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외국)

어디가 놀라운 삶인가? :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개락당 대표 2018. 2. 9. 23:52

 

 

 

어디가 놀라운 삶인가? :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그녀가 예고 없이 그의 무릎에 살포시 앉아 목에 얼굴을 살며시 기댄다든지 하는 그런 친밀함, 그가 그때껏 숫총각이었다는 말을 그녀가 들어주는, 평생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커플만의 친밀함, 그 오랜 기다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건 이본이었다. - 뭐라고 부르지? - 글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p.389)

 

 

 

숫총각으로 죽으면 쪽팔려서 저승에도 못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이야기다. 이 나라에 사는 오스카 와오도 숫총각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엄청나게 뚱보에다 못생기고 소심한 깜둥이고, 책 특히 SF소설 매니아에 그런 글을 즐겨 쓰는 초 울트라 오타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여자는 또 엄청 밝힌다. 물론 마음 속으로. 7살 이후로 여자는 전무하다. 도미니카 남자들에게 여자가 없다는 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소설은 우리 주인공의 눈물겨운 연애 이야기다. 혜왕성에서 온 듯한 외모와 성격에도 불구하고 오스카의 진심을 알아주는 여인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진실된 사랑을 하고 숫총각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을까?

 

 

 

오스카의 연애 이야기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오스카만이 아니다. 엄마의 구박으로부터 항상 탈출을 꿈꾸는 누나 룰라, 멋진 남자를 만나 일상의 탈출을 꿈꾸었으나 갱스터와 사랑에 빠지고 그 갱스터의 마누라가 권력의 꼭대기에 있던 트루히요의 여동생이었고 그래서 현실은 시궁창이 되어버린 엄마 벨리, 독재자 트루히요로부터 아내와 딸들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자신은 감옥에서, 아내와 딸들은 자살과 살해를 당하는 할아버지 아벨라르 등 삼대가 모두 주인공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모두 푸쿠(저주)가 내려서 그토록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그 푸쿠의 원흉은 바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다.

 

 

 

이 넘이 얼마나 나쁜 넘인가는 말해 입만 아프고,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맘에 드는 예쁜 여자는 친구의 마누라건 딸이건 다 따먹어 보고야 마는 탐욕의 대마왕이다. 지 말 안듣는 넘 엄청나게 죽였다. 오죽 했으면 푸쿠의 화신이라고 불리웠을 정도니. 그래서 데 레온가家의 3대는 모두 불행하고 좌절했을까? 천만의 말씀.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푸쿠와 맞선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아무리 열심히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버린다. 누군가 나한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p.246)

 

 

 

자, 그러면 우리의 주인공 오스카 와오는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루었을까? 푸쿠 따위에 절망하면 도미니카 남자가 아니다. 서두에 옮긴 글은 그가 그의 연인 이본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고 난 후의 대사이다. 그토록 바라던 바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이라 부를 만큼 그렇게 아름다웠다. 비록 그 댓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지만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응? 도미니카 공화국? 어디에 있는 나라야? 찾아봤다. 미국 플로리다 주 바로 밑이 쿠바고 쿠바 아래쪽 작은 섬이 자메이카이며 그 오른쪽 섬이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섬의 절반은 아이티다. 트루히요가 그렇게 괴롭히고 학살했다는 아이티 노동자의 그 아이티다. 책에 나오는 도미니카는 흥미로왔다. 도미니카 남자는 항상 옆에 여자들이 들끓고 있으며 여자들도 아주 개방적이다. 함 준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이런 식이다. 오, 파라다이스가 여기 있었군!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악마의 화신 트루히요(1891~1961)도, 수도 산토도밍고의 그 가난하면서 아름다운 풍경도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이런 소설을 쓰는 냥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출신이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저지로 건너왔으며 엄청난 독서광이며 아마도 내 생각이긴 하지만 오스카 못지 않은 오타쿠가 아닐까. 도미니카의 역사를 투영한 그리고 자신의 모습도 투영한 이 소설을 11년 동안 준비 끝에 2008년에 발표하고 그 해 퓰리처 상을 받는다. 참고로 2007년의 수상작이 코맥 맥카시의 <로드>였다.

 

 

 

책의 번역자는 '도발적인, 관능적인, 정치적인 그리고 눈물 나게 우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이 책에 쏟아진 미디어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가? 라고 되물었다. 천명관의 소설과 어딘지 닮은 데가 있는 이런 류(딱히 뭐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의 소설은 궁합이란 게 있다보다. 궁합이 딱 맞는 어떤 이에겐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 준비와 훈련이 덜 되었다. 촉이 없다고나 할까?

 

 

 

책의 제목을 다시 음미한다. 그리고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하는 오스카를 떠올려 본다. 결코 호감가지 않는 외모, 고집 불통의 성격에 왕따, 오로지 한 곳만 파는 외골수들, 사람들과 결코 어울리지도 않고 어울릴 수도 없는 오타쿠와 꼴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며 뛰어나고 맑은 영혼을 가졌으며 일생의 목표를 위해 부단히 전진하고 불굴의 용기로 푸쿠와 맞서는 오스카들 말이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왜 굳이 놀라운 삶이라고 했는지 이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