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미생에게 전하는 젊은 건축가의 리얼 스토리 : 조성일 <한국에서 건축가로 살아남기>
건축 미생에게 전하는 젊은 건축가의 리얼 스토리 : 조성일 <한국에서 건축가로 살아남기>
집을 짓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뉩니다. 어떻게 짓겠다고 머리 속에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도면으로 나타내는 작업과 그 도면을 토대로 실제 집을 짓는 작업입니다. 전자가 설계, 후자가 시공입니다. 이 둘이 딱딱 맞아 떨어져야 좋은 집이 나옵니다. 좋은 설계가 기본이 되어야 하고 설계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시공도 중요합니다. 둘 중 하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설계를 배우는 학생들은 5년제 '건축학과'로, 시공을 배우는 학생들은 '건축공학과'로 나뉩니다. 이십여 년 전, 제가 대학을 다닐 땐 이런 구분이 없어서 그냥 건축공학과에서 설계며 시공이며 다 배웠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 쯤 자기의 적성에 맞춰 설계사무소나 시공회사로 발을 내딛습니다. 물론 건축을 전공으로 하고 은행으로 취직하는 친구나 옷장사를 하는 친구도 있다. 부럽다.
저는 '남자는 노가다지!' 하면서 당연히 시공쪽을 택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하루종일 도면을 그리는 것 보다야 현장에서 작업 인부들과 어울리며 집을 실제로 완성해나가는 것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노가다를 하다보니 설계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공은 도면에 그려진 것을 그대로 실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건 기능에 가까운 분야입니다. 건축가라 불리는 설계자들이 하는 일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의적인 일입니다. 정기용 선생이나 조성룡 선생의 작품을 보면서 느낀 바도 있구요, 눈에 띄는 건축물의 설계자들의 스토리를 읽으며 그들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이라고 할까요. 저쪽의 잔디가 깨끗해 보이는 법입니다.ㅋ
이 책은 설계를 업으로 하는 젊은 건축가들을 찾아 그들의 꿈과 현실을 들여다봤습니다. 개성이 강한 건축가들의 인터뷰집입니다. 책 내용 중에 인상 깊었던 문장을 한번 옮겨 보았습니다.
1. B.U.S Architecture 박지현 조성학
B.U.S Architecture에게 집이란?
조성학 : 시대에 따라 늘 변하는 게 집이잖아요. 원시 시대에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곳으로 충분했다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집도 기능과 형태가 달라지고 있어요. 지금 단계에서 집은 경제활동이 가능하면서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포용하는 곳이고, 이를 돕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박지현 : 집은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고시원, 옥탑방, 단독주택, 아파트 등 다양한 주거유형에서 살아봤어요. 그때 각각의 유형마다 일어날 수 있는 행동과 습관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주거환경이 열악하면 습관도 빈곤해져요. 어떤 공간에서 살지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건축가가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서 조금 더 윤택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사회에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p.45)
집의 공간을 구성하면서 영감을 준 건 다름 아닌 게임 '팩맨'. 실생활에서 접하는 익숙한 콘텐츠를 설계 콘셉트에 반영하기도 한다. 실제 해외에서는 '팩맨 하우스'로 알려져 있다. (p.25)
2. 생활건축연구소 홍윤주
진짜공간은 우리 주변, 동네,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같아요.
시작할 당시에는 건축 잡지들이 너무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것 같아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아무도 이런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으니 나라도 하자고 생각했죠. 또, 제가 사회초년생 시절에 '정통 유럽식 고품격 럭셔리'라는 단어가 한창 대중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사는 검은 머리 연예인들이 유럽의 귀족 옷을 입고 성 안에서 금발 머리 꼬마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파트 광고가 너무 이상했어요. 근데 그런 광고가 효과가 있으니까 만드는 거잖아요. 그러면 한국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한국적인 요소가 없는지 주변부터 찾기 시작한 거죠.
그렇다면 '가짜공간'은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나요?
