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603쪽)
역동의 시대에 다양한 인물들이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어떤 이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어떤 이는 어려운 시대임에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찾아간다. 삶의 갈림길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삶이 더 나았다고 할 수 있는지, 소설을 읽으면서 각 인물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볼 수 있으며, 그래서 누구의 삶이 더 나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옥희의 지원을 받아 성공한 한철은 성공을 위해 옥희를 버리고 성수의 딸을 선택한다. 이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욕을 한바가지 먹어도 싸다. 옥희는 왜 정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그랬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정호는 스승인 명보를 만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깨우침을 얻는다. 비록 그 가르침이 자신을 죽게 하지만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연화와 월향의 선택은 어떤가? 그것이 최선이라 할 수 있나? 더 나은 선택지가 충분히 있었다.
소설 속 이야기를 현실로 가지고 오면 이게 가능한가? 시대의 여러 상황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내 결정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결정이 내 삶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은 이렇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시대의 상황이 어떤 사람을 망쳐 놓기도, 혹은 제대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옳은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을 믿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건 어렵지만 가능하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에서 야수들은 비단 호랑이만을 가르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저마다의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모든 개인도 포함된다. 그 야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영욕과 굴곡의 시대를 거쳐 이렇게 발전한 사회도 만들었다. 책의 인물들을 비롯한 앞서 살았던 위대한 우리 조상들에게 존경을 마음을 표한다.
작가는 아홉 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졌으며,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이야기라 믿고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로 톨스토이 문학상 해외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역사를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모든 게 다 고맙다.
맨 위에 옮겨 적은 글을 옥희의 마지막 감상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 보내고, 그래도 사랑이 있어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했다. 옥희의 말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