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다드 후아레스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 : 보두앵, 트룹스 <브라보, 나의 삶>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오로지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에 이끌려 산 책이다. 만화책인데, 좀 이상하다. 일단 그림체가 익숙치 않다.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서 조금 불편하다. 엉성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언뜻언뜻 내공이 보이는 그림들도 있다. 내용은 더 이상하다. 저자가 후아레스라는 멕시코의 도시에 가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는 게 다다. 기승전결 이 따위 것들이라곤 없다.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책은 끝이 난다.
책의 서문에 시우다드 후아레스라는 도시에 대해 꽤 길게 설명한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국의 앨패소와 마주보고 있으며, 과거에는 막시밀리안 제국에 대항하던 근거지였고, 멕시코 혁명의 주동자였던 판초 비야가 가장 좋아한 도시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현실판 헬게이트이자 짐승들의 도시, 마약상들의 판을 치고, 총기 난사, 살인, 납치가 일상화된 그런 도시라고 한다. 아, 생각났다. 영화 <시카리오>의 그 도시다. 고속도로에서 갱단 같았던 미국 경찰들이 마약상을 그냥 사살해버리는 장면, 시체들이 다리 밑에 메달려 있는 장면, 영화를 생각하니 도시의 이미지가 바로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그 시궁창 같은 도시로 보두앵과 트룹스는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면서 그들의 꿈을 묻고 그 꿈을 기록한다. 두 달 동안 저자들은 시우다드후아레스에 묵으며 그 작업을 했다. 여정을 마칠 때쯤 저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열다섯 살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그리고 다른 곳에 정착하기를.
텔레비전 리포트가 되는 것.
아들의 양육을 위해 계속 일할 수 있기를.
충분히 벌어서 대학에 들어간 뒤 산업 엔지니어 경력을 쌓을 수 있기를.
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기.
산 속 내 마을에서 평생 살아가기.
전 사랑을 꿈꿔요.
내 주위에 여자들이 우글거리면 좋겠소.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평화가 오기를.
모든 게 순조롭기를.
공부하고 세계를 여행해보고 시우다드후아레스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견뎌내야 한다 해도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
계속해서 살아가기,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살아가기.
이 책이 나오기 십여 년 전에 이 지역의 어떤 신문사에서 실제로 학교를 돌며 아이들의 꿈을 물었다. 조종사, 소방관, 경찰관, 가라테 선수, 간호사, 교사.... 그런데 12년 후 같은 신문사에서 이제는 어른이 된 그 때의 아이들을 다시 만나 조사해보니 대부분이 마약 거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런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의 꿈은 아주 일상적이고 서정적이다. 그 꿈을 말하고 있는 후아레스 사람들의 얼굴도 꽤나 진지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곳의 희망을 얘기한다.
아침에 개 짖는 소리와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테라스 위에서 폴짝거리는 무신론자. 그의 앞에는 성경에 대한 긍정과 늘 다시 태어나는 도시가,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가 있다. 그 모습은 절망적일 정도로 희극적이다. 내가 그린 초상화들을 생각할 때, 얼굴에 복면을 하고 시신 위로 몸을 숙이고 시신에 관해 뭔가를 기록하고 있는 이 경찰과 나는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경찰은 사망자 뒤편에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삶의 뒤편에 있는 것을 보려는 거라고 주장하련다. 내가 이곳에 찾으러 온 것이 바로 삶이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특히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는 삶이 강렬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p.123)
두 달 간의 여정을 끝내고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삶을 찾으러 왔다는 그의 말이 확대되어 다가온다. 불편하고 엉성하고 줄거리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후아레스 사람들의 잔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참 이상한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