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의 위대한 기록 :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46p
내가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성매매로 유입되어야 했을까? 내가 강간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성매매를 해야 했을까? 나는왜 성매매를 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일까?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이유를 찾아봤지만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낸 것은 누구일까?
이 책은 18살 때부터 룸살롱, 성매매 집결지, 보도방, 티켓 다방 등을 전전하며 성매매 여성으로 20년을 살았던 여성의 위.대.한. 기록이다. 성매매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기도 쉽지 않은데,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자신의 경험을 섬세하게 기록하여 기꺼이 독자들에게 나누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값지다.
작가는 동생의 학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봉제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오직 돈을 바라는 어머니가 있었다. 봉제공장에서 나쁜 놈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어려서 만난 남자 친구는 자신을 임신시키고 수술을 강요한다. 수술 후에는 감당하기 힘들다며 떠난다.
성매매를 시작하며 만난 사람들도 다 나쁜 사람들이다. 성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쓰레기이며, 성매매 업주들도 엄마, 이모, 삼촌, 아빠 등으로 불리며 겉으로는 위하는 척 하지만, 조금만 돈이 안된다 싶으면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더 쓰레기들이다. 성매매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선불금'이라 불리는 그들의 시스템 때문이다. 이 고리대금은 성매매 여성들이 발목에 찬 족쇄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이 작가에게 일어났다. 어떻게 이렇게 운이 없을까 싶을 정도다. 책을 읽으면서 설마 좋은 사람이 한 명도 없나? 라는 질문을 했더랬는데, 작가가 대답을 알려줬다. 20여 년간 업소 생활을 하면서 매너가 좋은 구매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좋은 업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332p
구매자들은 나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것으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돈을 받은 나는 당연히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구매자와 단둘이 있는 장소에는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맞지 않고, 죽지 않으려면 구매자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를 수밖에 없다. 구매자에게 폭력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 경찰은 내가 업소에서 성매매를 했기 때문에 범죄자라고, 성매매를 한 주제에 무슨 신고를 하냐고 말했다.
성매매 생활을 하는 동안 저자는 늘 아팠다. 물론 불규칙한 생활과 술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일상, 제때 먹지 못하는 밥 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특히 몸이 많이 아프다는 사실은 다른 사설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는, 그래서 무섭고 불안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그 압박과 고통이 육체적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고통을 '해리 현상'이라 했다. 해리 현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나 외상 경험으로 인해, 의식이 일시적 또는 지속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이다. 저자는 낯선 남자의 배에 깔려 허우적대는 자신이 싫었고, 그래서 얼른 이 시간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잠시 다른 곳으로 보냈다고 했다. 살기 위해서. 저자의 아픔은 이 '해리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상담사가 말했다.
저자는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는 구매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을 알선하는 포주가 없으면 성매매는 줄어들 수 있다고 썼다. 그리고 성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되겠니?'라는 의문이 남는다.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시민의식이 아주 높은 선진국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후진국을 모두 아우르더라도 남자가 돈으로 여성을 사는 행위가 사라진 사회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매너가 좋은 성구매자 양성하기?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조합 설립? 포주 없이 순수 성매매 여성으로만 구성된 집창촌 만들기? 나라에서 제대로 관리하는 K-성매매업소 신설? 아이고, 50대 남자가 생각하는 것 하곤. 아서라.
책에서 놀라운 건, 일상을 회복하고 나서 자신이 일했던 그 곳에 찾아가는 장면이다. 자발적으로 예전에 몸담았던 성매매의 장소에 찾아간다. 탈성매매를 했다고 해서 그곳에 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 노력이 가상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서두에 적은 작가의 물음, 즉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낸 것은 빈곤이 낳은 구조적인 문제다. 아주 강제적인 자발적 선택이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선택. 결코 그들을 탓할 수 없고 탓해서도 안된다. 이런 우리 사회를 탓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고쳐나가야 할 문제다. 책을 읽고 난 후 얻은 결론이다.
저자는 현재 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좀 찾아보니 강연도 했다. 저자의 위대한 기록과 위대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