허영이 가득한 공간이요. 이유 없이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한 듯한 공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무리한 공간이요. '진짜공간'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 같아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정통 유럽식 고품격 럭셔리' 아파트, 이런 데는 저에게는 가짜공간이에요. (p.50)
제가 아직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요. 저 역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두려워요. 두려움이 커질 때 불안해하기만 하면 생각이 협소해지는 게 싫어서 마인드 컨트롤을 늘 하려고 해요. 어떨 때는 '난 정말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치다가도 '이러다가 나 거지 되는 거 아냐?'라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죠. 그때 매일 보이던 '편의점 알바 구함'이라는 광고가 어느 날 찬란하게 빛나더라고요. 모두가 인정하는 직업군이 있잖아요. 전문가라는 직업. 그게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래, 편의점이라도 하면 되지. 그러면 길거리에 나앉진 않겠구나'. 그 순간 자존감이 바닥에서 조금 올라왔다고 느꼈어요. (p.63)
사진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02123&memberNo=954004
3. 에이코랩 정이삭
공공프로젝트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마을 환경이 아마도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희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목회를 시작하실 때, 서울에서 가계소득이 가장 낮은 동네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래서 거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제가 어릴 적에 봤던 풍경을 기억해보면, 건축은 잡지에 나오는 화려한 구조물 같은 게 아니에요. 적당한 크기와 용도의 방과, 춥고 덥지 않은 공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에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풍경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어요.
건축가와 일반인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는데요?
'보통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준 건 정부나 시공사 혹은 건축가들이 무시하는 집장사들이었어요. 건축가들은 보통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지 않으니까. 건축가가 사회적인 공헌을 해오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건축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몰라요. 사람들 머리속에는 건축가와 시공사와 부동산이 다 짬뽕이 돼 있을걸요. 건축가 본인들이 뭔가 다르다고 얘기했으면 집이라도 한 채 지어주고 '아 역시 건축가가 지은 집에 사니까 좋다' 이런 경험이라도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건축가들은 '이 사회는 건축가를 존중하지 않는다' 라고만 생각해요. 존중한 적이 없으니까 존중을 못 받는 거예요. 사회한테 뭘 했어야 존중을 받죠. (p.79)
연평도서관은 군부대에 안 쓰고 있는 막사를 리모델링해서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프로젝트다. 기존 건물의 뼈대와 일부 마감은 그대로 살리고, 요즘 청년들의 취향에 맞춘 책을 땡스북스 이기섭 대표가 큐레이션했다. (p.69)
사진 출처 :
http://www.rohspace.com/index.php/architecture/--yeonpyeong-library/
4. 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 이은경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양극단으로 나뉘었다는 거죠. 주거공간의 품질, 다양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양질의 기반시설 모두 차이가 심해요. 설계를 따로 맡기는 고퀄리티의 단독주택과 보편적인 기준을 만족시키는 아파트가 있다면 그 외 나머지 주택들은 조건이 정말 열악해요. 이러한 가운데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는 공급환경에 놓이게 되고요. 시중에 나오는 다세대주택도 대부분 아파트의 평면을 그래도 옮겼거나 면적이 60m2, 85m2 등 일괄적이에요. 협동조합형 주택을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대부분 머리속에 가지고 있는 구조가 아파트 평면 구조예요. 자기가 원하는 공간을 설명할 때 아파트에 있는 무언가가 그 시작점이 되는 거죠. 또한 다세대주택이 모인 동네에는 아파트에 다 있던 녹지공간, 놀이터, 보안시설, 노인시설 등이 전부 부족해요. 모든 것이 양극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아파트를 선택하는 거예요. 여러 대안 중 하나가 아니라 지금은 그것밖에 없는 거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기존에 있는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다가구가 많은 저층 주거지에 대한 통합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것들은 요즘 공공에서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하나의 집이 아니라 일정 영역을 같이 고려해 공유시설이나 커뮤니키 공간, 기반시설을 같이 계획하는 거죠. 그게 근린의 단위가 되어 커뮤니티가 있는 아파트의 품질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것도 다양한 대안 중 하나가 되는 시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p.147)
서울시 가양동에 위치한 육아협동조합형 공공주택. '육아'라는 동일한 키워드로 거두자들이 모이게 된 만큼 입주 예정자의 의견을 설계에 일부 반영했다. (p.134)
사진 출처 : http://m.blog.daum.net/04cho/7698348?np_nil_b=-2&categoryId=768667
5. CSI 강용상
통영만의 건축적 특색은 무엇인가요?
