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야기

장애는 가치가 있는가? :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개락당 대표 2025. 1. 25. 22:31

 

싱어 : 당신이나 당신 아이의 장애를 치유할 수 있고, 그 비용도 겨우 2달러에 부작용도 전혀 없는 알약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알약을 사용할 겁니까? 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알약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테일러 : 글쎄요, 제가 볼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약을 사용하려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싱어 : 그럼 당신은 사용하지 않겠다고요?

 

테일러 : 절대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싱어 : 정말요?

 

테일러 : 장애인들은 항상 그런 질문을 받아왔어요. 장애인들이 그런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수도 있다는 걸 비장애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울 겁니다. 

 

싱어 : 그럼 왜 당신이 그 알약을 쓰지 않겠다는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테일러 : 저는 예술가예요. 그래서 창조성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장애는 이 세계와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저는 누구에게도 입을 사용해 무언가를 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어요. 모든 것 하나하나에는 어떤 차원의 창조성과 혁신성이 깃들여 있죠. 누군가는 이로 인해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몸의 측면이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주 해방적인 일이에요. 저는 왜 제가 장애나 장애인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지, 왜 2달러짜리 알약을 먹지 않으려는지 수많은 목록의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어요.

 

싱어 : 그런데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이 예술가인 것은 아니고, 또 자기 삶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걸요?

 

테일러 : 맞아요. 하지만 예술가만 그런 식으로 느끼는 건 아니에요. 저는 많은 예술가들을 알게 되긴 했지만, 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애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장애인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왜 나는 2달러짜리 알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가? 알약을 먹는다면 들판을 내달릴 수도 있을 텐데! 달빛 아래서 원을 그리며 춤출 수도 있을 텐데! 계단을 층층이 뛰어 오르내릴 수도 있을 텐데!

 

엘리슨 케이퍼는 자신의 저서 <페미니스트, 퀴어, 크립>에서 장애를 두고 치료 의제가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현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직면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가정하는 현실이야말로 치료 의제에 힘을 실어주고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을 부여한다"고 하며, "이 물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대답은 자명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썼다.

 

이런 비장애중심주의적 가정에도 불구하고, 대개 장애는 장애인들의 삶에 스며들어 그 일부가 된다. 장애로 인해 우리가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가 장애인임을 항상 꼭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단지 우리가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애석해하면서, 이를테면 '장애가 없었다면 맨발로 해변을 걸어 다녔을 텐데'라는 식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235쪽~238쪽)

 

 

장애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합니다. 즉, 장애는 곧 다양성입니다. 장애는 고통이 아니라 현상입니다. 장애는 비록 조금 불편할지라도 그것을 지속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네, 장애는 극복해야 할, 혹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럼 치매는 어떤가요? 아무리 봐도 치매는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 같습니다. 암도 그렇죠. 그렇다면 질병은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제 관점을 약간 달리해보겠습니다. 나는 장애가 없으니 대신에 고통을 적용시키면 어떨까요? 내 삶에서 고통은 극복해야 될 장애물인가요, 아니면 고통은 삶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인가요? 장애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듯, 삶에 있어 고통도 가치가 있나요? 가치가 있다면 나의 삶에서 고통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장애가 세계관을 넓혀주었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저자처럼 고통은 나의 세계관을 넓히고 있나요?

 

테일러는 자신있게 답을 했지만 나는 선뜻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노동자가 황소에게서 정액을 '짜낸다'. 이는 그가 황소에게서 자위행위를 하게 만듦을 뜻한다. 그러면 그 정액을 구매한 축산 농부는 정액을 손수 젖소의 질 안에 밀어넣어 인공수정시킨다. 배 안에서 송아지가 자라기 시작하면 젖소의 몸은 송아지에게 꼭 맞은 음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젖소의 젖꼭지를 무는 것은 송아지의 입이 아니라 여러 줄로 이어진 금속 컵들이다. 젖소의 젖은 관을 통해 거대한 통으로 옮겨진다. 젖꼭지에 기계 장치가 반복적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젖소는 고통스러운 피부 마찰을 겪어야 하고 유방염을 앓게 되며, 젖에 고름이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다른 한편 호르몬이 투여되고 유전 조작이 가해져, 젖소는 자연적인 생산량의 10배에 해당하는 젖을 생산하게 된다. 그 결과 젖소의 몸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며, 여러 건강 문제에 노출된다. 이 때문에 농부들은 "자연산" 칵테일에 항생제를 추가로 투여한다. 그러고 나면 젖은 새로 탄생한 송아지에게 전달되는 대신 공장으로 옮겨지는데, 이곳에서 분리되어 지방 함유량이 분석되고, 효소와 미생물을 파괴하기 위해 저온살균되며, 금속판 열 교환기를 통해 전기 교반기로 빨려 들어간 뒤, 다시 분리되고, 또 교반되고..... 그리고 짜잔! "자연산" 버터가 탄생한다. (281쪽)

 

 

수나우라 테일러, 사진 출처 : https://unboundproject.org/sunaura-taylor/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까페에 들어가 글을 쓰려고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필요한 것들을 입으로 물어 가방에서 꺼냅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손 대신 입을 사용할 때 저자는 어떤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깨닫습니다. 입은 동물적이고 손은 인간적인 것을 나타내기에 자신은 동물성을 느낀다고 하며, 그것은 수치심이 아니라 교감이라고 말합니다. 

 

그 장면에서 뭔가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슬픔, 측은함, 자랑스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이 동시에 몰려오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를 찾아봤습니다. 손과 발이 구부러지고 휠체어에 탄 저자의 모습이 주로 나왔습니다.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영상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진 중에서 제일 잘 나온 것을 골라봤습니다. 

 

 

테일러는 이런 비판을 좁은 의미의 동물운동을 넘어 '지속 가능한' 고기 생산 운동과 환경운동으로까지 확장한다. 이제 '동물복지'는 너무 흔한 말이 되었으며,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테일러는 '동물복지'나 '환경보호' 같은 '윤리적 라벨' 뒤에 숨겨진 비장애중심주의를 직시한다. (416쪽) 

 

 

네, 비장애중심주의는 여기서 처음 들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정상적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 방식, 혹은 그 결과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를 대하는 태도, 혹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정상적인 인간의 눈으로 보는 거지요. 저자는 그것을 뛰어넘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 정도가 되면 동물과 식물 뿐만 아니라 저기 있는 돌맹이도 존엄성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을 완전히 뒤집으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저 같은 필부는 인간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만나는 경우도 빈번하지 않고(작년에 특수학교 학생들과 몇 달 수업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장애인 경험이었다), 동물 학대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비건을 하는 우리 아이의 친구들을 응원하지만, 우리 아이가 비건을 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런 저에게 이 책은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읽는 동안 힘들고 머리가 아프지만,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 그리고 동물과 장애, 인종과 계급, 남성과 여성 등에 대한 사회의 억압 등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진정 옳은 것인지 다시 자문하고, 그래서 이런 문제에 느슨해지려는 나에게 다시 긴장을 불어넣은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