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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나 :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by 개락당 대표 2015. 12. 30.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나 :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P 27

 

 

 

이 아저씨 초반부터 바로 정곡을 때립니다.

 

다양한 개인이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해, 자기가 사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잘된 점은 칭찬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나' 입니다. 이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양옆에 사람이 앉는 게 싫어서 구석자리를 찾아 맨 앞칸까지 가곤 한다. 제주도 송약산에 처음 간 날, 둘레길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에 흥겨워 목소리 높아진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무리를 보는 순간 바로 절경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사람 없는 중산간 마을만 한참 걷다 온 일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제일 앞장에 나오는 문유석 판사의 고백인데, 그야말로 바로 딱 '나' 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손석희 아저씨도 성향이 너무 똑같아서 경이롭다고까지 했습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직장생활을 해야 합니다. 문판사는 요령 좋게 피해다니기도 하고 또 어쩔수 없이 감내해야 되는 거라면 적극적으로 잘해내기도 하고 그렇게 모나게 대립하지 않으면서 잘 지내왔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외친 말이 아래와 같습니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건 무난하다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안되는 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저의 신념....까지는 아니지만 모토 정도는 됩니다. 회사, 짤릴뻔 했습니다. ㅋㅋㅋ  직장생활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같이 일 안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꼭 한두명 또라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또라이들에게는 더 싫은 건 싫다고, 안되는 건 안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는 순간 그 또라이와는 원수지간이 됩니다. 문판사는 싫은 걸 싫다고 말하면 자유와 행복을 얻을지니... 라고 말했는데 해보니 핍박과 왕따를 얻었습니다. 이런~~~ 문유석아자씨. 거짓말쟁이......

 

 

 

이 아자씨 잘생기기까지 하셨다. 서울 법대 수석 합격에 지금은 부장판사님. 완전 엄친아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이런 아자씨가, 나는 개인주이의잔데여, 우리 같이 합리적인 개인주의자가 됩시다~~~ 라고 하는 말이 사실 배알이 좀 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말은 다 옳다. 백번 지지한다. 이 아저씨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같은 좀팽이들이 삐딱하게 볼 것도 미리 예상하고는, 그렇다고 머리 숙일 일도 아니지 않느냐는 그의 아주 개인주의자적인 발언까지도 지지한다. 사진 출처 : 대학내일의 문유석 판사 인터뷰 중에서

 

 

 

문유석 판사의 책이 아니더라도 나는 개인주의자로 살아왔습니다. 싫은 건 싫다고, 안되는 건 안된다고 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조직생활에서 인정받고 잘 한다는 소릴 들으며 남보다 빨리 승진도 하는 그런 길은 당연히!!! 아니지만, 나름대로 아직까지 그럭저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겁니다. 문판사가 얘기하는 행복과 자유는 전혀 오지 않겠지만, 그냥 그게 편합니다.

 

 

 

개인주의자로 주눅들지 않고 살며,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그릇된 걸 그르다고 말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른 것을 바로 잡아보려는 노력도 좀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사는 것, 저자가 말하는 개인주의자의 삶이 딱 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머, 딱히 어려운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태 우리는 너무 획일적이었습니다. 무리 사회였습니다. 군대 조직의 문화였습니다.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다양한 개인이 많아지는 것이야 말로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고,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가 되는 가장 지름길이라고 확신합니다.

 

 

 

 

PS

 

책에는 후안마이라는 베트남 여인네가 나온다. 울 나라에 시집와서 남편한테 구박만 받다 결국 그 남편에게 맞아 죽은 19살 짜리 소녀이야기다. 그 소녀가 죽기 하루 전 남편에게 쓴 편지이다. 겨우 열아홉살에 죽은 그 소녀의 편지속의 후안마이는 겨우 열아홉살의 소녀가 아니다. 인생의 정수를 제대로 아는, 사색이 깊은 여성이다. 베트남에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을텐데..... 안타까움과 분노가......

 

 
 

[유서]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도 부인이 기뻐 보이지 않으면 남편이 그 이유를 물어보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남편은 왜 오히려 아내에게 화를 내는지, 당신은 아세요?

 

 

남편이 어려운 일 의논해 주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내를 제일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저는 당신의 일이 힘들고 지친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저도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나중에 더 좋은 가정과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당신은 아세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하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는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당신을 기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신이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려 주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을 말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진실된 남편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되요. 물론 부부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상처가 너무 많아 결국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 사람의 감정을 존경하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는 상황들과 원망하게 하는 상황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게 되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자존심이 있고 자신을 ‘정답’에 서게 하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부부가 행복할 수 없고 위험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에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아세요? 제가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는 호치민 시에서 일을 했어요. 당신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 집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저는 가정을 위해서 일을 나가야 했고,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하지만 봉급은 얼마 못 받았지요. 저는 노동이 필요한 일도 했었어요.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그것이 가축을 기르는 일이든, 농작을 하는 일이든... 가족들은 노동일로 벼를 심고 베는 일을 했어요.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입을 것과 먹을 것만 겨우 충당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에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고, 단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을 바랬을 뿐이에요. 저도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하고 또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제가 베트남에 돌아가게 되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당신이 저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당신이 잘 살고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저는 베트남에 돌아가 저를 잘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하여 다시 처음처럼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의 희망은 이제 이것뿐이에요. 당신과 전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뿐이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정말로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