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부하는 서양 건축사 : 최경철 <유럽의 시간을 걷다>
다시 공부하는 서양건축사 : 최경철 <유럽의 시간을 걷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서양건축사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서양건축사는 대학교 시절, 전공 필수 과목으로 배웠고, 그 후로도 여러 방면으로 서양의 건축물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가졌으나 여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보기에 무식한 건축물은 로마네스크 양식, 뾰족한 건 고딕 양식, 뭔가 비례가 맞고 조화로운 건 르네상스, 화려한 건 바로크, 양식보다 기능이 위주인 건축물은 모더니즘 건축..... 머 이 정도가 답니다. 전문가 맞냐?
건축물은 그 당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짓는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그 시대를 필수적으로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대라 함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종교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쉽게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건축물은 그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말이 됩니다. 오오, 멋진데!
이 책은 유럽의 역사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 시대에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나오고, 그래서 그것이 건축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여태 내가 읽었던 '서양건축사'라 이름 붙은 어떤 책보다도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이런 게 공부의 참 맛입니다.
학부 때로 돌아간 기분으로 오랜만에 공부 함 해볼까요??!!
1. 로마네스크 : 헬레니즘을 기둥으로 로마라는 기둥을 얹다
독일의 아헨 대성당. 800년 경에 카를 대제가 첫 성당 건물을 세운 후 세월을 거친 증축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작이다. 중심부 주변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이후에 고딕 양식으로 증축되었다. 16세기까지 독일 왕과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며, 프랑크 왕국을 통합한 샤를마뉴의 무덤이 있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글의 일부 인용 : p.60,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성 미셸의 산' 이라는 이름의 몽생미셸 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몽생미셸 수도원. 초기에는 로마테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지만 이후 고딕 양식으로 증축되는 과정을 거쳤다. 외관의 두꺼운 벽과 작은 창, 원형 아치 등에서 로마네스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의 하나이자 프랑스 최초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글의 일부 인용 : p.71,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저기 뒤쪽에 보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은 사실 피사 대성당의 종루다. 1064년 그리스인 부스케투스의 설계에 의해 기공되었고 1272년에 완공했다. 시기적으로 로마네스크의 마지막 불꽃이 화려하게 피고 남은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고딕으로 접어드는 과도기였기 때문이다. 피사 대성당은 원형 아치, 작은 창, 코린트 양식의 기둥, 두꺼운 벽, 남쪽 측면의 페디먼트 등 로마네스크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글 일부 인용 p.69,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약 400년의 시간이 흘러 야만의 시대가 종지부를 찍습니다. 800년에 샤를마뉴가 프랑크 왕국을 통일합니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고 새로운 건축양식이 쉽게 탄생하지는 않습니다. 기존 로마가 발전시킨 안정적인 건축양식에 프랑크족의 문화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이를 로마네스크 양식이라 부릅니다.
로마네스크라는 말은 말 그대로 로마 '풍' 건축양식입니다. 나중에 비평가들이 10~12세기에 나름의 형식적 완성을 갖춘 건축양식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형식의 바탕에 로마의 건축양식이 있었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근데 로마의 건축양식은 그리스의 그것을 토대로 합니다. 아하~~ 그러니까 로마네스크 양식은 그리스-로마 건축의 틀 위에 세워진 겁니다. 그럼 그리스-로마 건축이란 건 또 머에요? 이런......
그리스-로마 건축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하면 먼저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투스칸, 콤포지션 등으로 나누는 바로 기둥의 힘입니다. 포로 로마노나 파르테논도 오직 그 육중한 기둥이 먼저 눈에 띕니다. 벽은 거들뿐. 그리고 페디먼트라 불리는 지붕에 있는 삼각형 프레임의 부조, 로마시대의 예배당인 바실리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도 나오는 3:4:5 같은 비례의 조화..... 머 이런 겁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
"아헨 성당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로마 건축의 틀 위헤 지난 몇 세기 동안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상황, 비잔틴제국의 건축양식 중 돔과 내부 벽화 양식, 그리고 지배 세력인 게르만족의 문화가 일부 투영된 양식이다." 라고 아헨 성당을 쌓은 석공이 말합니다. 석공의 입을 빌려 로마네스크 양식을 정의했습니다.
