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이야기

정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글쓰기 :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개락당 대표 2015. 11. 18. 20:54

 

 

정치적이면서 아름다운 글쓰기 :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오웰의 글은 장인이 수천번 두드려 빚은 칼 같다. 자기 내면을 고찰할 때도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 그 칼날, 망설임없는 글투, 인습과 외압에 굴하지 않았던 삶. 그의 글이 스치는 곳곳마다 살이 베이는 느낌이 소름돋도록 선명하다. 뜨거운 지성으로 인간이 만든 모든 체제의 모순을 비판했던 조지 오웰. 실천없는 앎은 직무유기이며, 대안없는 이상주의는 자기 기만이다.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정의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면, 예술적 욕망과 정치적 신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꼭 읽어보길. 여기 '진실'과 '예술"을 치열하게 좇았던 한 사람의 인생이 있으니.

 

 

 

코찔찔이 아이들의 선생님이자, 지금 내가 얹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자, 내 사촌 여동생의 블로그에 실린 이 책 서평중의 일부입니다. 조지 오웰이 살아있다면, 울 여동생에게 감사의 선물이라도 해야 합니다. 이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요? 저 글을 읽는 누구나가 이 책을 사 볼겁니다. 그래서 저도 사서 읽었는데.....ㅎㅎㅎ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BBC가 발표한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영어작가 3위에 올랐다. (참고로 1위는 세익스피어, 2위는 제인 오스틴 누구신지???  4위는 찰스 디킨스, 5위는 이언 뱅크스). 충분히 기득권의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경찰생활과 돌아와서도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인민정부를 지지하는 의용군으로 참여했다. 위대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 보면, 이미 위대한 개인이다.

 

 

 

인터넷이라는 무한의 바다를 돌아다니면, 저자거리의 사소한 소문을 밝히는 글에서 시작해서 특정 분야의 지식을 전해주는 글, 그리고 글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까지, 여기야 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무림 강호'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글쓰기는 특정인의 기보가 아닌, 열정이 있는 누구나가 접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글쓰기로 밥 묵고 사는 사람보다 일반인들이 쓴 글이 더 신뢰감을 주는 경우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나의 경우는 순전히 나만의 기록, 기억을 보충해 주는 방편으로서의 글쓰기로 시작했습니다. 내가 읽은 책의 느낌을 고스란히 남겨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추억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이게 한 일년쯤 지속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쓴 글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집니다. 근데 평균 방문객이 다섯명이다. ㅉㅉ. 별로 개의치는 않지만, 독자들이 없는 거 보단 있는 게 훨씬 낫다. 당연히!!!  또 같은 책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도 궁금해집니다. 오웰이 책에서 말한 글쓰기의 첫번째 목적인 순전한 이기심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들어선 걸까요.

 

 

 

책 제목과 같은 <Why I Write> 편에 나오는 글쓰기의 이유에 대해 오웰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네 가지의 목적으로 정의내립니다. 첫번째 순전한 이기심, 두번째 미학적 열정, 세번째는 역사적 충동, 네번째는 정치적 목적입니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의 목적은 순전한 이기심에서 시작해서 두번째 세번째 과정을 거쳐 정치적 목적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자랑하려고 시작해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해, 그리고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글로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목적은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데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1946) , 본 책 P 300 

 

 

 

역시 제대로 된 글쓰기는 담배를 물어야..... 커피까지 있음 금상첨화고.....

 

 

 

정치적이면서 아름다운 문장

 

 

 

세상의 부조리와 편견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부딪혀 마침내 그것들을 깨부수려는 작가 정신이야말로 가장 높이 평가해야 하고 글쓰기의 제일 큰 동기라는 그의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글쓰기가 아름다와야 된다고 합니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 그가 하고자 했던 최종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글쓰기, 그 글이 결코 건조하지 않고 아름답게 쓸 수 있게 되는 것. 나를 비롯하여 블로그의 깜깜하고 무한한 바다를 헤메이는 이들의 마지막 종착역입니다. 아직 첫단계인 순전한 이기심에도 입문하지 못했지만, 거기까지 다다를 수 만 있다면, 추혼 16절에 버금가는 절정의 무공으로 무림 곳곳의 절세 강호들과 일합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그의 글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머리속에서 나온 글이 아니라 그의 체험이 녹아있는 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보이는 파시즘과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광기와 전쟁에 대한 비판이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글이 곧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오웰의 짧은 산문 스물아홉편이 실려 있습니다. 읽다 덮다 해서 거의 2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책은 전혀 소화되지 않은 보아 구렁이 뱃속에 있는 코끼리다. 읽기가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볍게 몸풀기로 읽을 만한 산문도 별루 없습니다. 스페인 내전, 1차 2차 세계대전, 파시즘과 나치즘, 트로츠키즘, 그 시절의 영국의 스탠스 등등, 글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오웰이 살았던 시대의 풍부한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을 우화로 표현한 <동물농장>과 스탈린주의를 풍자한 <1984>와 같은 그의 걸작을 같이 읽는다면 이 책에 나오는 문장들의 이해도가 좀 더 올라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코끼리가 소화가 될 충분한 시간이 지나 책읽기와 글쓰기의 내공이 한비광의 허공답보의 수준 정도에 오르고 나서 다시 읽으면, 이 책에 나와있는 오웰의 명문장이 더 다가올지도.... 그런 희망을 품고서, 오랜 시간동안 나를 괴롭혔던 이 책을 이제 책꽂이에 꽂아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