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야기

혼자는 외롭고 더불어는 버거운 사람들에게 :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개락당 대표 2019. 1. 31. 23:59

 

 

 

혼자는 외롭고 더불어는 버거운 사람들에게 :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쉬고 싶어."

 

 

 

일과 사람에 부대끼며 몸과 마음이 지친 저같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근데 막상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시간을 보내면 정말 힐링이 될까요? 처음엔 좋다가도 아무 자극이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분명 사람이 그리워질 겁니다. 혼자 가는 여행이 자유롭고 좋다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누군가와 함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 '인간은 모순된 존재'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는 외롭고 여럿은 버거워 합니다.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저자는 마을공동체를 제안합니다. 함께 살아가며 농사도 짓고, 밥도 해먹고, 여러 동아리를 만들어 취미를 공유하고, 공동체 일자리에서 직접 일을 하기도 하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어떻게 공동체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했을까 궁금해서 저자를 좀 찾아봤더니, 그 쪽 방면에서는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곳곳의 대안 마을과 세계 각지의 공동체 마을을 찾아다니며 직접 경험하고 인터뷰해서 널리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책에 나온 여러 마을공동체를 간략하게 옮겨봅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있는 민들레공동체. 공동체 구성원은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중고등학교 과정 학생 43명과 교사, 그리고 교사 네다섯 가정으로 이뤄져 있다. 김인수 교장은 "대학 갈 생각도, 부자로 살 생각도 말아라"며 부모 복장 터지는 말을 하는데 서슴없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이들과 민들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누구보다 씩씩하고 행복해 보였다. 이 학교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간디학교는 무늬만 대안학교처럼 보일 정도다.

 

사진 출처 :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5989

 

 

 

 

집 마당에 탁구대를 들여놓고 이웃과 탁구를 치다가 자연스레 막걸리를 마시고,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노래를 불러보자고 제안해 합창단을 꾸리게 된 경기 파주시 문발동 공방골목 사람들. 마을 잡지를 만드는 모임부터 독서, 일본어 공부, 자전거 타기 모임, 낚시, 마라톤, 함께 시를 읽는 시 모임 등, 문발동엔 동아리가 500개?가 있다고. 특별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은 인생을 보내려고 함께 놀다 보니 공동체 마을로 변했다.

 

사진 출처 : http://www.hani.co.kr/arti/PRINT/838970.html

 

 

 

 

코하우징(Cohousing)은 개인 공간 외에 별도의 공용공간이 있어 다른 거주자들과 나눠서 사용하는 집을 말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소행주 1호는 우리나라 코하우징의 선구자다. 겉보습은 일반 빌라와 달라보이지 않으나 입주 전부터 모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친밀하게 지내면서 행복한 삶을 만들어보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소행주는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의 줄임말로, 2011년 1호를 시작으로 현재 10호가 지어졌다. 소행주 1호엔 9가구 34명이 함께 산다. 2층에 공동 부엌을 겸한 커뮤니티 룸이 있다.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있고, 함께 하고 싶을 땐 함께 한다. 드라마 응팔처럼 예전 우리가 살던 방식대로, 먹을 걸 만들면 서로 나눠주고 하는 생활이 그리운 사람들이라면 여기 소행주가 그 대안이다. 그리고 이 대안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건 우리도 바뀌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예전에 이게 한창 이슈가 되었을 때, 이런 건물을 지어보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더랬다.

 

사진 출처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565240#cb

 

 

 

 

 

 

서울 도봉구 도봉동 안골마을에 위치한 은혜공동체 협동조합주택. 49명이 함께 사는 늘 잔치같은 집이며 그 자체로 작은 마을과 같다. 지하 공동 식당 옆 다락방에선 꼬마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대며 놀고 있고, 2층 식탁에선 어른 3명이 철학 책으로 독서 모임 중이고, 3층에선 초중고 아이들이 지리산 종주 계획을 짜고 있다. 직장맘들도 육아와 살림은 당번에게 맡기고 이웃들과 수다를 떨거나 밴드실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꼬맹이 아이를 가진 엄마가 공동체 육아방에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때, 그곳은 엄마들의 천국이 된다. 

