품은 집>에서 이 도서관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기업가인 아버지가 막내 딸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주말이면 가끔 들러 책도 읽고 하던 도서관입니다. 서대문형무소 바로 아래에 있어 산책하기도 좋습니다. 책을 읽는 공간에서 확장하여 위에 옮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도서관은 이제 지역 문화의 중심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천창에서 빛이 쏟아지는 중앙 아트리움, 신을 벗고 들어가서 뒹굴 수 있는 모자열람실과 어린이열람실, 개인 조명이 있는 열람실, 도서관 만큼이나 큰 문화 시설, 둥굴레를 심은 옥상 정원 등 매력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지역에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건 축복 받을 일이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공공시설이 좋으면 개인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나만 잘살고 잘되면 된다는 욕심이 줄어듭니다. 공공시설이 좋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 여행자와 밤의 도서관 제주 달리도서관
120p
달리도서관은 '밤의 도서관'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은 이 도서관에서 책을 볼 뿐만 아니라 잠을 잘 수도 있다. 과거 보습 학원일 때 만들어진 칸막이 구조를 이용해서, 제일 안쪽의 한 칸을 도서관 부속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밤이 되면 밖에서 도서관에 출입하는 것은 통제되지만 안에 머무는 사람들은 예외다. 이들은 자유롭게 객실을 나와 통째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달리도서관의 이름을 풀어내면 '달빛 아래 책 읽는 소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주 출신 여성 5명이 모여 제주도로 여행 온 사람들을 위해 만든 도서관입니다. 여행지에서 뜻밖의 책을 만나는 설렘을 주는 것이 이 도서관의 목표입니다. 낮에는 부지런히 여행한 사람들이 밤이 되어 책을 읽는 도서관입니다. 게스트 하우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여성이나 가족만 머물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 만들어질 2009년만 해도 게스트 하우스가 많이 없어서 여성들이 안심하고 묵을 수 있는 숙소도 함께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이런 형태의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도서관이니 책이 빠질 수 없는데, 재미있는 건 모두 임자가 있는 책입니다. 사람들이 읽고 좋았던 책, 의미 있는 책, 빌려 주고 싶은 책을 달리도서관에 위탁을 한다고 하네요. 도서관, 게스트 하우스의 메인 역할 이외에 제주도의 문화를 새롭게 발견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한다고 합니다.
** 80년 된 건축물 정독도서관
211p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 신식 건물(정독도서관, 1938년 준공)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권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초기 근대 건축물의 질서들을 품고 당당하게 서 있는 건물에서, 여기저기 오래된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은 정독도서관에서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서울에서 80년 가까이 나이 든 건축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근대 건축물을 현대적인 용도로 사요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래서 정독도서관은 건축사적으로나 교육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다.
1970년 대 박정희 대통령은 강남을 띄우기 위해 서울의 명문고를 강남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종로구 화동, 서울 한복판에 있던 경기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경기고등학교는 도서관으로 바뀝니다. 박정희가 만들었다고 해서 박정희의 정正을 따서 정독正讀도서관입니다. 책을 정독해라 할 때 그 정독이 아니라네요. 당시로서는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서울 살 때 자주 들렀더랬습니다. 종로 3가의 고시원에 살았는데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창경궁 옆의 북촌과 삼청동 거리를 휘청휘청 다녔습니다. 오래된 학교에 도서관을 만들었네, 라고 생각했는데 건축물에 저런 스토리가 있는 줄은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학교 건물이지만 나름 풍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다시 보니 더 그렇네요.
이외에도 우리나라 1호 공공도서관미여 안팎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원형 계단이 인상적인 부산시립시민도서관과 고풍스러운 캔틸레버가 돋보이는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 그리고 자연 속에 만들어진 도서관(숲속작은도서관, 관악산숲속도서관, 농부네텃밭도서관)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한가지 장르로 도서관을 만든 관악산시도서관, SF&판타지도서관, 사진책도서관의 설명도 있으며, 미래의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책 없는 도서관인 국립디지털도서관도 다루고 있습니다. 사진책도서관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사용하는데,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좋은 책과 사람만 있으면 도서관의 장소와 형태는 어떤 것도 가능해 보입니다.
248p
책을 쓰면서 얻은 배움을 통해 우리는, 건축은 물리적인 실체와 사회적인 조건들 어딘가에 존재하고, 도서관이라는 형식은 그러한 건축의 '사회성'을 담지한 대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서관의 형태나 역할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장소였는데 요즘은 거의 사랑방 수준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건축의 방식도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읽는 집에서 주민들의 여러 욕망을 지원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 교통이 쾌적하고 편리하면 굳이 내가 좋은 차를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집 주위에 깔끔하고 편한한 공원이 있으면 굳이 나의 집이 넓지 않아도 됩니다. 안락하고 시원하고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 있으면 내 삶의 질이 그만큼 올라갑니다.
앞서 이진아 도서관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공공시설이 훌륭하면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나의 욕심도 그만큼 덜어지게 됩니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에 많은 투자를 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그래서 공공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도서관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수준이 높은 것 같습니다. 좋은 도서관도 많고, 늦게까지 열고, 심지어 쾌적하기까지 합니다. 이제 책만 열심히 읽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