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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서점 : 우쓰기 겐타로 <고양이 서점 북두당>

by 개락당 대표 2025. 9. 20.

 

내가 자주 들러는 동네 책방 <생의 한가운데>에도 고양이가 산다. 주인장의 아들이 기르던 고양이인데, 어찌저찌하여 책방으로 오게 되었다. 검은 녀석은 '웅이', 하얀 녀석은 '미오'다. 책방에 자리를 잡은 후로는 손님이 와도 한번 스윽 쳐다보고는 왔는갑다 하고 자기 할 일을 한다. 할 일이라고는 책 위에서 식빵 굽기, 책방 의자 사이를 어슬렁거리기, 밥 먹고 하품하고 고양이 세수하기 등이다. 그러다 사람의 손이 고프면 슬그머니 다가와 다리에 머리를 들이민다. 몇 번 쓰다듬어 주면 이젠 됐어 하고 간다.

 

서양 속담에 고양이는 아홉 번 산다고 한다. 세 번은 노닐고, 세 번은 방랑하며, 마지막 세 번은 인간과 함께 한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도 아홉 번 산 고양이이다. 인생을 아홉 번쯤 살고 나면(심지어 전생의 기억도 다 가지고 있다) 그 깨달음의 경지가 어디쯤일까. 그래서 이 주인공은 삼라만상의 이치를 다 깨우친 고양이다. 이런 고양이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예사롭게 보이던 책방의 고양이가 정말 달라보였다. 나를 보는 그 도도한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인간아, 너는 아직 멀었다. 그렇게 책만 읽는다고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애? 아직 가맣다!" 라고 말한다. 

 

 

 

 

 

책의 주인공은 쿠로라는 검은 고양이다. (쿠로는 검둥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시로라는, 짱구가 기르는 개 이름의 뜻은 흰둥이이다.) 이 녀석은 과거가 꽤 독특한데, 무려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녀석을 관찰하고 빙의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썼다. 이 거장과 함께 한 것이 쿠로의 세 번째 삶이었다. 에도 시대의 대기근을 시작으로 메이와와 쇼와 시대를 거쳐 지금 아홉 번째 인생을 이 북두당 서점에서 보내고 있다. 

 

그러니 아홉 번을 삶을 산 고양이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하는 짓이 그 얼마나 어리석고 하찮겠는가? 그래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렇게 썼다.

 

p.13

그리고 '여덟 번째' 생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달았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인간이라는 종족은 산다는 것을 괜히 복잡하게 생각한다. 배불리 먹고 실컷 자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동물은 충분히 만족스러워한다.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잡아먹힐 걱정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인간은 대개 돈이 필요하다느니, 살아가는 보람이 어쩌니 하면서 쓸데 없이 키를 재고, 자꾸만 뭔가를 더 바란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창한 꿈을 입에 올리지만, 대부분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망하게 죽어간다.

 

인생을 아홉 번쯤 살면 삶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쿠로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길고양이로 살아가던 시절엔 자신도 어디서 먹이를 구할지, 어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인지,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느라 여유가 없었다고 고백하면서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인간들이 고양이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것도 금방 알아차렸다. 여유가 없는 인간들을 측은해한다.

 

p.109

마음의 여유를 잃은 인간이란 얼마나 딱한 존재인가. 반대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인간은 또 얼마나 손해를 보며 살아가는가. 어느 쪽이든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음이 가난하면 돈과 시간에 쫓겨 쓸데없는 일은 피하고, 모든 행동에 의미와 대가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니 길가의 고양이가 시야에 들어올 리 없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가 없는 행위는 그들에겐 사치일 뿐이니까. 이치에는 맞지만 그렇게 여유 없는 삶의 방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습고, 또 한편으로는 측은했다. 

 

서점 북두당의 주인장은 기타호시라는 여자인데, 놀랍게도 고양이의 언어를 할 줄 안다. 고양이 사이에서는 마녀라 불린다. 아주 탐나는 재능이다. 기타호시는 루루, 키누, 카아, 치비, 지이노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이 녀석들도 삶의 내공의 보통이 아니다. 이 서점에 작가가 꿈인 10살 소녀 마도카가 자주 온다. 자신의 습작 노트를 기타호시에게 보여주고 기타호시는 마도카의 글을 칭찬한다. 아무런 조언 없이 오로지 칭찬만 한다. 인생 만렙의 쿠로는 그러는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내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p.130

지금은 그저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써보고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즐거울 시기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연출하고, 결말을 짓는 일. 그 작업이 무엇보다 재미있는 시기인 것이다. 거기에 어른이 부주의하게 개입해 이래라저래라, 여길 고쳐라 저긴 다시 쓰라고 간섭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싫증을 느끼고 말 것이다. 그런 조언을 해도 되는 건 소녀가 스스로 더 잘 쓰고 싶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읽히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바람을 마녀에게 이야기했을 때다. 그전까지 그냥 지켜보는 것이 옳다.

 

마도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잠시 글을 중단한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도 한다. 그런 마도카를 위해 쿠로는 기타호시의 힘을 빌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쿠로의 이야기는 오직 마도카를 위한 글이다. 쿠로는 마도카가 지금은 잠깐 비바람을 피할 뿐, 자신의 꿈을 계속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p.330

'그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주었으면 했다.' 이야기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 뿐이었다. 입시가 띁난 뒤 다시 시작해도 좋고, 취직을 위해 잠시 펜을 내려놨다가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다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계속 쓰기만 한다면, 꾸준히 나아가다보면 결코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일지라도 지는 일은 없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깨닫는다. 어떤 사람에게 글을 쓴다는 건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 뭔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글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음악, 그림, 축구, 그리고 사랑이 대신한다.

 

p.371

굳이 그러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텐데, 그 사내(나쓰메 소세키)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펜을 들었던 걸까.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가시밭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를 구원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여정이었다. 지금은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방 주인장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 책인데, 가지고 와서는 그날 밤에 다 읽어버렸다. 아홉 번의 삶을 산 고양이와 서점 주인장, 그리고 한 소녀의 아름다운 판타지 이야기다. 하지만 허무맹랑하지 않다. 여러 번 생을 산 고양이들의 대화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서점 주인장의 행동에서 삶의 여유가 있는 이들의 행동을, 글을 쓰고자 하는 소녀에게서는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얻는다. 무엇보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이 판타지같은 상황과 어우러져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 없게 하는 즐거움과 유쾌함, 그리고 따뜻함이 있다. 

 

책은 여러 이야기가 엇갈려 나오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창작의 고통과 극복이다. 책방 주인장 기타호시는 마법에 걸려 글을 짓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쿠로는 그런 기타호시에게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잃어버린 이야기, 버려진 기억, 잊힌 관계들을 다시 불러낸다. 그런 존재들은 세상의 빛으로 나와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를 구원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여정이라 했다. 나에게 있어서도 그런지 진지하게 물어봤다. 그렇다고 대답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짊어지고 있던 짐들을 내려놓게 된다. 나를 삐뚤어지지 않게 하는 힘이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세상이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응원해주는 관대한 고양이들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련다. 포기하지 않고.

 

혹시 <생가> 책방의 고양이 웅이가 응원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