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의 여유, 도심속의 불교 : 임연태의 행복을 찾아가는 절집 기행
도심속의 불교, 도심속의 여유 : 임연태의 행복을 찾아가는 절집 기행
나팔수씨와 지혜장 부부가 절집 여행을 떠난다. 처음엔 웬지 어색하지만, 그들 부부를 따라 한곳 한곳 가다보면 전혀 몰랐던 절집도 어느듯 옆에 있었던 것 같이 친근감있게 다가온다. 책의 표지 사진은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절절한 사연이 있는 대원각이다. 지금은 길상사의 극락전이다.
# 1. 봉은사
"왜 절에서는 절을 세 번 하는 거야?"
"삼보에 귀의한다는 의미지. 불교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는데, 부처님을 불보佛寶,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보法寶, 스님들을 승보僧寶라고 하거든. 이 삼보에 경배하고 의지한다는 의미로 절을 세 번 하는 거야"
"그럼 여보는?"
"같을 여如에 보배 보寶, 늘 보배같은 존재가 여보如寶다 이거야~~~"
추사의 생애 마지막 글씨인 판전板殿 현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는 절이다.
완당 김정희 마지막 작품인 봉은사 판전의 현판이다. 철종 7년인 1856년 이 글을 썼고 야사에 의하면 이 글을 써고 사흘 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처음 저 현판을 봤을 '아니, 이런 개발로 쓴 글을 봤나.... 누가 쓴겨??!!"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글씨의 내력을 알고 나서는 쥐구멍이 필요했다.
사진 출처 : http://m.blog.daum.net/kcyun3/12949113
# 2. 화계사
하버드의 공부벌레가 청바지차림으로 한국까지 와서 숭산스님께 귀의한 것으로 유명한 현각스님. <부처를 쏴라>라는 책도 지었다. 그리고 그 해외 포교의 달인이었던 숭산스님의 부도가 있는 곳이 화계사다.
대웅전 뒷편으로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은 삼신과 칠성신, 독성을 모시는데, 삼신은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산신령이고, 칠성님은 북두칠성 신앙의 주인공이시다. 독성은 홀로 수행해서 도를 얻은 사람인데, 나반존자를 말한다. 즉, 삼성을 모시는 신앙은 우리의 토속신앙과 불교의 짬뽕이다.
대원군의 마눌님께서 이 절에서 졸라 열씨미 기도하셔서 고종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명부전의 현판과 화장루에 걸린 화계사라는 현판이 대원군의 글씨다.
# 3. 청룡사
정순왕후는 청계천 영리교에서 단종과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하고 청룡사에서 스님이 되어 평생을 살았다. 한 많은 목숨은 길기도 길어서 머리 깎고도 65년을 살았다. 절에 사는 동안 매일 앞산 언덕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며 지아비를 그리워하고 안녕을 빌었다.
청룡사에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불이법문不二法門 즉 부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이 둘이 아니다... 그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려 그 마음을 헤아렸다... 머 이런 이야기다. 우화루는 그래서 공부하는 곳. 심검당尋劍堂은 칼을 찾는 집, 그러니까 마음의 번뇌를 잘라버리는 지혜의 칼을 곳이므로 참선하는 곳이다.
청룡사 정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조금 널찍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과 우화루가 마주보고 앉았고, 그 옆에 심검당이 있다. 대웅전 옆에 조그만 명부전이 있으며, 그 뒷편에는 산신령을 모시는 산령각이 있다. 이 다섯개의 건물이 전부다. 저런 전설과 같은 실화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절치고는 그 소박함에 놀란다.
청룡사의 주인공 우화루이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아련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건물도 아련하다. 절집이라기 보단 매무새가 우아하고 단정한 가정집이다. 기품이 있다. 저런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심검당이다. 사찰의 강당이자,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이다. 역시 절집보다는 늠름한 살림집으로 보인다. 청룡사에서 우화루와 심검당은 대웅전보다 빛났다. 그러나 저런 아련한 이별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런 것을 설명하는 조그만 간판 하나 없었다. 겸손한 건지, 게으른 건지. 자랑 좀 해도 되는 건물인데 말이다.
# 4. 흥천사
흥천사는 조선 최초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졌다. 이성계의 첫째 마눌은 한씨였다. 6형제를 낳았다. 물론 이방원의 어머니다. 그러나 역성 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혁명이 일어나고 이성계가 왕이 되자 첩?인 강씨는 조선 최초의 왕후 신덕왕후가 되었다. 신덕왕후 강씨는 태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그녀가 낳은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공은 방원이었다. 방원이 왕이 되자 눈꼴 사나운 배다른 동생은 바로 황천길로 가고 꼴 뵈기 싫은 새엄마의 무덤을 현재의 정동에서 지금의 정릉으로 옮겼다.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진 흥천사이지만, 조선 최후의 왕비인 순종효황후(윤비)가 한대 이 절에 다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패망한 왕조의 마지막 왕비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민비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유비는 일제강점기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광복이 되어서도 초라하게 살았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에서 돌아왔는데 자신이 살던 집(낙선재)을 이승만이 꿀꺽해 버렸다. 나중에는 되찾았지만, 집도 절도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가지 그녀의 곁을 지키던 상궁 3명과 흥천사 인근에서 살았는데, 그때 흥천사를 자주 찾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한다. 운명일까, 숙명일까?
