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슬픔 1882년 연필 스케치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흔히들 말하는 내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거친 특성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들지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사진 인용 : P 57, 글 인용 : P 64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사진 속 모델은 고흐 일생에 유일하게 함께 살았던 여인 시엔입니다. 불행한 창녀에 알콜중독자인 그녀를 고흐가 돌봄으로써 가족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헤어지게 되고 고흐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버렸다는 자책감에 시달립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4월 캔버스에 유채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 처녀는 날씨와 바람,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또한 농부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고 신사복을 차려입었을 때보다 작업복을 입고 밭에 나가 있을 때가 더 좋아 보인다.
사진 및 글 인용 : P 121사진 출처 : 나무위키
사이프러스나무가 보이는 밀밭 1889년 6월 말 캔버스에 유채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이프러스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이제껏 그것을 다룬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사이프러스나무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가졌다. 그리고 그 푸르름에는 그 무엇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사진 및 글 인용 : P 260사진 출처 : 나무위키
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1890년 2월 캔버스에 유채
며칠 전부터 어머니께 답장을 쓰려 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어 편지 쓸 틈을 내지 못했습니다. 테오와 제수씨가 무사히 분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쁘던지요. 윌이 도와주러 가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이나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사진 및 글 인용 : P 284사진 출처 : http://van-gogh-canvas-giclees.com/p/43/branches-with-almond-blossom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7월 캔버스에 유채
가끔 내가 이미 늙고 쇠약해져 버린 느낌이 든다. 그림에 이토록 열성적이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성공하려면 야망을 가져야 하는데, 내겐 야망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네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에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 열심히 그림 실력을 쌓아서 네 체면을 구기지 않고도 당당하게 내 그림들을 보여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사진 인용 : P 308 글 인용 : P 146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이 그림을 남기고 고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혼란스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거대한 밀밭 그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사람으로 꼽히며, 그의 작품 또한 돈으로는 거의 환산할 수 없는 가격이 매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고흐를 얼마나 알고 있나요?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나요? 저는 기껏해야 '자신의 귀까지 자른, 광기어린 천재 화가' 정도입니다.
책은 자신의 동생이자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고흐가 화가에 입문하기도 전인 1874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한 1890년까지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편지글 형식을 한 자서전처럼 읽혔습니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 생애 전반에 걸쳐 아주 힘든 시간를 보내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열정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열정 못지않게 그림을 잘 그리려는 엄청난 노력도 보여줍니다. 예술의 완성에 대한 그의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이 천재 화가는 어디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 별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랑 똑같이 돈에 대해, 여자에 대해, 성공에 대해, 예술에 대해서 고뇌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이 책 한권으로 고흐가 달라보였고, 친근해졌고, 또 비극적인 결말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 그리고 여자에 대해 갈구하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생전에 잘 팔려서,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그림 그리는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면, 혹은 그를 옆에서 챙겨주고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여인이 있었다면, 과연 고흐는 고흐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흐는 불행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치열하게 살다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그의 글이, 그의 작품이 너는 어떠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 P 189"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제는 그의 책을 읽고, 그의 그림을 보고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