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꺼이 투명인간이 되겠다 : 성석제의 투명인간
나도 기꺼이 투명인간이 되겠다 : 성석제의 투명인간
개인의 역사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까요? 시작은 일단 어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가가 중요합니다. 이거는 자기 맘대로 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개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고, 또 어떠한 일을 하는가도 중요하겠구요.... 또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를 거치며 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도 개인의 역사에서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중년이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인생을 어느 정도 완성하는 시기가 오고... 올까나??? 노년이 되고...... 그리고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물론 그 와중에 역사를 이루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들어갈 겁니다. 그 자그마한 사건들이 모이고 모여 한 인간의 역사가 되겠지요.
시골의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쁘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을 살린 대기업에 취직하고, 적당한 시기에 반려자를 만나고, 아이도 셋 낳고... 그냥 그냥 어려움 없이 중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머야~~ 이거!!! 이렇게 재미없는 인생이었어?? 이런 말이 기냥 나오는 군요.....ㅋㅋㅋ 음~~ 뭔가 터닝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드라마틱하게~~~ ㅋㅋㅋ
멀리서 보면 평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좀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개인의 역사라고 까지 불리울 정도로 거창하지는 않지만, 뜨겁고 치열했던 순간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머 누구나 그렇겠지요. 그런 순간순간의 판단의 근거, 방향성, 혹은 삶의 모토같은 것도 누구나 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경우는 <얽매이지 않는 삶> 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 먼가 있어보여~~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지만 나는 나대로 행복한 상태 - P 347
성석제가 이야기한 투명인간이다. 만수는, 만수의 아들과 아내와, 바보가 되어버린 작은 누나도, 결국 투명인간이 된다. 만수는 왜 투명인간이 되었는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투명인간의 정의가 진정 저러하다면, 나도 기꺼이 투명인간이 되겠다.
책에는 여러 성격의 가족이 나옵니다. 몰락한 지주이자 어설픈 혁명가인 학자 타입 할아버지, 상농사꾼이자 전형적인 마초 타입의 아버지와 그림자 같은 어머니, 엄친아이자 모든 방면에 천재인 형, 희생정신의 대명사 큰 누나, 예쁘지만 바보가 된 작은 누나, 모질게 삐뚤어진 남동생, 그리고 타락한 운동권 출신의 막내 여동생까지.... 한국 현대사에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 겪어면서 이 가족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책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은 주인공 만수입니다. 그의 삶의 모토는 <가족을 위한 삶>입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가족이 해체가 되고 자기에게도 불행이 닥치지만, 그는 삶에 가장 우선 순위는 가족이었습니다. 고엽제에 희생당한 형을 대신하여 가장 역할을 하고, 동생 백수의 아이를 키우고, 연탄가스로 바보가 되어 버린 누나를 돌보고, 버림받은 여인을 아내로 맞아 헌신적으로 대합니다. 만수는 무슨 가족애의 화신이여~~~ㅎㅎ
한창 커 나가는 아이가 셋이나 되고, 노는 것을 무지 좋아하는 마누라를 데리고 살면서도 혼자만의 세계 일주를 꿈꾸는 저로서는 만수의 삶은 언감생심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삶이 있고, 아내도 아내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다' 입니다. 그 삶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화롭게 굴러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소위 '아버지'의 삶이라는 것은 이젠 베이비 붐의 '오래되어 이젠 바래져 버린 옛 것' 이라는게 저의 감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수는 행복해 보입니다. 만수가 행복하다고 말은 안했지만, 힘겹고 고단한 삶이지만, 분명 행복해 보였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만수의 가족중에 가장 바보 같은 삶이었지만, 시대라는, 사회라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희생양 같은 삶이었지만, 그 삶이 자신이 느끼기에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까요.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 작가의 말 중에서
만수가 투명인간이 되고 그리고 순식간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소설도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끝이 납니다. 먼가 좀 이상하다~~ 라고 느꼈습니다. 소설을 마무리 할 무렵 세월호의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작가는 순간적이지만 이 소설을 영원히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합니다. 작가의 말을 보니 그 심정이나, 소설의 결말이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