2. 고딕 : 빛과 탑으로 성스러움을 높이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는 카톨릭 성당인 노트르담 대성당. 1345년 건축. 고딕 양식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로, 빅토르 위고 소설 노틀담의 곱추의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에 있는 관광지 중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2위인 루브르 박물관의 1.5배) 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단어로, 그래서 프랑스 곳곳에 이 이름의 성당이 있다. 성당 외부의 기괴한 모습의 괴물 조각상인 가고일이 유명하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로마네스크를 만들었던 프랑크 왕국은 셋으로 쪼개지는데, 프랑스의 뿌리가 되는 곳은 서프랑크 왕국이었다. 프랑스는 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고딕양식이 가장 발전한 지역도 이곳이다. 프랑스 샤르트르 지역에 있는 샤르트르 대성당. 프랑스 고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고딕양식 성당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세계구급 규모를 자랑하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기도 한 밀라노 대성당. 14세기에 짓기 시작해서 무려 6백년 가가운 공사 기간 끝에 1965년에서야 출입구를 만들었다. 로마 제국의 전통을 지키려는 당시 이탈리아의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몇 안 되는 건물 중의 하나다. 오랜 시간 지어진 덕에 전면부의 화려함에서 바로크 양식의 그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역사적 건축 양식들의 집합체라 더욱 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유럽의 중세 시대는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 천 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로마네스크가 중세의 초기와 성기에 걸쳐 성립되었다면, 고딕은 중세 후기입니다. 중세의 중기와 후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역시 십자군 전쟁입니다.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제대로 붙었습니다. 지금도 진행중이긴 하지만요. 이슬람 너무 밀리는 거 아냐? 영주들의 힘이 약해지고 왕권이 강화됩니다. 당연히 교회의 힘은 줄어듭니다. 종교보다는 개인의 삶이 좀 더 중요해지고 건축의 양식도 좀 더 자유로와집니다.
고딕은 고트족의 양식, 즉 야만인의 양식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기존 로마네스크에서 중요시 여겼던 기중과 페디먼트 등의 고전주의 요소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딕 양식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곳곳으로 퍼져갑니다. 새로이 부자가 된 많은 도시들이 새로운 형태의 대성당을 짓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고딕의 탄생은 빛으로 시작됩니다. 빛으로 사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다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을. 그 시대 쯤 빛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교회에도 좀 더 많은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교회가 옛날처럼 방어의 기능이 필요없어집니다. 그래서 두꺼운 벽은 얇아지고 당연히 창을 내기도 쉬워집니다. 창을 커지고, 내부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위해 유리창을 그림으로 장식합니다.
고딕의 특징은 크게 첨탑, 뾰족한 아치, 플라잉 버트리스, 스테인드글라스, 이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공간을 크게 만들고 역으로 벽을 얇게 만들려고 하니 하중을 받쳐주는 보조장치가 필요한데, 이 '날아가는 버팀벽'으로 건물 바깥에서 건물을 지탱하게 합니다. 첨탑과 뾰족 아치는 수직의 탑이 높을수록 종교적 신념도 높아지리라는 믿음으로 나온 결과물입니다. 유럽의 건물중에서 오래되고 뾰족한 것은 고딕으로 보면 딱 맞습니다. 아는 체 하기 제일 쉬운 양식입니다. ㅎㅎㅎ
3. 르네상스 : 예술가와 인본주의로 도시를 빚다
르네상스의 문을 연 피렌체에, 메디치가의 적극 지원에, 시대의 최고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이 피렌체 대성당이다. 한 마디로 르네상스의 상징이다. 브루넬레스키의 돔 혹은 두오모의 돔이라 불린다. 돔 꼭대기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꽃을 든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다.
피렌체 대성당 부속 세례당의 저 유명한 '천국의 문' 설계 공모에서 기베르티에게 패배한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새 출발점을 과거에서 찾고자 했다. 친구 도나텔로와 고대 로마의 유적을 찾아가 천년 이전의 기술을 다시 공부했다. 무려 19년 동안이나. 고딕의 시대가 되면서 잊혀진 로마의 아치 구조를 연구하면서 그는 새로운 건축의 실마리를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그 유명한 돔을 만들면서 세계 건축사에 이름을 남겼다.
사진 및 글 출처 : 구본준의 블로그 http://blog.hani.co.kr/bonbon/48574
아래 사진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꼭대기에서 바라본 성당의 광장과 로마의 정경이다. 위의 사진은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의 정면부이다. 전 세계 수많은 성당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본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엇, 어느 블로그에 젤루다 큰 성당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있다고 나온다.) 1506년에 짓기 시작해서 1626년에 마쳤다. 브라만테의 설계안으로 짓기 시작해서 라파엘로를 거쳐 미켈란젤로가 돔을 얹고, 그 뒤에도 많은 건축가들 손을 거쳐서 완성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베르니니의 천재적인 예술의 혼이 담겨진 것으로 1656년에서 1667년까지 세워졌다.
