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다 고로... : 이상헌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우리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다 고로... : 이상헌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의 정책특보라는 저자의 약력에 눈길이 갑니다. 응? 국제노동기구는 머하는 데야? 유엔 산하의 노동 문제를 다루는 전문 기구라는 군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구요. 1919년에 생긴 꽤 오래된 기구인데, 1969년에는 여러 활동들이 인정되어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고 하네요. 1944년에 필라델피아에서 ILO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선언을 하였는데 이게 꽤 의미가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필라델피아 선언
1.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2.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에 필수적이다.
3.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에 대한 위협이다.
4. 궁핍에 대한 투쟁은 각국 내에서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동시에 노동자 및 사용자의 대표자가 정부 대표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일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지속적이고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에 의해 수행하여야 한다.
뭐, 읽어보면 당연한 말입니다만, 이 당연한 것이 예전엔 당연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니까 국제기구가 이렇게 거창하게 선언까지 막 하고 그랬겠지요. 간단히 말해서 국제노동기구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을 하게끔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기구입니다.
ILO에 대해서 찾다보니 올해 1월에 저자가 국제노동기구 정책특보에서 고용정책국장으로 승진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오오~~~ 그게 얼마나 높은 자린지 감이 안와서 또 찾아봤더니 전체 직원이 2900여 명인데, 국장급의 인사는 23명 정도 라는 군요. ILO 9개 정책담당 사업국장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라는 기사도 함께요. 울나라 사람이 저렇게 높은 자리에 있다니 으쓱해집니다. 물론 일도 잘 하시겠죠.
자신이 직접 쓴 것 같은 약력도 재미있습니다.
노동 경제학을 전공했고 그 인연으로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첫 직장이라고 여겼으나 자칫 마지막 직장이 될까 ‘걱정’하고 있다. 노동시간과 임금 문제를 주로 연구했고, 연구 결과를 들고 장돌뱅이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태생적 한계와 섣부른 시작 때문에 아직 경상도 영어를 뻔뻔하게 구사하고 있다. 퇴직한 후에는 지리산 자락에 집 짓고 살고 싶은데, 어느 ‘용한’ 능력을 가진 분이 그럴 리 없다고 초치는 바람에, 나는 괴롭고 아내는 내심 흐뭇해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나, 한국을 눈과 가슴에 담아 두고 산다.
은퇴하여 한적한 시골에 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나는 괴롭고 아내는 흐뭇한 상황이 저랑 똑같네요. 공감했습니다. ㅋㅋ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 난 유엔 건물들은 다 머찌더라. 오스카 니마이어가 설계한 뉴욕의 유엔 본부도 그렇고. 사진은 게티이미지에서 퍼왔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장은 노동하는 일터의 모습이 나옵니다. 두번째 장은 경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 특히 불평등, 임금, 노동시간에 여러 이야기가 나오구요, 마지막은 사람의 풍경에 대한 글로, 특히나 문학과 문학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썼습니다. 김수행 교수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의 글은, 경제학 박사라는 주전공을 무기로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견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때 문학도를 꿈꾸었다는 저자의 말이 사실로 믿게 할 만큼 문장이 쉽고 간결하며 가볍습니다.
1장에서 '노동자는 게으르다'는 명제의 진위를 밝히는 글이 있습니다. 노동자는 틈만 나면 '농땡이' 칠 궁리를 한다는 군요. 헐, 들켰다. 어떻게 알았지? 그래서 고용자들은 작업 방식에 대한 과학적 지침을 만들고 노동자들이 이에 따르게 합니다. 노동자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조올라 일해도 월급은 안오르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은 3배 올랐는데, 임금은 60%가 올랐다는 근거도 있습니다. 여기에 해답은 이렇습니다. '기업주가 고.임.금.과 자.율.성.이라는 선물을 주면 노동자는 화답한다.' 근데 거의 없죠. 고임금과 자율성을 주는 기업이. 현실은 하나만 줘도 감지덕집니다. 써글.
최고임금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인상적입니다. 최저임금은 있는데 왜 최고임금은 없지? 그럼 만들지 뭐. 해서 처음 만든 이가 루즈벨트랩니다. 이게 경제가 어려울 때 만들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제법 살만하니까 유야무야 없어져버렸습니다. 굳이 자본주의 정신에 거슬리는 최고임금을 시행할 필요가 없었겠죠.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월급은 회사가 결정하는데, 회사의 대빵 월급은 저거끼리 속닥속닥해서 정합니다. 뭔가 냄새가 나기도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넘 많습니다. 우리 회사 대빵의 월급이 30억이라는 말을 인사과 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의 "헐~~"을 아직 기억합니다.
그래서 최고임금은 얼마로 하는데? 법정 최저임금의 20배 정도가 적당하다고 합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의 연봉이 7530원*주52시간*52주 = 2036만원이 나오니까 최고임금은 4억 정도가 됩니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군요. 반대하는 사람이 꽤 있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되면, 최고임금을 더 높이려면 최저임금을 높여야 되니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가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그리스의 구제금융을 그리스 지하로 흐르는 5개의 강에 비유하며 쓴 글은 압권이었습니다.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아테네 방문, 허리를 졸라매고 2년만 고생하면 나아지리. 그들의 말대로 그리스 사람들은 개미 허리가 되도록 졸라 맸으나 돌아온 건 악순환의 고리. 과연 누구를 위한 구제였나? 그리스 사람들인가? 아니면 그리스 국채를 가지고 있는 채권자들인가? IMF를 먼저 겪었기에 그 글은 더욱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무려 500년 전에 하루 6시간의 노동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도 모두가 생산에 참여한다면 6시간 노동으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이게 참 어려운가 봅니다. 500년이 지나도 아직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있으니. 그것도 잘 지켜지지 않아 나라에서 주 52시간만 일하라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 조금 줄여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기업은 사람들을 더 고용해서 그 시간을 메꿔 다 같이 잘 묵고 잘 살자는 취지입니다. 근데 울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는 어떡하면 기존 직원으로 꾸려나갈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별 희한한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을 더 쓰라구, 이것들아. 에잇! 아, 얘기가 삼천포로 잠깐 빠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부애가.....
제목이 좀 거시기합니다. 근데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라는 뜻은, 실은 우리가 누리는 편리는 '타인의 노동'을 통해서 제공되는 것이며, 조금만 불편해질 각오를 하고 그걸 감수한다면 그 편리를 제공하는 사람의 큰 수고를 덜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노동'을 제공받는 사람인 동시에 그것을 제공하는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더불어 서로 존중하며 잘 묵고 잘 살자는 말입니다.
낯선 언어로 살아가는 떠돌이 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람이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마음 한켠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댄다. 그럴 때마다 내 언어로 끄적여서 바깥으로 내보냈다. 돌이켜 보면, 어설픈 방식이었다. 그렇게 바람이 떠난 자리에 언어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마치 몸에 쌓여 가는 납덩어리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 마음 구석구석을 부랴부랴 쓸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글들을 모아서 내본다. 홀가분하고도 미안하다. (p.4)
잘 읽힙니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글이 가볍습니다. 국제노동기구에서 일하려면 바쁘실텐데, 어찌 이리 쓰셨을까. 좋아서 하는 겁니다. 글 쓰는 일이 좋아서. 남의 땅에서 오래 살다보니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틈틈히 그렇게 쓰다 보니 이런 사뿐사뿐한 글이 나왔습니다. 좋은 곳에서 일하시고, 품격 있는 일을 하시고, 글도 쓰시고, 책도 내시고..... 부럽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