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5일을 아시나요? :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5월 35일을 아시나요? :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5월 35일
이것은 허구의 날짜일까? 아니다. 진실이다. 이 날짜는 1989년 6월 4일의 톈안문 사건을 가리킨다. 6월 4일은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금지된 날짜다. 사람들은 이 날을 기념하면서 교묘하게 '5월 35일'이라는 가상을 날자를 만들어 정부 당국의 인터넷 검열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p.7)
톈안문 광장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 그들이 정부에 요구한 것은 민주화와 부정부패의 척결이었다. 마오의 사망이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문화대혁명의 잘못된 이미지를 완전히 씻어내고, 쥐를 잘 잡는 고양이면 검은 넘이든 흰 넘이든 상관없이 우대하는 개혁개방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는 더욱 심해지고, 아래에 고인 백성을 더 살기 힘들어지고.... 또한 소련의 고르바초프의 영향과, 가까운 한국에서도 87년 6월 항쟁이 성공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는 과정 등을 본 중국인들은 쪽팔렸다. 그래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지고..... 결정적으로 1989년 4월 그나마 시민의 편에 섰던 후야오방 당 총서기가 사망하고나자 불은 더욱 활활 타오르고, 그 뒤를 이은 자오쯔양은 눈물로 시민들과 대학생들에게 호소를 하지만, 그마저도 해임된다. 그리고 마침내 6월 4일 중국의 운명을 결정해버린 사건이 터져버린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정말 인민들을 해방시켰다. 그것도 무자비하게 총과 칼과 탱크로. 아무런 무장이 없는 시민들을 학.살.한 이 사건은 해외에서 베이징 대학살로도 불린다. 중국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죽은 사람이 931명, 부상자가 이만명이라고 하고, 중국 적십자는 2,600명이 사망했다고 했는데 실제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 정치 체제의 시계는 딱 여기서 멈춰버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시츄에이션.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평가는 아직까지도 '당연한 조치'이다. 중국이 제대된 길을 가려 한다면, 내 생각엔 가장 먼저 해야될 일이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64항쟁'에 대한 재평가라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중국의 역사와 문화와 중국어를 한창 배우던 나이 먹은 대학 시절, 그 공부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중국 문학, 특히 시나 고전문학 같은 걸 배울 때면 웬지 스스로가 고상해져서 마침내 작자의 심정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 경지에 다다른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 배운 싯구들을 중국 생활에서도 써 먹곤 했더랬습니다.
酒逢知己千配少 지우펑쯔지치엔뻬이샤오 : 맘 맞는 사람끼리면 천잔의 술이 모자르고
話不投己半句多 화부토우지빤쥐뚸어 : 말 안통하는 넘하곤 반마디의 말도 많다.
뭔가 폼나지 않습니까? 저런 무릎을 칠 만큼의 멋진 구절을 만든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꿈과 희망을 품고 갔었습니다. 근데 이게 웬걸~~ 막상 겪어 본 중국은 후덜덜이었습니다. 제가 중국 생활에서 느낀 걸 한 마디로 하자면,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입니다. 요지경이었습니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 시궁창같은 현실속에서 언뜻언뜻 비춰지는 대륙의 기질이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중어중문학을 전공으로 하고, 중국을 말그대로 뻔질나게 다녔으며,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같이 살아보기까지 했는데, 당근 중국 여친도 있었다. 어험험. 실제로 중국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코끼리 다리의 주름 정도입니다. 아주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입니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인들의 생각이 머리속에서 정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아하~~ 그렇구나~~ 의 연발입니다. 나름 중국에 관한 책을 읽긴 했지만, 중국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입니다.