관광지로 유명한 동피랑을 비롯해 해안가의 경사지 위의 집들은 흰색 회벽으로 마감을 많이 해요.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들 하잖아요. 날씨가 맑아 오염이 적은 흰색 회벽 바탕에 파스텔톤의 원색을 부분적으로 쓰는 게 특징인데, 이 지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미 그런 집들이 많기도 하고요. 이렇게 색을 쓰는 게 지역의 특성이자 맥락이기도 해요. 오래된 집들은 단열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단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맞추고 있어요.
지역 건축에는 원래 관심이 있었나요?
마을 개발하는 일을 하면서 지역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고 정기용 선생님과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지역 건축이 발전하려면 지역에 있는 건축가들이 '로컬리티(지역성)'를 뽑아내는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사람, 조직, 제도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그런 게 늘 가슴 속에 쌓여있었던 것 같아요. (p.16)
북스테이로 활용 중인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 게스트하우스는 기존 주택의 구성과 내부 마감을 최대한 살렸다. 한켠에서는 아내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직접 큐레이션한 책들을 판매하는 '봄날의 책방'도 함께 운영한다. (p.157)
https://www.stayfolio.com/magazine/arthouse-bomnal/gallery?idx=16
6. 프로젝토 한범주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과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갈수록 사무실이 소형화될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동네에서, 동네를 근거지로 일하는 건축가들고 많아지게 될 것이고요. 본인이 한 일만큼의 경제적인 보상을 받으면서 자립해 사무실을 운영하고 개성을 살린 활동을 계속하려면, 설계비용이 상식적인 수준으로 뒷바침되어야 해요. 건축주들의 수준도 올라가야 하고요. 앞으로 자신의 작업을 하고자 하는 후배 건축가들에게 이렇게 작업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수익도 보장될 수 있다고요. (p.212)
연남동 상가 리모델링 프로젝트. 적벽돌과 화강암으로 마감된 외벽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벽돌의 흔적은 남기되 물성은 버리지 않았다. (p.205)
사진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076236&memberNo=954004
7. 단감 건축사사무소 감은희
중목구조와 경량목구조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경량목구조는 흔히 말하는 벽식 구조예요. 벽으로 상부의 하중을 받죠. 아파트를 예로 들면 일반 판상형 아파트가 경량목구조 방식이에요. 중목구조는 기둥과 보로 연결한 주상복합의 구조방식이라 할 수 있죠. 판상형 아파트보다 주방복합이 더 최신의 방식이듯, 경량목구조보다 더 현대적인 방법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중목구조가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 한옥도 기둥-보 방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보편적인 구조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은 중목구조 주택이 많다고 들었어요. 한국은 왜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을까요?
일단 사람들이 아직 많이 모르는 것 같아요. 중목구조로 집을 짓겠다고 오는 분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 온 사람들이에요. 집을 지을 때 보통 제일 먼저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무슨 재료로 지을까'예요. 콘크리트, 목조, 스틸하우스 등 저울질하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목조를 짓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경량목구조로 알고 계세요. 목조주택으로 지을까를 고민하신 분들 중에서도 중목구조와 경량목구조를 비교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한 거죠. 그리고 아직 국내에서 건축하시는 분들도 중목구조의 장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요. 제가 다른 분들보다 좀 더 빨리 시작했고,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으니 직접 보급화를 이루고 싶은 마음도 커요. (p.219)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 말농장이 바로 옆인 선흘리에 위치한 중목구조로 지어진 철물공법 주택의 단감하우스. 사진은 단감의 홈페이지에서 퍼왔으며 아래 홈페이지에 가면 동영상도 있다.
사진 출처 : http://edangam.com/example/construction
8.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 마루 구국현
집은 불편해야 한다고 주장하세요. 부연설명 부탁드려요.
