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이 마구 생기는 인문학 사전 : 남경태 <개념어 사전>
개념이 마구 생기는 인문학 사전 : 남경태 <개념어 사전>
공동체
공동체Community는 중세 후기 유럽의 자치도시에서 생겨난 코뮌Commune을 원형으로 한다. 신분 질서가 엄격한 영주의 장원을 피해 도시로 몰려든 농노들은 모두 같은 처지였으므로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는 관념이 없었고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평등과 자치가 관철되었다는 점에서 코뮌은 인류 역사상 인간 해방의 이념에 가장 가까운 집단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코뮌은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나폴레옹 3세의 반동적인 제2제정이 몰락했을 때 파리 시민들이 조직한 파리 코뮌이다. 3월 18일에서 5월 28일까지 72일 동안 시민들은 자치와 자율에 기반한 해방구를 만들어 정부에 맞섰다. 결국 정부군에 진압되고 2만 명의 시민이 몰살을 당했으나 그러한 역사적 경험은 코뮌이 왜 공산주의Communism의 어원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p.40)
마르크스주의
현실 사회주의는 몰락했으나 마르크스의 혁명적 낙관주의가 완전히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마르크스가 분석하던 시기의 자본주의와 현대 자본주의의 양태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범주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또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이 사적 성격이 끝없이 갈등의 빚는 모순이 해소된 것도 아니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을 통해 자본주의적 모순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 근본 모순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세계적 규모로 전일화하려는 세계화 전략이 성공하고 나면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이 다시 다른 형태로 고개를 치켜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예언'은 현재까지 판단중지 상태다. (p.115)
사회주의 / 공산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뭇 낭만적으로 묘사한 공산주의 사회의 미래상은 이렇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으며,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한다. 그래서 누구든 마음 내키는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일을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소를 몰고, 저녁 식사를 한 뒤에는 문학 비평을 한다. 그러면서도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되지 않을 수 있다.
........ 그러므로 비록 현실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자본주의가 평등의 가치에 소홀히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이름으로든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은 다시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할 것이다. (p.198)
식민사관
고려 말 120년강의 몽골 지배 시기보다도 훨씬 잛은 기간이지만 훨씬 더 혹독했던 일본 제국주주의 한반도 지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히 복속시키려면 무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력에만 의존하는 통치는 장기화될 수도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측면을 지배하고자 했는데, 그 일환으로 실행된 계획이 바로 식민사관의 날조였다.
민족의 정신을 짓밟고 정기를 빼놓으려면 그 민족의 역사를 조작하고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 주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과거의 역사가 초라했다면 지금 식민지 상태가 된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식민지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서는 그런 문화적 전략이 가장 중요했다. (p.228)
호모 루덴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누구나 할 줄 알 것 같은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면서도 사랑보다는 성공, 권위, 돈, 권력 등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모든 정력을 사용하고 있다."(프롬, <사랑의 기술>.)
놀이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을 일로만 때운 사람들은 막상 그 일이 떨어져나갔을 때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비극을 예방하려면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반드시 놀이의 기술도 배워둬야만 한다. 늘 아이들은 놀이보다 공부를, 어른들은 놀이보다 일을 중시해온 우리 사회에서 정작 그 공부와 일의 발전을 저해해온 것은 바로 호모 루덴스의 관념이 없었던 탓이다. (p.435)
이 책에는 상식도 없고 정보도 없다. 게다가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힘써 외워뒀다 써먹을 만한 미려한 문장도 없다. 한 마디로 사전이 갖춰야 할 어떠한 미덕도 없다. 대신 이 책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종횡무진 초원을 누비듯이 한 개인이 지적 세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겪고 부딪힌 개념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p.5 책머리 글 중에서)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도 많다. 이상한 책도 많고. 처음 몇 줄 읽었을 때, 햐~ 무슨 이런 책이 다 있지? 이런 걸 누가 읽는다고 썼을까? 하고 생각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어려운 용어가 막 등장한다. 그걸 설명하는 내용은 더하다.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놓치기 일쑤다. 근데 이게 은근하다.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제목도 개념어 사전이다. 개념이 생기게 만들어주는 사전.
사전이라고 했지만 위의 인용문에서도 나와 있듯 완전히 개인의 의견이다. 근데 이 견해가 딱 와닿는다. 읽는 내내 저자의 내공에 감탄해서 무릎을 쳤다. 이런 분야에 통달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내용이다.
이런 책을 누가 썼을까 하고 저자를 찾아보니 이미 고인이 되셨다. 지난 2014년에 암 투병 끝에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셨다. 종횡무진 시리즈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저서가 있고,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진짜 종횡무진하신 분이라 나와 있다. 이런 분들은 어찌 이리 빨리 데려가시는지.
책을 읽다 설핏 나도 이런 사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다룰 분야는 역시 건축 용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이 작업, 은근 재미있겠는데.....ㅎㅎ, 근데 책 제목을 뭘로 붙이지? 건축어 사전? 실속어 사전? 완전 개념어 사전??ㅋㅋ)
공구리
콘크리트의 비속어. 공구리를 치다 라고 표현한다. 표준말이 콘크리트지만 현장에서 콘크리트라고 들어본 적이 없다. 가장 고학력인 관리자조차 오늘 공구리 몇 루베 남겼나? 이렇게 표현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친근감있는 우리말 같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이넘을 피하는 게 좋다. 공구리 속에 맨손을 1분만 담가보시라. 손이 어떻게 되는지. 결과는 여기서 밝힐 수 없다. 그만큼 몸에 좋지 않은 재료다. 어쩔 수 없이 새 아파트에 들어가 살게 된다면 일주일 (여유가 된다면 더 오래동안) 정도 보일러를 계속 돌려야 한다. 그러면 나쁜 물질들이 좀 날라 간다.
남향
건축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예전에 중시했던 방향의 개념을 초월하여 짓기에 이르렀다. 자동 강제 급배기 시스템, 자동 햇볕 조절 장치 등으로 사시사철 언제나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는 말은 진짜 개뿔이다. 속지 마시라. 집은 무조건 남향이다. 기술은 절대 자연을 이기지 못한다. 집을 짓는 과정에 북향이나 서향은 곰팡이가 죽으라고 핀다. 똑같은 조건인데도 그렇다. 햇볕과 바람은 집에 꼭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집은 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