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 이 누나가 여자를 알려줄께 : 다나베 세이코의 여자는 허벅지
이리와, 이 누나가 여자를 알려줄께 : 다나베 세이코의 여자는 허벅지
"여자라는 동물을 그렇게 몰라?"
네. 모릅니다.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여자랑 한 지붕 아래서, 한 이불을 덮고, 살을 맞대고 산지 15년이 넘었지만, 도대체 그 여자의 속내를 알 길이 없습니다. 만나서 서로 알아갈 과정에 있었을 때, 오히려 서로를 더 잘 알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시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평생을 산들 그 속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 남녀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하더만,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여자에겐 욕구가 없지 않나요?"
당연히 여자에게도 있다. 하지만 여자의 성욕은 평생에 걸쳐 만물과 닿아 있는 것으로, 남자처럼 좁고 깊게 응고돼 있는 것이 아니다. (p.35)
여자의 성욕은 머나먼 절에 있는 종과 같다. 어둠 속에 숨겨져 있지만 그윽하고 강한 소리를 내며, 여운이 어둡고 묵직하게 깔리면서 음파를 형성하고, 그 음파는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여자를 유혹하려고 하는 건 무거운 죄다.
여자의 욕구는 느리게 다가온다. 아까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 아직도 뭐가 부족한 거냐, 남자들은 모두 여자의 욕심에 진력이 난다고 말하지만, 여자의 성적 만족은 단순히 톱니가 맞물리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유치한, 혹은 간단하고 천박한 것이 아니다. 남자를 거미줄로 공들여 휘감고 아이를 만들어 둥지를 꾸리는 그 긴 시간 동안의 충족을 말하는 것이다. 한두 번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남자의 성욕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알겠는가? (p.38)
하~~ 이런 것이었어? 정말 이런 것이었어??
'여자란 이런 것이다.' 라고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에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리 와~~ 이 누나가 여자를 가르쳐줄께" 의 누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알 수 없는 여자의 더 알 수 없는 '성性'에 대해서는 아는 형에게 배운 지식, 혹은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이나 이종격투기 사이트의 댓글에서 배워 혼자 상상하는 게 다입니다.
그래서 다나베 세이코씨가 설명해 주는, '여자의 성욕'은 나의 뒤통수를 탁 치고 지나갑니다. 알 것도 같습니다. 이걸 이해 할 정도면 어느덧 중년의 아저씨가 된 걸까요???
자! 이 누님이 지금부터 여자라는 걸 가르쳐 줄게.....
그렇지.... 누님에게서 여자를 배운다면 단연코 문소리 누님이쥐~~~
작가의 술 친구로, 그리고 남성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이 책에 나오는 가모카 아저씨와 여자의 일생에 있어 '3대 쇼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3대 쇼크'는 초경, 첫경험, 출산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작가는 아주 콧방귀를 뀝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여자를 모르는 거야." 고 하면서 "처음으로 성적 지식을 접했을 때, 결혼 생활, 그리고 얼굴의 늙음" 이 진정한 쇼크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첫 경험보다는 결혼 생활이다. 동거는 아니다. 동거는 싫어지거나 질리면 바로 헤어질 수 있으니까. 헤어지려야 헤어질 수 없는관계여야 한다. 아이나 돈, 일 같은 속절없는 굴레가 부부를 단단히 옭아매서 아무리 서로가 싫어지더라도 꾹 참고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 싫어도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경혼 생활이 바로 두 번째 쇼크다. 이 쇼크는 아주 질기고 은근하다.
여자는 결혼 생활을 통해 남자의 정체와 본질을 깨닫는다. 밖에 나가면 대단한 천재, 대단한 정치가였던 사람이 집 안에 발을 한발짝만 들여놓으면 누가 보더라도 그냥 아저씨가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아주 천천히 깨닫는다. '하, 이 사회가 이런 남자들로 유지되고 있었던 거야? 정말 그런 거였어?' 라며 사회 구조 뒤편에 가려져 있던 실체를, 지금껏 아무도 본 적 없었던 조각상 안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에 눈뜨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그에 비해 첫 경험, 처녀성 상실 따위는 그저 우스운 이야기가 된다. (p.208)
책은 다나베 세이코 田邊聖子가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슈칸분슌週刊文春>에 연재한 칼럼을 골라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려 40년 전의 글입니다. 그리고 그 다나베 세이코는 1928년 생입니다. 10년만 더 있으면 무려 100살 이십니다.ㅎㅎㅎ
그 40년 전 일본 사회에서 포르노에 대한 비판으로 청소년에게 순결을 권장할 때 작가는 "성의 해방과 인간의 자유, 특히 여성의 자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자가 홀로 자립해 살아가고자 한다면 성의 자유는 제 손에 꽉 쥐고 있어야 한다. (p.277)" 며 여자의 성적 독립을 강조합니다. 우리보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대담한 주장이며 또한 이런 주장을 하는 누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남자의 성적 능력은 여자가 가진 성적 잠재 능력을 얼마만큼 끌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그것을 못하는 남자는 아무리 사이즈가 훌륭하다 한들 결국 성적으로 무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자의 성적 능력을 끌어낼 수 있으려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공통적 기반, 즉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 그 애정이란 게 없다면 이런 경우 아무리 개발에 힘써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의 성적 능력이란 여자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 그런 정신적 능력 또한 포함한다. (p.224)
그러니까 이런 꼴 안 나려면, 부부지간에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애정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부부지간의 그 무엇도 모래성이 될 수 밖에 없다걸 이 누님는 강조하신다. 무릎을 치고 이마를 칠 만큼 공감한다.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노력이 끝이 난다면 더 이상 남자가 아니다." 라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귀엽게 바라고보 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 하는 여자." 일본 책이나 드라마, 특히 만화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남자와 여자의 캐릭터입니다. 실제로 느끼기에도 그러하고, 그래서 여자가 남자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듯한 그런 구도를 이 책에서도 언뜻 나타나기도 합니다. 근데, 의외로 이런 캐릭터의 여인을 아주 좋아합니다. 헤헤헤.....
그 유명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의 원작자인 다나베 세이코는 주 전공이 '남녀에 대한 담론'이라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끊없는 흥미의 원천' 이라는 게 이 누님의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죠.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흥미가 없어지면 맛 간 인생인거죠.
이 누님. 꽤 귀엽습니다. 아닌 척 하면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글이 군더더기 없고 경쾌하고 발랄하고 깔끔하고 유머가 넘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품격 하이퀄러티 음담패설입니다.ㅎㅎ 그리고 약간은 은밀하게 그리고 시종 유쾌하게 '여자란 이런 것이다' 라고 가르쳐 줍니다.
누님.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