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믿음직스러운 우리 아들 산 : 박미자의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
가장 믿음직스러운 우리 아들 산 : 박미자의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
큰 아들 녀석이 졸업을 했습니다. 덩치나 생김새는 거의 고등학생인데,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다니..... 이건 반칙이야!!! ㅋㅋㅋ 졸업식이 시작되고 국민의례가 있습니다. 애국가를 아이들이 부르는데, 아내는 머가 울컥한지 눈물을 흘립니다. 시작도 안했는데..... 쪽팔리니까 울지마!
요랬던 녀석인데.......
이렇게 변했다. 잘 자라줘서 너무나 고맙다.
산, 들, 강은 한 배에서 낳았지만, 너무나 다른 성격입니다. 혈액형도 다 제각각입니다. 둘째인 들이는 오빠와 남동생사이에 끼여있어, 항상 치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언제나 들이편입니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비치거나, 혹은 앞에 나서기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속에는 불같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장이 강하지는 않지만 고집 또한 대단합니다. 앞에 나서기를 즐기지는 않지만 그런 욕구는 상당하며, 또 한번 나서면 누구 못지 않게 잘 합니다.
막내 강이는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아입니다. 우선 독창적입니다. 끼도 상당합니다. 자기의 재능을 남에게 보여주기를 참 좋아합니다. 당근과 채찍중에 당근만 사용해야 하는 아입니다. 자의식이 대단히 강합니다. 어떻게 자랄지,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좀처럼 감을 잡기가 어려운 아입니다.
그런 면에서 맏아들인 산이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아이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습니다. 생긴 것도 어른스럽다. 늙어 가지고...ㅋㅋㅋ 저거 엄마한테는 맨날 잔소리를 듣고 맨날 티격태격하지만, 제일 믿음직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산이에게 해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갱상도 남자끼리 무슨~~~ ㅎㅎㅎ
산이는 지금까지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줬습니다.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덩치가 아니라 정신이 자랄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부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 인생에 간섭할 생각은 별루 없습니다. 자기가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바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가 행복하고 성숙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거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가 정신적으로 한창 자랄 시기는 부모가 이제 서로 소 닭보듯 하다 못해, 머리카락만 봐도 미워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부부의 이야기???
책에는 머 별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안되는 사실을 강조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책에서 하나 건진 것은,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입니다. "난 널 믿어~ 아들" "아들, 사랑해!" 이 두가지 말입니다. 경상도 아부지가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제 안 이상 좀 자주 이런 말을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PS.
산이 선생님이 산이한테 보내는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주셨다. 시간이 별루 없어서 하루만에 다 썼다. 그것도 업무시간에 틈틈히. 글을 읽는 대상이 산이 친구들이라, 그 눈높이에 맞춰 썼는데, 아이들이 잘 읽어줄지 모르겠다.
산이에게.
산아. 남자 중학생과 그 아버지 사이에, 특히나 경상도 부자에게 ‘대화’란 그 무슨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 소리 정도로 취급되는 것일텐데, 역시나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고, 더욱이 주말이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는 아빠와 산이는 더 말을 해서 무엇하랴. 그런데 이렇게 우연하게 산이에게 글을 쓸 기회를 갖게 되어 아빠는 좀 부담도 되고, 기쁘기도 하고 그렇구나. 이 기회에 그 동안 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못다한 말도 좀 하고 싶단다. 산아. 니가 LOL에 매달린지 4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 브론즈다. 몇 년째 브론즈에서 빌빌거리고 있다는 거 아빠도 안다. 니가 입문시킨 니 친구 인성이는 골드다. 머 느끼는 거 없냐? 