그들의 손에 아무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신념만은 대단히 확고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움직이면 군대와 탱크도 막아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이 한데 풍쳐 있으니 거센 열기가 솟아올랐다. 모든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 같았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가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36 <인민>편)
1989년 톈안문 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미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자면 톈안먼 사건이 중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정치체제 개혁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중국 정치체제 개혁의 발걸음은 경제체제 개혁에 비해 다소 뒤처졌지만 여전히 개혁 과정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톈안문 사건이 발생한 뒤로 정치체제 개혁은 완전히 정체되고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인들은 이로 인해 곧장 갈등만 가득한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p.301 <산채>편)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과거라고 해봐야 1960년 생인 작가의 어린 시절, 혹은 학창 시절,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국가에서 부여받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전전하던 시절입니다. 즉, 중국이 가장 버라이어티한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기입니다. 그 때의 아주 사소하고 의미있던 기억들을 꺼내어 가식없는 솔직함과 버무려, 작가가 바라본 중국의 민낯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화'를 처음 접한 건 '인생' (活着 훠줘 : 살아간다는 것) 이라는 아주 오래전의 책을 통해서이다. 중국에 한창 관심을 가졌을 때, 누군가의 추천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았다. 지금은 주인공 이름이나 줄거리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제목만은 아직 선명한 걸 보면 꽤 감흥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그 감동을 글로 남겨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만이 가득하다. 그 옛날의 내가 책과 소통했던 과정을 지금 읽는 재미는 얼마나 좋을까. 지금이라도 열심히 독후감을 적어야하는 이유다.
사진 출처 : http://www.oeker.net/bbs/board.php?bo_table=garden&wr_id=386609
우리가 배웠던 '마오저뚱'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그리고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은 어떠한가요? 그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실체를 우리는 얼마만큼 느끼나요? 그리고 그 역사적 사건이 중국 민중에게 미친 영향은 또 어떠할까요? 작가는 그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가족이 모여 자아비판을 하고 그 대자보를 어디에 붙일까 고민하던 아무 생각없던 철부지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은근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책은 그런 식입니다.
중국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
중국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입니다. 무수한 혁명을 거쳐 오늘날에 왔으며 그 절정은 공산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곤 중국인들의 정신을 새롭게 개조하는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불리는 경제혁명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혁명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역사 또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흘러옵니다. 그런 나라의 친구들에게 가끔 했던 말이 "니먼메이요우꺼밍찡션 (너거뜰은 혁명정신이란곤 없어)"이었다.
그 소용돌이 가운데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불같이 타오르는 가장 밑바닥의 개인을 그리면서 작가는 자기의 조국을 비꼬고, 풍자하고, 조소합니다. 5월 35일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발가벗은 중국의 치부를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러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녹아 책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건 사랑입니다. 중국의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의 다른 작품도 언제나 고통받는 민중의 가장 밑바닥 인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작가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느낌은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354)
P.S.
1. "우리나라의 고통은 곧 나 개인의 고통인가?" "내가 조국을 사랑하는 방법은?" 답변이 곤궁하다.
2.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이 말은 곧 사랑이다. 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원동력은 곧 사랑이 되나.... 이것 역시 답변이 곤궁하다.
같이 읽은 책
역사적 격차는 유럽인이라면 400년에 걸쳐 겪었을 파란만장한 변화를 중국인은 불과 40년 만에 겪도록 했고, 현실 속 격차는 동시대의 중국인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게끔 분열시켰다. 앞에서 말한 베이징의 사내아이와 시베이 지방의 여자아이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 둘은 같은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지만, 그들 꿈의 차이는, 한 아이는 오늘날의 유럽에 살고 다른 아이는 400년 전의 유럽에 사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라는 이중의 거대한 격차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환자라고 할 수 있고, 모두 건강하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극단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과 과거를 비교해도 그러하고, 오늘과 오늘을 비교해도 역시 그러하다.
30년 전에 이야기하는 직업에 막 발을 디뎠을 때, 노르웨이 작가 입센의 말을 읽었다. 그는 말했다.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다. 그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치료법을 찾는 사람이라 하겠다. 나는 한 사람의 환자이기 때문이다. (p.13)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와 이 책 모두 현대중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낸 '위화'라는 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전작이 현대 중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는 위화 개인의 이야기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말랑말랑한 느낌입니다. (전작은 중국 본토에서 출판이 안되었으나 이 책은 출판이 가능했다. 이 사실로도 책의 수위를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의 고통이 곧 위화의 고통이며, 중국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 위화도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며, 한국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며, 우리 사회의 병폐에 대해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책을 다 읽고 그 말한 위대한 문학 작가나 여행이야기나 월드컵 혹은 농구 이야기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말은 나의 뇌리에 선명합니다.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