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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47

나는 왜 이 소설이 불편한가 : 과탈루페 네텔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 라우라 나는 주말 내내 침묵을 지켰다. 월요일에는 예약도 없이 산부인과 진찰실에 찾아가 나팔관을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연거푸 질문을 던진 후 의사는 스케줄을 확인했다. 바로 그 주에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25쪽)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남친의 유혹에 넘어가 뜨밤을 보내고 난 뒤 후 라우라의 행동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고국 멕시코로 돌아온, 말하자면 상류층의 많이 배운 여성인 주인공은 자유분방한 삶을 살지만,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는 신념이 확고하다. 행복한 삶에 결혼과 출산은 절대적인 장애물이라는 신념.  # 알리나 "저를 재우지 말아주세요." 알리나는 분명히 말했다. "저는 이네를 만나고 싶어요. 얼굴을 보고, 가능한 한 모든.. 2024. 10. 16.
나라를 말아 먹은 대통령을 찾아봤다 : 쥴피 리바넬리 <마지막 섬> 1.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70세) 튀르키예 현직 대통령. 2003년부터 20년째 집권을 하고 있다. 의원내각제로 총리를 12년 해먹고, 계속 더 해처먹을라고 대통령제로 바꿨다. 심지어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당선되어 2028년까지 해 먹을 수 있다. 좀 희한한게 독재자이지만, 선출된 독재자다. 이게 말이 되나. 튀르키예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슈카월드에 자주 등장해서 친숙하게 되었다. 여태 튀르키예를 말아 잡수시고 계신다.  튀르키예 물가 상승률은 평균 40%다. 물가가 그렇게 오르니 최저 시급을 50% 올려서 임금을 물가에 맞추는 정책을 썼다.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엄청난데도 금리를 내리는 노벨상감의 금리 정책으로 튀르키예 경제를 아주 박살 냈다. 요즘 엔화가 싸져서 다.. 2024. 9. 23.
Chat GPT에게 독후감을 써달라고 했다 :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 차일드> 올 여름에 이주현 교수를 모시고 글쓰기 강좌를 열었다. 나는 주최자이면서 학생이었다. 교수님은 이 책을 추천했다. 책에는 를 비롯해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 중에 한 편을 골라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를 내주셨다. 엄청난 상을 받은 엄청난 소설이라는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뭔가 낯선 소설이었다. 비유와 은유와 상징이 한가득했다. 이를 다 풀기에는 나의 한계가 명확했다. 해서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봤다.   Chat GPT에게 물어봤다. 첫번째 질문은 '마사의 책에 대해 말해줘'라고. AI의 답은 아래와 같다.옥타비아 버틀러의 "The Book of Martha"는 책임, 변화, 인간 본성에 대한 주제를 다룬 사려 깊은 단편 소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녀의 단편 소.. 2024. 9. 22.
백 년 전 일본의 시덥잖은 뒷담화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는 고양이다. 아직 이름이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튼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데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던 것만은 기억난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족속을 봤다. 나중에 들은 즉 그건 서생이라는 인간,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영악한 족속이라고 한다. (p.16)  그는 고약한 굴처럼 서재에 딱 들러붙어 일찍이 외부 세계를 향해 입을 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아주 달관한 듯한 상판대기를 하고 있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p.39)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열심히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운다. 우선 일기처럼 쓸데없는 건 결코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2024. 9. 4.
바틀비를 인터뷰했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바틀비, 이 문서를 함께 검증해보세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디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여기 이 서류의 검증을 도와주게. 자, 여기 있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어서! 내가 기다리고 있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왜 거부하는 거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p.30) 이 책은 뉴욕 월가의 한 변호사가 바틀비라는 청년을 필경사로 고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입니다. 바틀비는 창백하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나 다른 필경사와는 달리 기복이 없고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처리합니다. 그런 바틀비를 보고 변호사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틀비는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변호사가 시키는 일을 거부합니다. 업무를 .. 2021. 7. 24.
스토너라는 남자의 이승 여행기 : 존 윌리엄스 <스토너>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네,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걸 소풍이라고 했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 여기가 아름다웠다고 말한댑니다. 어떻게 살면 내 삶이 아름다웠다 라며 죽을 수 있을까요? 아무나 할 순 없을 겁니다. 천상병 시인쯤 되면 가능했겠지요. 이 소설은 '스토너'라는 남자의 이승 여행기입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남자가 대학에 가고, 학문에 눈을 뜨며 교수의 길을 걷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깁니다... 2021. 7. 23.
냄새로 느끼는 세상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에 대하여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독일 퀼른 인근의 바헨도르프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브루더 클라우스 예배당'에 갔습니다. 미니멀 건축의 거장 피터 줌터의 작품인데요, 넓은 밀밭 한 가운데 서 있는 조그만 예배당입니다. 진흙이 섞인 전통 방식의 콘크리트 건물로 태초에 시간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한 것처럼 들판 한 가운데 우뚝 서있습니다. 삼각형의 육중한 문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경계입니다. 그 문을 열고 '빛이 떨어지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온몸의 감각이 털이 서듯 일어납니다. "헉!" 줌터 할배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 오직 저 외마디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어떤 형용사나 부사로도 설명이 안됩니다. 저 공간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 공간에서 제가 체험한 것과 느낀 것과 감동 받은 걸 다른.. 2021. 7. 18.