 

사진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NewsView/NewsPrint?Nid=1S7692QPIM

 

 

 

 

전남 남원시 산내면. 마을 사람들이 실상사 옆 논길을 여유롭게 걷고 있다. 산내면 인구 2200명 중 450여 명이 도시에서 내려온 귀촌자라고 한다. 귀촌의 진앙지는 실상사이며 이 절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는 그 중심이다.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도 공동체의 중요한 역할은 한다고. 여기서 사는 것이 신나고 재미나고 행복하니 도시에서 일부러 시골마을까지 찾아온다. 시골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공동체 마을이다.

 

사진 출처 : http://well.hani.co.kr/892986

 

 

 

 

서울 강북구 인수동 청수탕 골목 안으로 가면 밝은누리 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의 중심은 '마을밥상'이라고 한다. 저녁식사를 하는 마을밥상은 정겨운 시골장터 국밥집처럼 시끌벅적하다. 마을밥상에서 몇 미터 떨어진 카페 '마주이야기'에선 밥상에서 못다한 수다가 이어진다. 여기에서 사는 이들은 직장에서 땡하면 마을밥상으로 온댄다. 재미나기 때문이다.

 

사진은 강원도 홍천의 밝은누리 식구들이다.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을 중심으로 100여명이 산다. 학생들은 집짓기 수업을 하고 농사를 짓고 철학을 공부한다.

 

사진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12627.html

 

 

 

 

남한산성 밖 첫 동네인 논골은 논들이 계단식으로 있는 골짜기라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이 동네는 형편이 피면 하루빨리 떠나야 할 곳으로 여겼던 곳인데, 한 환경단체 활동가가 너무 열악한 자신의 고향마을을 보고 어떻게 바꿔볼까 고민하고 행동하여 5년을 노력한 끝에 '논골작은도서관'을 세웠다. 윤수진 관장이다. 이 도서관은 만능 공간이다. 30여개의 프로그램이 가동될 뿐만 아니라 밤에는 게스트하우스로, 또 마을 잔치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여름 이동네 상원여중 운동장에서 텐트를 쳐놓고 다른 가족들을 초청하여 '우리 동네 하룻밤 캠프'도 논골마을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사진 참조). 이제 논골마을은 들어오고 싶은 대기자가 줄을 서는 동네가 되었다.

 

사진 출처 : http://well.hani.co.kr/883017

 

 

 

저자는 직접 체험한 해외 공동체마을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공동체라는 건 자연 마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함께 사는 마을이라고 하는 군요. 차별이 없고, 평등하고, 함께 행복하고, 고통도 함께 나누며 온 마을이 아이를 제 자식처럼 함께 길러주는 이 공동체마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이런 삶도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인류의 희망이라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태국의 아속, 미국의 브루더호프, 인도의 오로빌, 일본의 야마기시와 애즈원, 이 다섯 군데의 공동체마을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아속은 환희라는 뜻이란다. 특히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저자는 몸이 좋지 않아 여기서 단식과 노동을 병행하며 몸을 회복했는데, 그러면서 아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을 체험하고 들려준다. 승려와 일반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적게 소유하며 많이 나누고, 지구에 폐 안끼치고 치유하는 생활. 산청의 민들레학교 김인수 교장은 해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태국의 아속에서 한달씩 살고 온다고.

 

사진 출처 : http://well.hani.co.kr/720969

 

 

 

 

개인은 일체 사유재산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공동체는 부유하고 넉넉하다. 방문자에게도 체류비를 받지 않는다. 다만 노동을 비롯한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이 당연시한다. 공동체에서 노동은 숨 쉬는 것과 같은 일상이고 또 즐거움이다. 미국 우드크레스트 마을에 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이야기다. (한국 사람도 물론 있다.) 저자는 이곳에 머무르며 유토피아란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다.

