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밭으로 변한 교사, 벼논으로 변한 운동장 : 박도의 항일유적 답사기
옥수수 밭으로 변한 교사, 벼논으로 변한 운동장 : 박도의 항일유적 답사기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 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강 건너 개 짖는 소리 아직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 보련다
- 시인 김규동의 <두만강>. 박도의 항일유적답사기 P 59
건널 수 없는 다리.
중국의 도문에서 바라 본 북한의 산하이다. 다리 건너는 북한의 남양이다. 빤히 보이는데도 건너지 못하는, 아직은 건널 수 없는 다리이다. 김규동 시인의 위의 싯구처럼 저 다리 밑에서 흰머리 날리며 썰매를 탈 수 있는 날이 올까? 어쩌면 벼락같이 올거다. 반드시 그럴거다.
사진 출처 : http://sjoh.hannam.ac.kr/2002/China1.htm
남산공원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갔습니다. 기념관은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나름 유명한데요, 잘 지었다고 나라에서 상도 막 받고 그랬던 건물입니다. 기념관의 위치 또한 저 옛날에 일본 신궁이 있던 자리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답사는 설렙니다. 안중근 의사도 뵙고, 건물 구경도 하고, 청소도 하고, 숨은 돈도 찾고....ㅎㅎㅎ 숭례문을 거쳐 남산으로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참 높게 보였는데, 지금 오르니 남산이란게 참 야트막한 뒷동산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겹습니다.
남산 중턱에 있었던 조선 신궁이다. 일본넘들이 1920년에 세웠고, 해방이 되면서 없어졌다. 저희가 참배하려 세웠고, 나중에는 우리에게도 참배를 강요했다. 개관식에 총독이 신궁보다 더 위에 있던 국사당(산신령도 모시고, 굿하는 분들이 믿는 신들도 모시고, 단군도 모시고.. 우리 민간 신앙의 모든 신을 모시는 굿당의 젤 우두머리)이 눈에 거슬린다면서 인왕산자락으로 쫒아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서울역이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보림재 블로그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그 설욕의 땅을 파헤치면서 새롭게 태어나게 되며 대지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설계자의 말이다. 디림건축의 김선현, 임영환 부부 건축가가 설계했다. 하얼빈의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2009년에 착공하여 2010년 개관했다. 안중근과 함께 무명지를 끊어 피로 맹세했던 12명의 의인을 모티브로 하여 설계를 했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면 12개의 투명한 사각 기둥이 박혀 있는 모습인데, 내부공간은 또 전혀 다르다. 불투명 Glass가 웬지 사람을 끌어당긴다. 기념관입네 하고 거만한 얼굴이 아니라서 좋다. 기념관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효창공원에 있는 김구선생 기념관은 웬지 오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그래서 들어가기가 주춤해지는 건물이다.)
숨어 있는 입구로 들어가는 과정에 검은 벽에 있는 선생의 자취를 본다. 기념관엔 아직 들어가지도 안했는데 웬지 마음이 경건해진다. 이런 훌률한 건물을 설계한 이가 실제 개관식에는 초대받지 못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건축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가 머 이정도다. 떠그럴. 하긴 서울시청사 개관식에도 설계자인 유걸선생은 저 한쪽 귀팅에서 쪼그리고 앉아계셨다.
들어가자 마자 저렇게 앉아계신 안중근의사가 반겨주었다. 어서 오니라~~~ 외부에서 바라보는 분절된 공간과는 달리 안은 훨씬 트인 공간이다. 기념관의 여러 공간을 돌면서 안의사의 저 모습을 위에서, 앞에서, 뒤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입구로 들어가는 좁고 긴 통로나, 이런 공간의 체험이 각 전시실에서 보여주는 안의사의 행적과 이념을 더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하얼빈 역에서의 의거 후 안중근의사가 잡혀온 곳이 하얼빈에 있는 일본총영사관입니다. 일송 김동삼 선생을 비롯한 북만주 일대에서 잡힌 우리 독립투사들은 거의 모두 이리로 끌려와서 고문을 받았댑니다. 그 악명 높던 건물이 저자인 박도 선생이 찾아갔을 땐, 화원여사란 이름의 싸구려 여인숙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지하 감방이었던 곳에 놓인 여인숙의 허름한 침대를 보며 작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합니다.
