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도시가 가장 살기 좋은 도시다 : 데이비드 심 <소프트 시티>
유럽은 자전거의 천국입니다. 자전거가 취미나 동호회 수준이 아니라 정말 하나의 교통 수단입니다. 자전거는 아주 효율적인 이동 수단으로, 어딜 가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유럽 국가,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지난 유럽 여행때 암스테르담에서 4일 정도 머물렀는데, 자전거를 빌려 다녔습니다. 하루는 자전거로 한적한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쓩~~ 하고 추월하길래 보니 할머니였습니다. 무슨 자전거 축지법을 쓰는지 편안하게, 하지만 무지 빠르게 자전거를 타고 계셨습니다. 젊은 여자들도 치마 자락을 휘날리며 페달을 밟고 있었습니다. 아, 네덜란드는 이런 나라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구도심과 신도시, 시외,그리고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를 한번 보시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전거가 건강에 좋으니 많이 타라 라고 홍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자전거를 쉽게 탈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타보니 차보다 자전거가 더 빠르고 편리하면 자전거를 안탈 이유가 없겠죠.
유럽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기본적으로 유럽은 건물이 오래되어 대규모 공사가 어렵습니다. 우리처럼 확 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자전거의 환경과 문화를 잘 정비해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새로운 도시의 경우는 기반 시설의 최우선을 자전거로 삼았죠. 환경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 자전거를 장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약 40년 정도만에 자전거 왕국이 되었습니다.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자전거 주차장을 만들고, 도시의 행정도 자전거를 우선으로 해서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점차 자동차의 속도와 통행을 규제하기 시작하며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유도했죠. 사람들의 높은 시민정신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현재 네덜란드의 전체 교통 수단 절반을 자전거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도 자전거 타기가 아주 수월합니다. 인프라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닙니다.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최근에 자전거의 열풍이 불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이동수단이나 교통수단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습니다. 인프라도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열악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행정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예전에 산업단지라는 인식이 아직 없을 때 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이 동네 저동네에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에서 공장은 여기다 지으라고 구획을 해줍니다. 법규도 만들구요. 이게 맞지요. 도시를 새로 만들거나 재정비를 하면 우선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의 도시에서는 자전거 도로를 정비해야겠지요. 지금처럼 인도의 한켠에 만들지 말고 자전거만 다닐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행정에서 도시를 정비하고 계획하는 분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이렇게 됩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시의원들의 공약이 어디어디 도로를 새로 신설하겠다, 터널을 뚫겠다, 재개발을 하겠다, 뭐 이런 게 아니라 자전거 전용 도로, 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겠다, 그래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전거의 인프라가 만들어지면 아마 누구보다 빨리 자전거를 탈 겁니다. 시민들의 의식이야 벌써 준비가 되었습니다.
얀 겔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덴마크의 건축가인데 보통 Urban Planner라 부릅니다. 도시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겔은 당시 대부분의 건축학도가 그랬던 것처럼 기능에 충실한 모더니즘 건축을 배웠고 그걸 실현하려 했죠. 심리학자인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왜 건축가는 사람에 관심을 두지 않죠?" "어~~ 그게~~" 네, 그렇습니다. 살기에 편리한 건물만 지으려 했지,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건 당시 건축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겔은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 도시를 연구하고 휴먼 스케일을 만듭니다. 코펜하겐은 겔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보행자를 위한 도시, 자전거 타기 편리한 도시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겔은 코펜하겐 시와 함께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로 바꾸기 위해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하였습니다. 그의 휴먼 스케일을 적용한 세계 최대의 보행자 거리 스트뢰에가 생겼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늘었습니다. 도시는 점차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고, 그 결과 코펜하겐은 현재 인간이 만든 가장 이상적인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겔의 휴먼 스케일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속도'입니다. 자동차의 빠른 속도로는 도시를 즐길 수 없으며 도시 생활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걸을 수 있는 도시는 도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도시의 속도를 인간에 맞추는 겁니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건물도 보행자에 맞추어 집니다. 건물이 보행자에 맞춘다는 건, 이 책 21페이지에도 나옵니다만, 같은 밀도의 건물이라도 높은 타워형 건물에서 낮은 안뜰형 건물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건물과 보행자가 접하는 길이가 길어지고 건물이 더 매력적이게 됩니다. 건물뿐만 아니라 도로와 인도,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등이 모두 보행자 위주가 됩니다. 도시의 환경이 점차 보행자에 맞춰가는 거지요. 자동차에 맞춘 도시에서 보행자에 맞춘 도시로 바뀌면 휴먼 스케일의 도시가 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됩니다. 겔은 코펜하겐에서 자신의 이론을 입증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심은 겔 아키텍트의 수석 디자이너입니다. 이 책을 통해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여러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 방법으로 도시를 개선할 수 있고, 일상에서 자연과 이웃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대규모보다는 소규모의 건물, 고밀도 저층 구조.
2.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활용.
3. 똑같은 층이 아닌 서로 다른 층을 이룬 삶의 공간.
4. 연속된 건축물
5. 단일 기능이 아닌 복합기능의 건물.
6. 여러 기능이 집중된 도보 중심.
네, 쉽지 않습니다. 저도 건축을 하고 있지만, 몇몇의 건축가가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민과 관이 도시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하고, 수준이 올라가야 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작은 시도들이 나오고, 그 작은 시도가 우리 삶을 좀 더 낫게 바꾸고, 그런 결과물들이 조금씩 생기고, 널리 알려지고, 보편화 되어야 됩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느리지만 조금씩 옳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조금 더 속도를 내 주기를 바랍니다. 전국체전이 열리는 도시 김해보다는 전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김해, 전국에서 자전거 타기 가장 편한 도시 김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외치는 시장이나 국회의원, 시의원이 나오면 선거 운동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