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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늘 깨어 있어라 : 고병권 외 9인 <리영희를 함께 읽다>

by Keaton Kim 2021. 7. 3.

 

큰 아들넘이 군대에 갔습니다. 편지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훈련병이 가장 기다리는 게 편지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편지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정약용이 아들에게 썼던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책 읽으라고 썼습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썼습니다. 아, 나도 그렇게 쓰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책이라고는 읽지 않았던 아들넘이 책에 관한 편지를 읽고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뻔하게 보였지만, 뭐, 그건 지 일이고,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책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함께 가졌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였습니다.

 

저 책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여태 보고 듣고 배웠던 것들이 진실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저 책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아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1. 사유의 스승

 

사유란 무엇인가. 나는 리영희를 통해 하나의 답변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과는 다른 차원의 앎이 있음을 강조했다.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 대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을 모았다는 뜻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그런 앎 말이다. (p.23)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간디 학교에 가면 '잘 먹고 잘 놀고 가끔은 사유하자' 라는 글이 걸려 있습니다.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유에 대한 정의를 저렇게 했습니다. 지식만 쌓고 사유하지 않으면 영원히 무식자로 남는다고 리영희 선생은 말했습니다. 사유를 하면 대상이 달라보입니다. 대상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해서입니다. 선생의 글을 읽고 난 후 저의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2. 친일파에 대한 일갈

 

해방 후 이 나라의 정치, 행정, 군대, 경찰,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사법.... 등 온갖 분야에서 그 최고위층과 지배집단의 상층부에 앉았던 '인물'들이 일제 식민 통치 아래서 무엇을 한 사람들인가를 살펴보자. 식민통치의 분야마다에서 식민자의 교육을 받아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그들의 식민통치를 방조한 인물은 아니었던가? (p.230)

 

주사파, 공산당, 빨갱이 등의 단어는 지금도 그 효력이 대단한 단어들입니다. 한번 낙인찍히면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조국 청문회 당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김진태는 전향을 들먹거리며 빨갱이라고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친일파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반민특위를 뭉개버린 이승만, 그리고 그 뒤를 이어받은 박통, 그 후로도 나라의 지배 계층이었던 상층부의 인물들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 뿌리를 알면 지금의 현실도 눈에 보입니다.

 

3.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으로 미화했던 것이 대한민국이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고 월남이 패망했지만 한국에서는 거꾸로 그것이 긴급조치 9호 발동의 계기와 빌미가 되었다. (p.272)

 

저는 아직 베트남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베트남 사람을 만난 적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좋습니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아름다움도 매력적이고 베트남 사람에 대해서도 항상 응원합니다. 이번에 베트남이 월드컵 최종 예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박항서 감독이라서 더 그랬다). 내 삶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는 베트남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전적으로 리영희 선생의 글 때문입니다. 리영희 선생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한국에 알린 것에 대한 감사로 베트남이 선생을 초대해 영접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생의 따님도 '하노이의 아침'이라는 베트남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군요.

 

4. 사상의 은사

 

가령 말일세, 강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자. 창문은 하나도 없고, 여간해서 부술 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숨이 막히고 깊이 잠들어 있어. 오래잖아 괴로워하며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수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 놓여 있으면서도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한다. 이때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서, 그들 중에서 다소 의식이 또렷한 사람을 깨워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불행한 이 몇 사람에게 살아날 가망도 없는 임종의 고통만을 주게 될 것인데, 그래도 자네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도 몇 사람이 정신을 차린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p.275)

 

노신이 <광인일기>를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글인데, 중국 군벌통치와 장제스 총통 시대의 중국사회를 풍자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리영희 선생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바로 한국 민중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의식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저도 선생의 글을 읽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1956년 부산에서 대위로 근무하던 때 윤영자와의 약혼 기념 사진. 사진 출처 : 리영희 재단 https://rheeyeunghui.or.kr/?pageid=4&page_id=73&mod=document&uid=54

 

 

암울했던 시대에 선생이 진실이라고 강조했던 사실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싸웠던 '우상'들은 아직 죽지 않고 여전히 그 힘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 우상들은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 곁에 활보 중입니다.

 

선생의 글은 "늘 깨어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럴려고 노력하지만 일상의 지루함과 세파의 무거움에 찌들려 살면서 늘 깨어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우상들을 파악하고 그들과 싸우려면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선생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선생의 글을 읽어서 좋았습니다. 늘 깨어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