# 5. 경국사
경국사는 경재가 매우 정갈하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건물들이 추녀를 맞대고 있지만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어느 전각 앞에서나 진한 향이 느껴진다. 극락보전 옆으로 명부전과 영산전 산신각 천태성전이 깨끗한 길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푸른 시누대가 바람에 서걱서걱 소리를 내니 전각들을 오가는 발길이 바다를 걷는 듯하고 깊은 산길을 걷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부처님 용어 정리.....
비로자나불
우주만물의 창조신으로 모든 우주만물이 이 부처에게서 탄생하였다. 그럼 머여? 부처중에 보스여??
석가모니불
부처로 모시는 석가모니이시다. 불교의 교조.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처님이라 하면 이 석가모니불을 가르키는 경우가 많다.
아미타불
서방정토의 주불로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거느리고 중생들의 수량수명과 광명을 보장하며 극락왕생을 보살펴 주는 부처님. 음... 실세라고 보면 되나?? 근데 관셈보살님은 아미타불의 꼬붕이었던 거시여?
미륵불
석고모니부처님께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고 56억7천만년 후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구제하는 미래불. 그럼 신라시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이런 거는 56억년 후를 상상했던 것인가?
관세음보살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의 소리를 듣고 관찰하여 온갖 고통에서 구제해 주시는 대자대비의 보살. 그래서 울 할매가 맨날 관셈보살~~ 하셨구나!!
문수보살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을 좌우에서 모셔서 삼존불의 일원으로 되기도 한다. 보현보살이 실천적 구도자로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문수사나 문수암으로 이름 붙여진 절은 이 문수보살을 모신다.
약사여래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의료에 관련된 부처. 그래서 인기가 좋았다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과 함께 4대 부처로 신봉되었다고 한다.
지장보살
석가모니가 돌아가시고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6도(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의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제한다는 보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분신술도 쓴다. 가끔 저승사자 역할도 한다. 지옥에서는 염라대왕과 대립하는 관계지만, 염라대왕이 한 수 접어 주신다.
그 밖에 월광보살, 오백나한, 나반존자, 금강역사 등등이 있으나 설명하자니 넘 길어 패쑤~~~
연꽃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 8~9세기 경에 제작된,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프람바난 근처의 플라오산 사원의 조각.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6. 보문사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 대한불교 보문종이다. 1972년에 창종된 보문종의 총본산이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보문사다.
보문사의 중심공간은 대웅전이라기 보다 석굴암이다. 서울에 왠 석굴암???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왠 석굴암?? 이라고 생각했다. 불국사의 석굴암을 재현했다. 15톤의 화강암 원석으로 본존석가모니불을 조각한 사람은 한봉덕이라는 분이다. 석굴암보러 경주까지 안가도 된다. 당장 보문사로 가보자.
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답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손길이 닿은 흔적들이 역력한 도량이 정겹기 그지없다.
보문사의 하이라이트, 석굴암의 그 대장 부처님이시다. 도심의 세파속에 계셔서 그런지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에 비해 좀 찡그린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경주와는 다르게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일요일 오전의 보문사는 고즈넉했다. 바깥의 높은 빌딩만 아니면 어느 깊은 산속의 절이었다. 스님들이 산책하신다는, 절의 담을 따라 도는 오솔길도 혼자 명상에 잠겨 천천히 걷기에 충분했다. 도심속의 불교, 도심속의 여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절이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모셔진 세분의 부처를 찍었다. 뭔가 다른데, 어느 부처가 어느 부천지는 전혀 모르겠다. 조계사에 가면 대웅전의 세분 부처님 밑에 나는 누구다라고 명찰을 붙여 놓았더마..... 석가모니불은 석굴암에 계시니 굳이 대웅전에 안 모셨을테고. 그럼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님인가?? 가슴에 명찰 하나씩 달고 계셨음 좋았겠다.
# 7. 승가사
승가사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 215호)은 거대한 화강암에 낮은 부조로 새긴 고려시대 양식의 마애불이다. 생동감 있는 연꽃 위에 앉은 부처님은 앞가슴을 당당하게 내밀고 계시는데 굳게 다문 입과 커다란 귀가 무언의 설법을 하는 것 같다.
