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면서 읽었다 : 정소연 <발달은 느리고 마음은 바쁜 아이를 키웁니다>
내 아이가 어느 날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나는 어떨까? 여기 그런 진단을 받은 평범한 엄마가 있다. 그 순간에 "인생의 두꺼비집이 갑자기 탁 하고 내려간 것 같았다."라고 그 엄마는 말한다. 도대체 왜 내 아이한테? 내가 뭘 잘못했기에? 절망이 먼저 오고, 현실을 부정하고, 인생을 복기해 본다.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거쳐 현실을 직시한다. 아이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살핀다. 하지만 조금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힘겹지만 다시 시작한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아이와 함께 웃고 아파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온 마음을 다해 느린 다온이를 살피다, 미처 손길이 가지 못한 형 다준이의 상처를 발견하고 엄마가 무너지는 장면에서 나도 무너졌다. 둑이 터진 듯 마냥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울면서 읽었다. 앞이 뿌옇게 되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도 손은 자동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59p
다온이가 가진 능력은 어떤 부분은 별의 꼭짓점처럼 뾰족하고 어떤 부분은 별의 두 꼭짓점 사이처럼 움푹 파여 있다. 내가 할 일은 꼭짓점을 깎아 작은 동그라미를 만드는 게 아니라 움푹 파인 곳을 채워 더 큰 동그라미를 만드는 거다. 다온이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온이가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111p
멀쩡하고 번듯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사람들은 부족한 아이나 그 부모의 마음은 영영 모르겠지. 느린 아이를 통해 더 넓은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떠벌리고 다니지만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세상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다. 예전엔 다온이 같은 아이를 보면 타고난 성질이 못되어 먹어서, 부모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서라고 생각했다. 막상 낳아보고 키워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도 있는 거였다.
126p
한참을 말없이 걷던 다준이는 "엄마, 이제 내 친구들 만날 땐 다온이랑 같이 안 가면 안 돼?" 하고 물었다. '그래, 앞으론 네 친구들 만날 땐 엄마랑 너랑 둘이 가자.'라고 답하려 했다. 다준이도 어린 아이니까. 아직은 상처 없이,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으니까.
너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자. 혀끝으로 말을 굴리고 다듬은 뒤 쪼그려 앉아 아이와 어깨를 맞추었다.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한 다준이의 눈동자와 초점 없이 말간 다온이의 눈동자를 동시에 마주하게 되었다. 흔들었다 터트린 콜라처럼 억눌린 감정이 터졌다.
"다준아, 다온이는.... 우리 가족이 아니면 친구가 하나도 없어. 너까지 다온이와 함께 놀기 싫다고 말하면.... 다온이는 아무도 같이 놀 사람이 없어. 다온이에겐.... 다온이에겐 우리밖에 없어."
'그러자'라고 말해주려 했는데, 앞으로 네 친구를 만날 땐 너만 데려가겠노라고 말해주려 했는데.... 이상하게 입에선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나쁜 엄마, 난 나쁜 엄마다. 내 설움에 북받쳐서 다준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이 어린아이에게 뭘 바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아이를 앉은 채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215p
한때는 인생이 밝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줄 알았다. 내 삶은 반짝반짝 빛날 거라고 당연히도 그럴 거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소중하고 든든하다. 막연한 낙관과 철없는 설렘만 가득했던 시절, 쉽게 설레고 쉽게 행복하고 또 쉽게 실망하고 쉽게 슬러했던, 순수하고 해맑았으나 여물지 못했던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믿음직하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우리 아이들은 이미 다 커서 부모 품을 다 떠났고 더우기 그런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작가가 지인이라 감정이 더 격해졌나? 아니다. 결코 그런게 아니다. 이 책은 자폐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지만,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성장 드라마다. 인생의 큰 시련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공감했던 것이다.
"힘든 것과 불행한 건 다른 것"이라고 하는 남편의 말을 작가는 마음에 담고 실천한다. 아이의 '느린 발달'로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작가는 이전보다 세상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려 하고, 더 단단해지려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나의 삶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폐 아이를 둔 엄마의 성장드라마는 해피엔딩이다.
254p (에필로그 중에서)
출구 없는 터널을 헤맬 때도, 잠수종에 묶여 깊은 바다로 끌려들어갈 때도, 오직 내가 서 있는 자리에만 폭우가 쏟아질 때도 이 순간을 벗어나 행복으로 가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자리에서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했다. 행복은 늘 나를 비웃듯 모래처럼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달아났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오직 나의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행복해지는 것과 달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어서 좋았다. 신기하게도 행복을 포기하자, 소소한 행복들이 들꽃처럼 피어났다.
10년 전, 작가의 엄마한테서 카톡이 왔다. 딸의 글이 네이버 대문에 올랐으니 한번 보라는 거였다. 넬슨 만델라의 <나 자신과의 대화>라는 책의 독후감이었다. 훌륭한 글이었다. 그 딸의 블로그에 있는 여러 글들을 읽었다. 풍부한 감성, 자신만의 시각, 개성 넘치는 문장의 향연이었다.
그 딸의 글 솜씨에 놀랐고, 그 재능이 부러웠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의 감상을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은 나를 반성했다. 그 때부터 나도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들이 모인 곳이 이 블로그다. 중간에 가끔 쉬기도 했지만 10년을 이어오고 있으며 글도 500편 가까이 된다. 책 이외에 건축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이 블로그의 맨 첫 글이 바로 그 에피소드였다.
시간이 흘러 그 딸이 결혼을 하고, 딸의 블로그도 비공개로 전환되어 글을 볼 수 없었다. 그 딸의 글쓰기 재능도 아이를 낳고 사는 일상의 고단함에 묻혀 버린건가 하고 살고 있었는데, 며칠 전 책이 나왔다며 불쑥 연락이 왔다. 책을 울면서 읽었다. 그래도 일년에 몇 번은 보는 사이인데, 아이가 그런 상태였는지 몰랐던 미안함과 그 엄마의 고단함에 대한 안스러움과 그 이야기로 책을 냈다는 것에 대한 기특함 등의 감정이 북받쳤다.
한바탕 그런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난 후 차분히 책장을 다시 넘겼다. 이제는 벽이 보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없다는 벽. 살아오면서, 열정을 가지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열심히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이제 이 책으로 인해 그 목록에 글쓰기가 추가되었다.
작가의 엄마와 오래 통화를 했다. 그리고 작가와도 오랜만에 오래 통화를 했다. 글을 써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너의 글에는 예전부터 사람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고, 그러니 그 재능을 아낌없이 쓰라고 말해주었다. 너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더 나은, 그리고 좋은 삶을 살도록 이끌거다, 그 증거가 나다, 라고 진심을 전했다.
그 동안 애썼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아무나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따뜻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들려줘서 고맙다. 아이의 치료비로 형편이 어려워져 손을 떨면서 먹었다던 무한리필 샤브샤브를 같이 먹자. 오빠야가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