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한국)

보다 혼란스러웠던 내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 : 이문열의 변경

by Keaton Kim 2014. 12. 25.

 

 

 

보다 혼란스러웠던 내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 : 이문열의 변경 

 

 

 

일본에 살 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이 아름다운 시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기만 하면, (그것도 기차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기차가 안다니는 곳이 없습니다. 그것도 부럽습니다) 엽서에서나 나올 법한 시골을 볼 수 있습니다. - 도심도 무척이나 정돈되고 다양한 면을 보여줍니다 - 우리의 시골은 피폐하다는 느낌입니다. 골짝 골짝 들어선 공장을 보고 있자면 더욱 그러합니다.

 

 

 

압다뷔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집트 등의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의 여행길에서 만났던 순박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잘 살고 보세~~ " 라고 아직까지 외치고 있는 울 나라의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나... 잘 살기만 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은 이제 그만~~~ 쫌..... (사실 그런 국민이 더 많다는 사실이 슬퍼진다)

 

 

 

 

 

 

이문열의 변경은 열두권짜리 대하소설입니다. 전쟁이후 북한으로 간 혁명가 아버지를 둔 네 사람이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자전적 소설이라 해서 이문열을 좀 검색해봤더만, 이문열의 아버지도 월북을 했다고 나옵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밀양과 안동도 그가 살았던 동네라고 합니다. 그런 배경때문에 자신도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런 작가의 시선이 책속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한 때 이 책이 절판되었다... 아니 이문열 스스로 절판했다.... 라고 해서 왜 그랬는지 좀 찾아봤더만 이 책 자체도 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문열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이 참에 좀 찾아봤더만, 작가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 시대에 좌파 빨갱이를 대표하는 작가가 조정래 선생, 황석영 선생이라면 이문열은 보수수구꼴통을 대표하는 작가다.

 

 

 

변경이라고 해서 먼가 바뀌는 거 라고?? 미국과 소련 두 제국의 끄트머리에 있는, 그래서 그 제국의 힘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그런 동네가 바로 한반도라는 의미의 변경 邊境 입니다.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ㅎㅎㅎ

 

 

 

존 트라볼타가 나오는 '피나미넌'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번개를 맞아 무엇이든 다 알 수 있는, 요새 말로 하면 뇌를 100% 다 쓰는 사람이 된 이야기가 줄거리인데요, 거기서 주인공이 먼 숲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람이 불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고.... 흔들리는 나무가 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주인공은 그런 매카니즘, 즉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 비슷한 깨달음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서두에서 얘기했던, 우리의 농촌이 이 모냥 이 꼬라지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박정희가 어째서 일단 잘 살고 보자 라는 해게모니에 그토록 집착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래서 지금은 그럭저럭 살 만해졌지만 그 댓가로 무엇을 지불했는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자기가 속한 신분이나 계층에서 벗어 날 수 있는지..... 울 아버지 시대에 사회에서 주요한 이슈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난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 가족들이 다시 모여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명훈과 영희는 각자의 방법으로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영희는 돈만 있으면 이 모든 고통이 해결될 거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돈을 모으지만, 동생 인철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리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명훈도 현실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뒷골목으로 돌아옵니다. 제자리로 돌아 가려는 그의 노력은 탄광촌에서의 어이없는 (스토리상으로도) 죽음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명훈의 몸은 가장 밑바닥 생활에서 굴렀지만, 양반 지주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러한 명훈의 마음가짐 때문에 그의 삶이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하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철의 생각에 맘이 확 와 닿았습니다. 사실은 돈이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물론 사소한 몇가지의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있지만,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애써 외면하려 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더 뜨끔했는지도 모릅니다. 

 

 

 

읽는 한편으로, 명훈의 삶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 삶을 바꿔보기 위해 명훈이 했던 그 노력과 자꾸 대비가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명훈가 모니카와의 사랑은 몹시나 아쉬운 점입니다. 명훈에게 죽고 못사는 모니카라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바른 생활의 여인 경진과 명훈이 결혼을 하고 명훈의 사랑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지 못함을 알자 스스로 목숨을 버립니다. 아니 작가는 꼭 그런 결론을 내어야 합니까? 명훈없이는 죽고 못사는 여인이 둘 있으면 둘다 데리고 살면 서로 다 좋아지는 것 아닙니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 같은디.....ㅋㅋㅋ

 

 

 

 

 

 

작가의 성향에 대해 애써 모른 척하고 읽었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장편소설 한강과 비교가 자꾸 되는데, 그것도 애써 무시하고 읽었습니다.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렇지만 흡입력 하나는 대단했습니다. 12권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대하소설이라는 장르가 이제 아예 없어져 버린 요즘, 작가의 말마따나 '거대한 시대의 벽화' 를 통해 내 아버지 세대를 통과한 시간이 어떻게 지금 현실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지금은 거의 없어져 버린 소설 장르이긴 하지만, 대하소설은 읽을 만한 책들이 참 많습니다. 내가 읽은 최초의 대하소설은 영웅문이다....ㅋㅋㅋ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에서 부터 시작해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 최명희 선생의 혼불, 이병주 선행의 지리산과 산하, 김주영 선생의 객주 (저는 이두호선생의 만화 객주로 읽었습니다ㅎㅎ)황석영 선생의 장길산 등등.....

 

 

 

그 중에서 누군가 나에게 최고의 소설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입니다. 나의 사고를 확 바꿔놓은 소설입니다. 빨치산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로망?을 그 서슬이 시퍼렇던 시대에 썼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근대 역사 교과서 3부작 중에서 시대적으로 2부에 해당하는 소설입니다. 그 3부작의 3부에 해당하는 소설이 바로 한강입니다.

 

 

 

 

 

 

 

나이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하여, 아리랑을 거쳐 한강을 쓰고 나니 예순이 되었더라는 조정래 선생의 일생의 역작입니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라 할지라도 작가란 진실만을 말하는 작품을 쓰라는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된다고 선생을 말씀하십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 민초들의 삶을 보여주는 아리랑, 그리고 625가 중심 배경이 되었던 태백산맥, 그리고 50년대에 시작해서 광주 항쟁의 전까지의 기록이 바로 한강입니다. 변경과 시대적으로 같이 하며, 그렇기에 419나 516, 유신 같은 주요 사건들도 같이 나옵니다. 그런 시대의 과도기적 사건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 한쪽은 수구꼴통을 대표하는 작가고 또 한쪽은 빨갱이로 몰려 감옥까지 갈 뻔했던 작가 - 같은 것을 느끼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조정래 선생의 삼부작은 꼭 읽힐 생각입니다. 어느 교과서보다 어느 드라마 보다 재미있고 느낄 것이 많은 우리 초라한 인생들의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안 읽으면 때려서라도??? 이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고, 용돈을 듬뿍 줘서라도.... 그러기 전에 자기가 스스로 읽어볼 수 있게 키우는게 제일인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