이 시대의 성당은 짓는데 백년은 아주 기본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정성을 다해 지으니, 어느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미켈란젤로의 돔은 브루넬레스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가 두오모의 돔을 공부했다고 나온다. 베르니니는 로마 바로크의 선두에 선 인물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르네상스 양식에 화려한 바로크가 더해졌다. 건물이 딱 봐도 조화롭고 아름다우면서도 화려하다. 이러면 보통 르네상스에 바로크가 가미된 양식이다.
위의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whitebooks/6039869
나폴레옹이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불렀던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이다. 학부 시절, 서양건축사 책 속의 그 아름다운 사진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진은 종탑에서 내려다 본 광장의 모습이다. 르네상스는 도시 국가인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는데, 그 중에서도 피렌체, 로마, 그리고 베네치아가 그 중심지였다.
베네치아의 중심지 산 마르코 광장에는 고딕 양식으로 총독의 집무실이었던 두칼레 궁전,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결합된 다분히 중세적인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의 대표 건축가 산소비노가 설계한 산 마르코 도서관(사진 오른쪽)이 있다. 각 층마다 변화된 아치와 기둥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르네상스의 수평성이 고딕의 수직성에 대비되는 개념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르네상스는 기나긴 중세시대가 끝나고 근세의 문을 연 시대입니다. 그런 대변혁이 하루 아침에 짠~~ 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았겠죠. 흑사병이 창궐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여태껏 믿고 있던 종교에 대해서도 개혁이 일어나고, 과학이 발달하여 여태 진리인줄 알았던 사실들이 전혀 거짓임이 드러나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사회구조가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 또한 바뀝니다.
르네상스가 활짝 꽃 핀 곳은 피렌체와 로마 그리고 베네치아입니다. 위의 사진 속 건축물도 이 도시에 있습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알프스 북쪽의 상놈 문화인 고딕을 뛰어넘는 문화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상업을 통해 부를 축척한 도시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로마제국의 터전으로 훌륭한 고전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었고, 강력한 군주보단 도시국가 형태로 봉건제보다 훨씬 자유로왔고, 메디치가로 대표되는 부자 가문들이 예술가에 대해 굉장한 후원을 해 주었습니다.
고딕의 시대에는 '높이'에 집착했습니다. 뾰족하게 높이 올아간 건물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뭘까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라는 개념이 르네상스에 와서 다시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인간의 신체구조와 자연의 비율을 예술에 적용합니다. 그래서 건축도 형태와 비율이 아름다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돔과 기둥, 창 등이 완벽한 구성미를 드러냅니다. 르네상스의 건축물이 여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4. 바로크 : 욕망이 화려하게 수를 놓다.
바로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천재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성당 닫집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사실상 베르니니의 손으로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성 베드로 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다. 사진에 보이는 청동으로 제작된 화려한 조각과 회오리 모양의 기둥, 유러한 곡선형을 이루는 지붕 등 건축과 조각이 동시에 보인다. 바로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다.
사진 출처 : http://deesim.blogspot.kr/2014/07/blog-post_24.html
바로크가 출발한 로마에는 베르니니와 그의 단짝인 보로미니가 있었다. 실제 일은 보로미니가 다했다. 사진은 로마에 있는 보로미니의 대표작인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라는 무지 긴 이름의 성당이다. 건물 정면이 물결처럼 휘어져 자유로운 곡선으로 만들어졌다. 건물에 있는 화려한 조각도 바로크의 특징이다.
건축가 김명식은 해외에 가면 꼭 봐야 할 건물로 이 성당을 꼽았다. 바로크 건축 세계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평했다. 돔 천장 아래 예배당 의자에 꼭 앉아보고, 이어지는 뜰의 공간을 걸으면 건축이 줄 수 있는 근사한 공간감의 최대치를 만끽할 수 있다고. 꼭 가서 보고 말테야.
사진출처 : http://www.mu-um.com/?mid=02&act=dtl&idx=8319
프랑스의 바로크는 절대왕정을 상징한다. 사진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인 베르사유 궁전이다. 아주 예전에 동양의 자금성과 서양의 베르사유 궁전을 비교하는 숙제를 한 기억이 난다. 뭘 비교했는지는 당최 기억 안남. 위의 사진은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그 유명한 거울의 방(1678~84)이다.
