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편이 아니라 당신의 곁이 되기 : 엄기호의 단속사회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이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자기를 '단속團束'하며 타자와의 관계는 차단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차 끊어져버린 상태, 이것은 나는 '단속'이라고 이름붙이고자 한다. (p.10)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힘든 점은 무얼까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자신을 꿈을 가로막는 가난? 자신감의 부족? 가족이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몰락? 가진자의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멸시? 무얼 상상해도 현실이 되는 사회 지도층의 비리와 부패? 자신의 이익을 위한 편가르기? 각박해져 가는 사회? 제 기준으로 한번 적어봤습니다만, 사실 이 모든 것이 짬뽕이 되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개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외.로.움.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서울이라는 살벌한 지역에서 혼자 살아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일 수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이 느끼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합니다.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말속에 살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애쓰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소통의 부재'를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 정기호의 <단속사회> 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인생이란 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어합니다. 하소연이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듣고 반응하며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면 더욱 좋겠지요. 책은 그것을 '곁'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이 지하 세계의 언니들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댓가가 좀 후덜덜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곁'이 있습니까? 책에서는 끔찍할 정도로 없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편'이 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놉니다. 자기 '편'이 아닌 쪽과는 피터지게 싸우거나 아얘 무관심해 버립니다. 이 '편'이라는 곳에는 반성이나 성찰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실제 필요한 것은 '곁' 인데, 우글거리는 건 '편' 이라는 얘기입니다. 저자는 이 '편'이라는 곳에서만 놀면 이렇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렇게 타자와의 만남이 사라지고 개별화, 동질화된 세계에서 인간의 경험은 축소되고 국지화된다. 경험은 낯선 것과는 단절된 채 비슷한 것, 동질적인 것 안에서만 무한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세계관, 즉 낯선 존재들을 "우연히 상봉하는 과정에 의해서만 성장한다는 관념"을 잃어간다. 우리는 낯선 존재들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익숙한 것을 상대화하게 되고 때로는 "친숙한 관념과 기성 진실을 뒤집어 놓을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면서 우리는 낯선 것에 도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용기를 얻는다. 그런데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동일성에만 숨어들게 되면서 우리의 경험은 축소되고 성장의 기회는 봉쇄된다. 이것이 사냥꾼의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한 안전의 댓가다. (p.61)
사진 출처 : http://office.kbs.co.kr/mylovekbs/archives/134687
저자는 '함'의 과잉 상태에 대해 비판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거나, 오히려 자연에 몸을 맡겨 '당함'을 체험하는 것도 자신을 만드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꼭 해야 남에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이런 관점은 꽤 매력적입니다.
일본의 이세신궁 이야기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이 성지는 20년에 한번씩 완전히 새로 짓는다고 하는데요, 멀쩡한 건물은 부수고 옮겨 짓기도 한답니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전승해야 하는 것이 그 건물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목수라도 혼자만 기술을 간직한 채 죽어버리면, 기술도 같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지혜와 기술과 경험의 연속성이 끊어져 버린 지금 시대에 새겨 들을 만 합니다.
여행에서 만남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타자와의 만남이 없는 여행은 그저 구경에 불과합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다녀라" 라고 하는 중국의 고어는 "만리 길을 걷다 보면 만명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 이라고 해석되어 집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사진 출처 : http://www.ja-mong.com/637
우리는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거나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기 스스로 단속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단속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단속사회를 깨 버릴 수 있을까요? '소통의 부재'의 시대에 소통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 소통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경청'일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말을 주의깊게 들어줄 사람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그렇게 높진 않을 겁니다. 서로 싸우고 비판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바쁜 여러가지 형태의 '편'들, 정치권에서 시작해서 여러 굵직한 문제들, 사드, 송전탑, 세월호, 쌍용차, 위안부, 삼성전자, 최저임금 등등등, 그리고 크고 작은 국가와 사회의 피해자들....
우리가 좀 더 귀 기울여 들었더라면, 혹은 그런 노력을 좀 더 했더라면, 그래서 듣고 그에 적절한 반응을 했더라면, 이런 갈등은 한층 쉽게 해결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남의 말을 잘 듣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이들이 주위에 있는 것, 나의 곁을 내어주고 타인의 곁으로 다가가는 것, 용기있게 말을 걸고 다른 이와 소통하는 것, 이것이 <단속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오랜만에 시청 광장에 한번 나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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