가끔 클라이언트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일부 설계사무소들을 보면 아파트를 떠나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파트 평면을 그대로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저는 최대한 동선을 길게 계획하고 층을 나누어서 사용자로 하여금 계속 움직이게끔 만들어요. 심지어 어떤 주택은 채를 분리시켜서 이동할 때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했죠.
그렇게 유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건강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예요, 몸도 마음도. 사람은 자꾸 움직여야 해요. 그렇게 살면 사람도 건강해지고 집도 건강해져요. 건강하면 사람도 즐거워지고 그렇게 개개의 집부터 즐거우면 즐거운 사회가 된다고 믿고요.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을 직접 지으셨죠. 가족의 반응은 어떤가요?
불편하다고 해요(웃음). 다른 의뢰인의 집도 불편하게 만드는데, 그 시험무대였던 것 같아요. 좁은 땅에 스킵플로어다 보니까 주방에 갈 때나 욕실에 갈 때도 계단을 이용해야 해요. 대신 공간은 하나인데, 층으로 위계가 구분이 되어 있어서 서로 열린 듯 하지만 시선은 차단됐어요. 공간으로 이동하는 재미가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더 활동적으로 바뀌었고요. (p.248 )
지금의 구국현 소장을 있게 한 아산 예꽃재 마을 프로젝트. 사업 중간에 투입되어 작업 기간이 짧았지만 현장을 100번 넘게 방문할 정도로 애정을 보여 마을의 명예주민까지 되었다고. 32가구로 된 이 프로젝트의 지붕재와 외벽 재료만 동일하고 내부 설계는 제각각 다르다. (p.238)
사진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02349&memberNo=954004
9. 건축스튜디오 사람 김우철, 강미현, 김은철
건축주 학교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4~5년 정도 됐어요. 처음 시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설계에 대해 고민해보게 해야겠다는 의도였어요. 진행하다보니 설계에서만 지식을 제공하고 말게 아니라, 건축문화 확산 차원의 운동처럼 건축주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커리큘럼도 만들었죠. 집짓기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 계약은 어떻게 해야 한다, 개인마다 다른 요구사항을 건축하기 전에 정리해야 하는 내용 등 이론적으로 알려드려요. 기회가 되면 저희가 시공하는 현장을 직접 보여드리면서 실전과 관련한 내용을 알려드리기도 하고요.
예비 건축주들이 어떤 걸 가장 궁금해 하나요?
싸게 짓는 거죠. 얼마면 지을 수 있는지, 싸고 좋은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 하세요. 금액세어 시작하죠. 그게 현실인 것 같아요. 그럼 저희는 싸고 좋은 집은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려요. 처음에는 집을 짓는 걸 쉽게 생각하고 오셨다가 강좌를 들으면서 끝에 가서는 '집 못 짓겠다', '집짓기 너무 어렵다' 라고들 하세요. 저희가 유도한게 그거예요. 심사숙고해서 집을 지어야 한다고. (p.290)
전북 완주에 있는 '삼시세끼하우스'. 일조와 산세에 맞추어 주택의 지붕과 루버의 높이를 결정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이었어요." 퇴직 후 하루 세끼 소박한 삶을 꿈꾸던 부부는 자신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냐는 듯 신기해 한다. 설계자로선 참 고마운 순간이다. (p.282)
사진 출처 : http://www.uujj.co.kr/bbs/board.php?bo_table=house&wr_id=384
설계하면 배 곯는다.
대학 시절 설계와 시공의 갈림길에서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한 듯 보입니다. 설계를 꿈꾸는 예비 건축가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들도 그 고민은 계속 하고 있구요. 하지만, 이전에 설계로 진로를 정했던 친구들을 보면, 그럼에도 그럭저럭 살고 있습니다. 풍족하게 벌진 않지만 그래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그렇게 살더라구요. 배 곯아서 죽었다는 친구는 아직 못 봤습니다.
이 책에 나온 건축가들 역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언급하지만, 미래를 밝게 보고 그들의 꿈꾸는 세상을 밝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세상 일이란게 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만만치 않겠지만, 건축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보입니다. 아주 오래 전 나도 지녔을 그 열정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건축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이 이미 바래질대로 바래져버린 노가다 20년차는 이 책으로 잠깐이나마 설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