바로크 양식이 확산된 이후로 프랑스 귀족들이 바로크를 뛰어넘는 극단적인 화려함과 비정형적인 형태를 선호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로코코Rococo 양식이라 한다. 바로크의 장중한 화려함을 뛰어 넘어 복잡하고 심지어 퇴폐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프티 트리아농과 독일 상수시 궁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글 일부 인용 p.343,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성 베드로 성당, 피렌체 대성당과 더불어 세계 3대 성당이라 불리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돔으로 유명한 이 건물은, 158m의 건물 길이로 성 베드로 성당 다음 가는 큰 규모라고 한다. 원래 있었던 성당이 1666년 런던 대화재로 불타자 1675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35년만에 완공했다.
런던 대화재 이후의 재건 사업은 영국에도 드디어 바로크의 시대가 도래하게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렌은 성 베드로 성당에 기초를 둔 바로크 양식의 설계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카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국교로 한 발주처는 바로 거절, 렌은 다른 양식으로 설계안을 통과시키고 실제는 자기의 생각대로 지었다. 언뜻 보면 고전주의도 보이고, 르네상스도 보인다. 이 건물은 다양하고 복잡한 요구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한 영국만의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이다.
사진 출처 : https://brunch.co.kr/@9sunmi/12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종교개혁은 더욱 거세지고 그 결과 절대권력으로 자리했던 그리스도교가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로마 카톨릭과 '반항자'라는 뜻을 가진 프로테스탄트(신교)로 결국 분화되었습니다. (울나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신교에 밀리기 시작한 카톨릭은 기존의 르네상스에 화려한 장식과 생동감을 가미해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 감동을 더 심어주는 쪽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이 로마의 카톨릭에서 전개된 바로크의 시작입니다.
바로크는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어찌보면 갑갑하기도 한 비례와 조화, 정형성에서 벗어나 좀 삐뚤어지고 싶었나 봅니다. 르네상스 후반 매너리즘에서 보여준 것과 유사한 기하학과 자유곡선, 비정형성, 장식성이 극대화된 양식이 바로 바로크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불안감에서 출발한 바로크는 동시대의 또 다른 권력 축인 절대왕정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게 약간 사람들을 감동을 자아내려고 만든 양식이라, 군주들의 입맛에도 딱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카톨릭이나 절대왕정의 '내가 내다' 라는 권위를 나타내기에 딱 알맞은 양식인 것이지요.
예술사에서 바로크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시대와 양식의 이름이 동일한 마지막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즉 17세기 서유럽사회를 바로크 시대, 바로크 양식이 유행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의 예술사는 하나의 양식으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성의 시대로 돌입합니다. (글 인용 p.363)
5. 신고전주의 : 혁명의 불꽃이 전 세계로 튀다.
볼테르, 장 자크 루소,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등, 프랑스의 유명한 위인들이 누워계시는 프랑스의 국립묘지인 팡테옹(1757~90)이다. 원래는 생 주느비에브 성당으로 건립되었고 그 뒤에 유명하신 분들이 들어가 누우시면서 묘지가 되었다. 그렇기에 박공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세겨져있다.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
건물의 이름도 그렇듯, 파사드도 로마의 판테온에서 따왔다. 건축가 수플로는 로마의 고전주의 양식을 공부했더랬다. 당시 유행한 화려한 로코코의 양식을 따르기보다 천대받던 고딕의 밝음과 그리스-로마 건축의 고전을 통합하려 애썼다. 이 건물의 모델은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다.
사진 출처 : https://www.wishbeen.co.kr/post/c2fdb3d3a6526ad2
흔히들 3대 박물관 하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의 바티칸 미술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을 꼽는다. British Museum으로 영국 박물관이지만 대영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국 박물관이긴 하지만 정작 영국 물건을 별루 없는 박물관이라고....이오니아 기둥과 박공의 삼각형 페디먼트와 같이 그리스-로마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이다. 프랑스 혁명, 정확히는 7월 혁명의 모습을 묘사했다. 잔다르크인줄. 순간의 역동성이 그림의 모든 요소를 압도하는 강렬함을 가지도록 작품을 구성했다. 이 시대의 예술은 지배 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는 것은 뭐니해도 그리스 로마의 그것이었습니다. 중세에 프랑크 왕국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도 이름에서 그렇듯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와 비잔틴 양식을 토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로마네스크 다음의 고딕은 그것에서 뛰어넘으려 몸부림쳤던 결과입니다.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다시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로 회귀합니다. 그리고 바로크는 고전주의의 정형성에서 벗어나려 애쓴 결과이고, 화려한 바로크의 끝에 다시 고전주의로 복귀합니다. 바로 신고전주의 양식입니다.