그 마애불을 보러 올라가는 계단이 108개이다. 한 계단 오를 때 마다 1배씩 하며 오르면 108배를 하고 계단끝의 극락을 만난다. 그 극락의 마애불이 보고 계시는 아래의 중생들은 극락일까? 지옥일까?
# 8. 길상사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나는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그 나타샤이기도 하고 자야이기도 한, 그래서 그 시절 모든 여인들의 스타인 백석이 함께 야반도주 하자고 아예 대놓고 시에다 써서 고백해버린, 백석의 연인 진향 김영한의 대원각이다. (근데 실제 저 시의 나타샤는 백석의 또 다른 여인 '란' 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이라고... 요는 백석이 아주 시대의 바람둥이..... 뭐, 잘생기고 시도 멋있게 잘 지으니...) 법정스님이랑 10년 동안 준다 안받는다 실랑이를 하다 결국 스님을 설득시키고 최고급 요정 대원각을 길상사로 만든다.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는 절이다.
무의식중에 그런 기대를 하고 갔지만, 이제는 대원각의 그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백석의 연인이었던 그 여인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단지 조그만 공덕비 하나가 그 절절했던 이야기를 전할 뿐. 세월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든다고, 길상사는 이제 완전한 절집이었다. 단지 고급 여염집같은 극락전을 보며 그 서슬 퍼른 시절의 요정을 머리속으로 상상할 뿐......
대원각의 안주인이었고, 이제는 길상사의 영원한 주인이 된 자야 여사가 눈을 감을 때까지 머물렀던 '길상헌'이다. 자야 여사의 법명도 '길상화'이다. 길상사에 있는 절집중에서 가장 여염집 분위기가 나고 그래서 가장 친근한 건물이다. 지금은 손님 스님이 주로 머무른다고 한다.
길상사의 핵심 건물 극락전이다. 절집의 대표 건물이 저렇게 ㄷ자 건물은 흔하지 않다. 3대 요정중의 하나인 이웃의 삼청각 메인 건물 일화당도 저렇게 생겼다. 고작 삼십년 전에는 저기서 언니들 불러서 이리오너라 벗고 놀자~~~ 했던 곳인데, 이제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 감히 쉽게 법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사랑때문에 깨우침을 얻은 길상화라는 여인과 그녀의 뜻을 고스란히 불법으로 이어간 법정스님의 공덕이다.
# 9. 조계사
대한민국 불교 1번지이자 대한 불교 조계종 총본산이다. 1910년 전국교구본사의 의연금으로 창건된 각황사를 1937년 현재 자리로 옮기고 이듬해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으로 당초에는 태고사라 하였다.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산태고사법 제정과 함께 조선불교조계종이 발족, 1954년 불교정화운동을 벌이며 조계사로 개칭하였다. 라고 조계사 연혁에 적혀있다. 어렵고 재미없는 글이다. 불교의 여러 종파중 가장 위세가 큰 조계종의 대장절이긴 하지만, 그 역사는 채 백년도 되지 않았다... 머 이런 거다.
조계종이라는 종단의 명칭은 선종의 전통을 계승한 종단임을 표방한 것이다. 중국의 선종 가풍이 달마 대사로부터 제6조 혜능 대사로 이어졌고, 혜능 대사가 머물던 절이 광동의 조계산 보림사였다. 그래서 혜능 대사를 '조계' '조계산인' 등으로 표현하는데 조계란 말은 혜능 혹은 달마로부터 이어져 오는 선禪의 정맥을 뜻하는 것이다. 음... 그렇군. 선종에 미치다시피 한 신라의 어느 스님이 중국꺼정 가서 혜능의 두개골 훔쳐화 하동 쌍계사에 모셨다는 비화를 어디서 봤는데....
'조계曺溪'뜻은 훌륭하다. 근데 이게 1990년대에 저거끼리 치고 박고 막 싸우고 했다. 중들끼리 싸우는 거 많이 쪽팔린다. 불교계가 점차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성장통이라고 봐 줬으면 좋겠다고 책에 씌여있다. 얼마전에는 민노총 위원장 한상균씨가 조계사에 숨어서 화제가 되었다. 잘했다 조계사. 예전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계실 땐 다 명동성당에 숨었었는데......
책에는 17개의 절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쓴 9개의 절 외에도 <진관사> <수국사> <삼성암> <삼천사> <천축사> <도선사> <봉원사> <대각사> 등이 지은이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나옵니다. 좀 멀리 있는 절도 있지만, 맘만 먹으면 금방 달려갈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회사 앞 조계사도 그렇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립니다. 두어번 가봤지만, 그저 건성으로만 봤습니다. 날이 좀 풀리면 종각 아래층에 차 향기 그윽한 전통찻집인 산중다원에서 잠시의 여유를 즐기며 찬찬히 조계사를 둘러볼겁니다. 업무 시간에 땡땡이 치고 나오면 더 재미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