 

사진 출처 : http://well.hani.co.kr/720969

 

 

 

 

인도 폰디체리의 오로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체 마을이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인류 공동체라는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는 '계획도시'다. 45개 나라에서 온 2500여 명이 모여 산다고 한다. 한국인도 33명이 여기서 살고 있는데, 수준 높은 문화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많아 행복해한다.

 

"오로빌에서 잘 안 쓰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실패'입니다. 하다가 안 되면 그걸 다시 하라는 뜻으로 생각하지요. 안 되면 안 되는 것으로 그냥 둡니다. 보완해서 다른 시도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다양한 창조성이 실험되지만, 실패, 성공을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선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만 오로빌에선 모난 시도가 많아요. 다양한 꿈이 시도되지요." (p.344)

 

오로빌에서 두 자녀를 기르고 있는 허혜정씨의 말이다. 울림이 컸다.

 

사진 출처 :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01

 

 

 

 

일본의 농민 야마기시가 '나, 모두와 함께 번영한다'는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생긴 공동체마을이다. 이 야마기시즘은 일본의 나고야 인근에서 시작돼 세계에 확산되면서 여러나라에 야마기시즘의 실현지가 생겼는데, 우리나라에도 1984년, 경기도 화성에 생겼다고 한다. 이름은 산안마을공동체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에서 나오는 계란이 그렇게 맛나다고.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어 보였다. 사진은 일본 미에현에 있는 야마기시 공동체다.

 

 

 

 

비틀즈의 노래 '이매진'의 노랫말 'The World Will Live As One'의 뒷부분을 따서 만든 '애즈원 커뮤니티 스즈카'는 어떤 사람이든 느긋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곳이다.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설립했다고. 자신의 소득을 다 맡기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곳, 어떤 규약이나 제도, 의무나 책임이 없는 곳이다. 사진은 애즈원의 주 수입원이자 일자리인 '어머니 도시락'이다. 

 

위의 두 사진 출처 : http://well.hani.co.kr/720969

 

 

 

 

 

 

마을공동체는 주거, 비혼, 출산, 육아, 교육 등 우리 사회 가장 골치 아픈 문제와 직결돼 있다. 간디는 평생 마을공동체에서만 살았다. 인도의 독립보다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디는 '마을공동체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p.23)

 

 

 

공동체의 다양한 형태를 봤습니다. 어떤 공통의 취미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의 형태를 띠는 네트워크에서부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고민하는 엄마들이 모여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만든 공동체, 그리고 함께 살면서 밥도 함께 먹고 함께 배우는 공동체, 더 나아가 공동으로 노동하고 노동해서 번 돈은 모두 공동체로 돌아가서 분배하는 방식의 적극적인 공동체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보다 더 행복한 곳이 없어 보입니다.

 

 

 

근데, 좀 바꿔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복한 곳인데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왜 아주 적을까요?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곳이 공동체마을이라면 더 많은 공동체가 생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실제로 아주 많은데 내가 모르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사실은 인간의 본능인 욕심을 버리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럴겁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모순된 존재라, 이상적인 공동체마을에서 살아도 바깥 세상을 꿈꾸는지도 모르죠. 마을공동체도 나름의 현실이 있을 겁니다. 시골 생활이 모두 낭만만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더 경험해보고 싶군요. 저자가 소개한 공동체에 가서 딱 1년 정도 살아보고 싶습니다. 인도의 오로빌은 거주 신청 절차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뭐 당장 가겠다는 건 아닙니다ㅋ. 저자가 말한 공동체가 진짜 유토피아라면 당연히 살아야지요. 여기서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같은 취미를 가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건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공동체의 긍정적인 부분만 보여주는 게 아닌가, 이런 공동체라면 완전 유토피아인 걸.... 이런 생각이 살짝 드는 찰나, 저자의 개인사를 언급한 에필로그를 봤습니다. 가정 공동체도 깨진 주제에 마을공동체를 입에 올리기가 부끄럽다고, 그럼에도 기자의 열정으로 취재하고 썼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자에 대한 신뢰감이 확 생겼습니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저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