이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격동을 지나며, 카톨릭과 절대 왕정의 그 초월적이고 권위적인 세계관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관으로 이동합니다. 맹목적 화려함을 추구했던 바로크에서 합리적 조화를 중요시한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태껏 건축은 당연히 지배세력에 의해 지어졌고, 당연히 그들을 위한 건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그 정도의 능력있는 개인이 나타나고, 또 개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양식이 선보이게 되었습니 이제는 양식의 구분으로 시대를 구분한다는게 무의미해졌습니다.
6. 새로운 양식들과 모더니즘 : 사람이 예술 중심에 서다
1851년 영국 하이드 파크에 제1회 세계박람회가 열린다. 파리 박람회에 자존심 상한 영국은 무려 500m가 넘는 순수 유리와 철골로 된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것도 9개월만에. 그렇게 완공된 것이 조셉 팩스턴의 이 수정궁Cristal Palace이다. 영국의 새로운 기술력을 과시한 이 건물은 1936년 화재로 생을 마감한다.
여태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라고 바뀌어왔지만, 이건 건축물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과거 천년동안 변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갑작스레 변해버렸다. 아름다움의 개념자체도.
사진 출처 : https://brunch.co.kr/@fnajk77/53
런던과 파리가 시대 변화를 반영한 도시 경관을 갖춰가는 동안 미국과 스페인은 전혀 다르지만 새로운 양식으로 지역적 특색을 만들었다. 미국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 건축이 나타났고, 스페인은 자연을 원형으로 하는 아르누보가 발전했는데, 특히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천재의 등장으로 스페인만의 독특한 아르누보를 만들었다.
가우디의 대표 건축은 물론 사그라다 파밀리아이다. 절정 고딕의 재림이다. 사진은 그의 또다른 작품 '카사 밀라'로 직선은 한군데도 없이 물결치는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실제 건물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자연의 기하학적 형태를 즐겼다. 설계는 그렇다치고 그 설계를 그대로 시공한 사람들도 여간내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했고 르 꼬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으며 미스 반 데 로에는 "Less is More"라고 했다. 기능이 곧 장식(Design)이 되는 모더니즘 건축이 도래한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2대 학장을 지낸 미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철과 유리라는 재료를 극대화시킨 커튼월 고층빌딩을 실현했다. 사진의 그 대표적인 건물로 전 세계 유리 고층건물의 모범인 뉴욕의 시그램빌딩이다. 막내 동생 쯤 되는 삼일빌딩이 울 나라에 있다.
1958년에 이 건물이 지어졌는데, 60년이 더 넘게 지나도 유사품이 계속 세워지고 있다.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 이 국제주의 건축 그 이후가 궁금하다.
참고로 아래 블로그의 저자는 나다. ㅋㅋ
유리의 대량생산으로 전혀 새로운 건축이 생겨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여태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바꾸고, 노동의 가치도 바꿔버립니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의 '분업화'가 최고 가치가 되었고 일률적인 '단순함'이 최고의 아름다움이 되어버렸습니다.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 라는 양반이 이런 페러다임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생산의 전 과정을 한 사람이 진행하는 것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는 노동이라 보고, 이 연속성이 장인의 즐거움과 만족감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 아름다움이 성취된다고 여겼습니다. 러스킨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그 시대에는 논쟁거리였으나, 지금은 이제 존재조차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슬프게도.
20세기 들어서, 고르뷔제 할배와 바우하우스 교장 선생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 그리고 미스반데로에로 대표되는 기능 위주의 건축은 조화와 형식으로 대표되는 유럽 건축의 전통과는 완전히 결별합니다. 그들의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으로 발전하고 이는 보편적 가치가 되어 우리는 이것을 모더니즘 건축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기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지구 구석구석까지 그 세력을 뻗치고 있습니다.
유럽 건축의 가장 밑바탕에는 그리스-로마 건축이라는 고전주의를 기초로 합니다. 중세 암흑기를 거쳐 로마의 건축을 따라하는 것으로 로마네스크가 생겼고, 고딕을 거쳐 르네상스에서는 고전 건축의 비례와 정형을 차용합니다. 그리고 화려해진 바로크를 지나 다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회귀합니다. 고전주의를 기본으로 일탈과 복귀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에 아예 완전히 다른 형태의 건축이 나오고 현재는 기능이 먼저인 건축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올 건축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모든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양식이 존재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라는 책의 글귀가 맴맴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