하얼빈 옛 일본총영사관. 사진 출처 - 안중근의사 기념관
그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이 싸구려 여인숙으로, 지금은 소학교로 변했다. 골조는 옛 그대로이고 외벽만 빨간 벽돌로 단장했다.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 보니 책에 있는 박도 선생의 사진과 글이 모두 오마이뉴스에 실려있다. 밑에 나오는 모든 사진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그가 찍은 사진에서 퍼왔다.
사진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464394#cb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관련한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중의 하나는 '신흥무관학교'입니다.
이 학교 설립자와 선생님과 학생을 일일이 열거하기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상룡, 이시영, 김동삼 같으신 분은 설립에 관여했고, 한국무장독립투쟁의 전설 김원봉 선생이 이 학교 학생이었구여,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주인공 김산(우리 큰아들 이름이 김산인 이유. 아들은 알랑가??)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영화 암살에 조진웅이 맡았던 '속사포'도 이 학교 출신입니다.
언젠가는 한번 가보리라 생각했던 그 신흥무관학교의 자리는,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논이나 밭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모든 것을 삼킨다고 하지만, 학교의 터라고 보여주는 사진은 차라리 허무합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첩첩산중에 세워졌던 학교는, 그래서 찾아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곳을 저자는 기어이 찾아갑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교사는 옥수수밭으로, 운동장은 벼논으로 변한 고산자의 신흥무관학교 옛 터.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물론 똑같은 사진이 책에 실려있다.)
동행한 이항증씨는 당신 아버지의 모교인자라 옥수수 밭고랑을 헤치면서 선친의 남은 체취라도 맡을 양인지 이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국가보훈처나 광복회에서는 중국정부와 협조하여 이곳에 '신흥무관학교 옛 터'라는 표지석일도 제대로 세워서 훗날 자랑스러운 조상의 유적을 답사하려는 역사학도가 이곳을 찾았을 때 막연해 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 P 163
(이항증씨는, 초대 국무령이자 영원한 임청각의 주인공인 석주 이상룡선생의 증손자이고,신흥무관학교에 다녔던 아버지는 이병화선생이다. 임청각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http://keatonkim.tistory.com/entry/어디까지-가봤니-울나라-건축물-4-한번쯤-묵어-가고-싶은-고택이야기-10선 여기로 들어가시면 되겠다. 저자는 나다.ㅋ)
청산리 마을 뒷동산에 세워진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진짜 가보고 싶다. 근데, 울나라 사람들 많이 갈랑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3854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내부에는 회의실과 집무실, 그리고 김구 선생이 사용했다는 소박한 침실이 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국무령, 주석의 사진도 걸려 있는데, 그 사진 한장 찍으려고 복무원 아가씨랑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 좀 울컥했다. 상하이는 우리집 안방 드날들듯 다녔는데, 金色年代를 비롯한 유명한 KTV만 들락거렸지, 저기 한번 갈 생각을 못했다. 진짜 부끄럽다.
책을 통해 안중근의사의 하얼빈 역에서부터 두만강, 명동촌 윤동주 생가, 조선족 자치구 연길, 청산리 전적지에 다녀왔습니다. 봉도동 전적지를 비롯한 어랑촌, 백두산, 백서 농장, 양세봉 장군의 왕청무과 고구려의 기상이 숨쉬는 집안의 장군총까지 다녀왔습니다. 아직 중국에 남아있는 우리 독립운동이 흔적은 아마도 많을 겁니다. 책은 어쩌면 일부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일부를 이제 박도 선생의 이 책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공부거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공부를 하게 되면 중국에 가 보고 싶은 곳이 더 많이 생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