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지지 않을 것들 : 이문영 <웅크린 말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지지 않을 것들 : 이문영 <웅크린 말들>
'우리'의 편안한 일상을 지탱하는 '우리'의 가혹한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 이 시대의 언어와 문자의 최전선이다. (p.480)
사북의 폐광 광부와 강원랜드 노동자
시멘트 광산의 원주민과 노동자
구로공단 기륭전자 그리고 가산디지털단지의 노동자
삼성전자서비스의 에어컨 수리 기사
다양한 일터의 여러 알바생
대부업체 콜센타 직원
구룡마을의 넝마주의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 근로자
15년 동안 한국에 살았으나 한국인으로 귀화하지 못한 티벳 사람 민수씨
간척 사업에 동원된 한센인
부부로 살아왔으나 부부가 되지 못하는 동성혼자
소양강의 수몰민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
물대포에 맞아 세상을 뜬 농민 백남기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
그리고 세월호와 아이들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으면 평생을 알지 못하고 지내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들인데 말이죠. 그 사실들은 대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삶의 이면에 붙어 있습니다. 비루하고 참혹하고 처절하고 우울한 일들입니다. 위에 열거한 이 책에 나오는 주제들도 그러한 사실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존재들과, 그 존재들의 삶과, 그 존재들이 처한 사실을 기록하는 실험이라 말하면서, 말해져야 할 것들이 말해지도록 '빈 곳을 메우는 일' 이라고 자신의 작업을 평했습니다.
"형, 이렇게 일하는데 왜 살기가 점점 힘들어져?"
언젠가 동생이 전화로 울며 말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아지지 않겠냐?'는 제 말에 동생은 화를 냈습니다.
"지금도 죽어라 일하는데 얼마나 더 죽어라고 일해야 하는데?"
(p.128 삼성전자서비스 에어컨 수리 기사 최종범의 이야기 중에서)
가슴이 막히고 울렁거려서 이 책을 한 번에 많이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몇 장 읽다가 책을 덮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 했습니다. 글은 저 깊은 밑바닥에서 막은 입에서 삐져 나오는 웅웅거리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를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을 말해지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라면, 그들로 인해 겨우 세상으로 나온 말들을 읽는 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견뎠습니다. 표정없는 문장들을 온 몸으로 받았습니다.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책을 읽는 나한테 물었습니다. "왜 애써 이런 책을 읽냐?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냐?" 대답을 못하고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러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 조세희 선생이 쓴 표지글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딱히 뭘 할 수는 없지만, 책에 나오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마음을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답을 찾았습니다.
이 콱콱 막히는 세계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이 세계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이라도 각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난쏘공'의 난장이들이 자기 시대에 다 죽지 못하고 그때 그 모습으로 이문영의 글에 살고 있다. 이문영의 글이 자기 때를 어쩌지 못하고 기어 나와 그 한 사람의 일을 하는 것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 소설가 조세희 (책 뒷 표지글 중에서)
덧글. 책 속에 나온 인물과 사실들
#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기륭전자 노동조합을 이끌어왔다. 전태일 열사가 꿈꾸던 세상을 꿈꾸던 그는 '사람다운 삶'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1895일 동안 투쟁했다.
구로공단 50돌 기념 50인 선정에서 '50번째 인물'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거부했다. '김문수 같은 인물'과 한데 이름을 올리기 싫어서.
#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염호석 열사
2013년 10월 31일 삼성전자서비스 천안두정센터 수리 기사 최종범은 노조 활동 인정 등을 요구하며 목숨을 끊었다. 2014년 5월 17일에는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종범의 아내는 딸 별이를 두고 죽을 생각을 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염호석 열사의 유해를 놓고 경찰과 노조가 대치했다.
# 이주노동자 티벳 사람 민수
세 아이 아빠 민수는 티벳 사람이다. 민수의 아버지는 달라이라마를 따라 인도로 망명했다가 다시 네팔로 이주해서 민수와 형제들을 낳아 키웠다. 많은 티벳인들이 인도로 네팔로 또 다른 나라로 이주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민수는 독특하게도 한국으로 이주해서 근혜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큰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민수는 한국 귀화를 신청했다. 면접 시험을 무난히 치르고 좋은 결과를 기다리던 그는 '불허통보'를 받았다. 불허이유는 '품행미단정.'
# 농민 백남기 그 뒷 이야기
백남기의 마지막 밀은 2016년 11월에 파종돼 2017년 6월 다시 수확됐다. 보성군 웅치면 11개 농가가 나눠 심어 19톤을 거뒀다. 첫 번째 수확에서 두 번째 수확 사이 정부가 바뀌었다. 그를 '테러리스트'로 지목했던 대통령이 탄핵되어 물러나자 그를 '병사'로 규정했던 서울대병원이 사인을 '외인사'로 수정했다. 살수 경찰들은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를 그대로 수용한다고 밝혔고, 이낙연 총리가 새 정부를 대표해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전 정권에서 수사를 지연하던 검찰은 유족이 고발한 지 2년이 다 된 2017년 10월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정 등 네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p.370)
# 세월호 희생자 윤희의 가족
딸을 잃은 윤희 엄마는 직장을 그만뒀다. 윤희 아빠는 석 달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항암 치료를 받던 할머니는 윤희를 잃고 병이 악화돼 2015년 3월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활달하고 친구가 많았던 윤희의 동생은 말수를 잃었다. 윤희를 잃은 뒤에도 가족들은 계속 무언가를 잃고 있었다. (p.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