너희 사촌 형들이 너랑 롤 할 때, 너의 별명이 ‘산필패’인게 아주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네가 가망없는 롤에 매달려 새벽까지 해메는 모습이 이젠 좀 안타깝구나. 이제 솔직하게 재능이 없다는 걸 시인하고 다른 걸루다 바꿔라. 이런 말 하는 아빠도 안타깝다. 산아. 강이랑 간식 같은 거 먹을 때 강이 먹는 속도에 보조를 맞춰 주거라. 지 형이랑 누나가 먹는 속도가 빨라서 먹을게 없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먹을려고 양손에 쥐고 입에 가득 넣어서 언제나 다람쥐마냥 볼이 볼록해지는 강이가 아빠는 안쓰럽다. 그러다 강이가 볼때기가 늘어나서 못생겨지면 니가 책임질래? 너도 소중한 아들이지만, 강이도 소중한 막내아들이다. 그리고 니보다 울 막내아들이 아빠랑 더 잘 놀아준다. 솔직히 말해서 아빠랑 잘 놀아주는 사람이 아빠는 더 좋다. 산아. 집에서 들이 얼굴에 궁둥이를 대고 기습 빵구를 뀌는 것, 이제 좀 그만해라. 집이 좁아 도망갈 데도 없어서 금방 잡혀 들이한테 실컷 얻어 맞으면서도 참 끈질기게도 한다. 아들아, 여동생에게 잘 대해 주어라. 들이가 시집을 가면 니가 상각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때 눈물난다. 아빠도 아빠 여동생 고모가 시집갈 때, 울었다. 그리고 들이한테 잘 대하면 예쁜 여자친구가 생길 확률이 무지 높아진다. 혹시 모른다. 나중에 니 아내가 될 어여쁜 아가씨를 들이가 소개시켜 줄지도. 비록 니 눈에는 여동생이 덕선이 보다 안 예쁠지 모르지만 (아빠 눈에는 울 들이가 훨씬 이쁘다) 그래도 여자한테는 항상 이쁘다고 해야 된다. 때로는 여자 앞에서 본심을 숨길 줄 알아야 여자에게 대접받고 산다. 아빠 보면 모르겠냐?? 산아. 여드름은 중학생만의 상징이자 청춘의 한 파편이라는 걸 아빠도 잘 안다. 중학생 남자 아이가 자발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덕선이가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 만큼 희한한 일인 것도 잘 안다. 그런데 너의 여드름은 니가 잘 안씻어서 그런 것도 아빠는 안다. 그러니 엄마가 말씀하시는 것은 좀 들어라. 내가 보니까 엄마가 니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씻어라” 다. 아빠는 니가 냄새 좀 나고 얼굴에 여드름이 막 나도 별 신경 안쓴다. 그러나 씻네 안씻네 하면서 엄마랑 티격태격하는 것은 보기가 안타깝다. 그리고 결국 엄마와의 싸움에서 지는 건 너이지 않느냐. 자고로 사춘기와 갱년기가 붙어면 거의 갱년기가 이긴다더라. 옛말 틀린거 없다. 산아. 얼마 전 자기소개서에 감명 깊게 읽은 책 란에 ‘장발장’ 이라고 쓴 걸 살짝 보았다. 니가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은 의심치 않겠다. (살짝 의심은 가지만….) 그런데 가장 감동받은 책이라고는 하기에는 믿을 수 없다. 니가 가장 열심히, 재미있게 읽은 책은 ‘원피스’ ‘드래곤 볼’ ‘슬램덩크’ ‘진격의 거인’ ‘식객’ 머 이런 책들이지 않느냐. 이런 책을 자기소개서에 쓰기가 좀 쪽팔리더냐? 그래서 그런 거라면 아빠는 좀 실망이다. 물론 장발장이 훌륭한 책이지만, 니가 열심히 읽었던 책들도 훌륭하다. 아빠의 영어이름이 키튼Keaton 인 것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마스터 키튼’을 너무 감명 깊게 봐서 그렇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집에 있는 만화는 다 훌륭한 만화들이다. 그걸 감명 깊게 읽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훌륭한 태도다. 니가 읽은 만화보다 ‘장발장’이 더 훌륭했다면 머 할말 없지만…. 산아. 마지막으로 섭섭한 거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요즘 니가 바빠서 아빠랑 안 놀아주는데, 계속 그러면 아빠 삐진다. 열다섯의 나이가 친구가 제일 좋은 시기란 건 아빠도 안다. 그러나 주말에는 아빠랑도 캐치볼도 하고, 농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아빠가 좀 놀아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니가 좀 알아서 놀아줬으면 좋겠다. 아빠, 요즘 본사 근무라 운동 부족이다. 아빠가 운동 안해서 배 나오고 빨리 늙으면 너도 좀 쪽팔리지 않겠니? 잘해라. 너도 이제 열다섯살이 되었구나.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그 중2다. 니 엄마가 장난스레 중2병에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닷! 라고 하지만 그 시기는 또래의 누구나가 겪는 질풍노도와 허세와 충동의 시기다. 그래도 아빠는 아무 걱정 하지 않는다. 여태껏 잘 자란 산이를 믿기 때문에 그렇다. 시골의 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약간의 근심은 있었는데,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 생활에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산이가 고맙다. 산이 친구들한테도 고맙고, 산이를 그렇게 이끌어주신 선생님 또한 고마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다. 하지만 건강하게만 자란 아이에게 만족감을 느끼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아빠는 몸도 건강하게, 마음도 건강하게 자란 산이가 대견하다. 앞으로도 그럴거다. 언제나 산이의 선택을 믿고, 그 선택에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사랑한다. 아들! 2016년 무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1월의 어느날.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