모비딕, 그 매혹적인 자유로움에 대한 찬가 : 허먼 멜빌 <모비딕> 적도에서 먹이를 섭취하는 일이 한창일 때 적도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견디기 어려운 권태와 더위를 피해 북해에서 여름을 보내고 방금 돌아온 참이다. 잠시 적도의 산책길을 어슬렁어슬렁 오르내린 뒤에는 서늘한 계절을 기대하고 동방의 바다로 떠나서, 또다시 찾아올 더위를 피한다. (p.475) Q. 은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입니다. 나다니엘 호손은 이 책을 두고 현대판 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A. 어릴 때 문고판으로 백경을 읽은 적이 있다. 고집쟁이 외다리 선장과 거대한 하얀 고래와의 사투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다. 영화도 봤다. 거친 바다의 사나이들과 전투력 만랩의 고래가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드디어 완역본을 읽는다는 기대감이 하늘.. 2021. 3. 22.
느릿느릿 완행열차를 타고 모리오카, 시즈쿠이시까지 가보고 싶어라 : 아사다 지로 <칼에 지다> 느릿느릿 완행열차를 타고 모리오카, 시즈쿠이시까지 가보고 싶어라 : 아사다 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사무라이입니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 말기 신센구미의 말단 무사지요. 시대 배경은 '보신 전쟁'이라 부르는 신 정부와 구 막부의 내전입니다. 사무라이들이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싸웠지요. 일본 역사에서 요 시절은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역사 곳 인물 중에서 일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해서 정한론의 주창자이자 세이난 전쟁의 주범인 사이고 타카노리, 그리고 신센구미의 검객을 위시해서 칼 좀 쓴다는 사무라이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세키가와라 전투와 더불어 일본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역사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막부 시대의 역사를 좀 찾아.. 2020. 7. 15.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보이지 않았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보이지 않았네 : 이탈로 칼비노 건축가들의 책을 읽다 계속 걸리는 책이 있었다. 승효상 선생의 글에서, 정기용 선생의 글에서, 김종진 선생의 글에서 이 책을 언급했다. 예전부터 눈에 가시 같았는데, 이제서야 만났다. 반가움에 와락 달려들었다.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뭐야, 이 책은?" 이라는 외마디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꿋꿋하게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도 내가 뭘 읽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베네치아 출신의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보고 겪은 도시를 황제에게 알려준다. 하나의 도시에 대해 두세 페이지에 걸친 짧은 묘사로 쉰다섯 개의 도시에 대해 이.. 2020. 7. 6.
이게 외설이라고?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이게 외설이라고?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당신 엉덩이는 정말 예뻐유. 당신은 누구보다도 더 예쁜, 가장 예쁜 엉덩이를 가졌슈. 정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제일로 예쁜 엉덩이에유. 그리고 구석구석 전부 정말 여자다운 엉덩이에유. 엉덩이가 단추구멍만 해서 사내아이들 것이나 다름없는 지지배들의 엉덩이가 아니에유. 정말이에유! 당신 엉덩이는 부드럽게 휘어져 내린 굴곡이 있어서 남자라면 당신 배 속의 창자까지 진짜로 사랑하게 해유. 이 세상을 받쳐 들 수 있는 엉덩이에유, 정말이에유. 나는 그것이 좋아유. 그것을 좋아해유! 그리고 딱 십 분을 산다 하더라도 당신 엉덩이를 쓰다듬고, 그것을 알게 된다면 한평생을 제대로 산 거라고 생각할 거에요. 알겠쥬! 산업사회의 제도든 뭐든 상관할 거 없어유! 여기에 내.. 2020. 6. 24.
왜 나는 너를 미워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미워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책장 한 구석에 있는 이 책을 일부러 찾은 건 순전히 박웅현 때문이다. 에서 언급한 이 책의 몇 구절들이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매력적인 책이었어? 내 기억엔 좀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랑 이야기였었는데..... 그리하여 박웅현의 독법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씹어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주인공인 '나'가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약간의 권태기를 거쳐 이별하는 이야기다. 문장을 꼭꼭 눌러가며 이 진부하고도 독창적인 연애 소설을 읽었지만, 역시 재미는 별로 없다. '나' 라는 녀석이 너무 분석적이고 철학적이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를 꼬셔서 (실은 클로이가 결정적인 순간에 "라면 먹고 갈래요?" 라며 대시했다) 뜨거운 정.. 2020. 4. 8.
오늘만 사는 남자 조르바, 그리고 나의 아내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오늘만 사는 남자 조르바, 그리고 나의 아내 : 니코스 카잔차키스 1.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p.17) 자신를 데리고 가라는 조르바의 요청에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리니 조르바가 하는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달아보고 재보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나. 조르바는 생각보다 행동이다. 지중해에 사는 사람은 이 햇살 가득한 지금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나중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다. 내 아내도 그렇다. 2.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리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리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 2020. 4. 2.
오, 제가 이 책을 진정 다 읽었단 말입니까?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오, 제가 이 책을 진정 다 읽었단 말입니까? : 레프 톨스토이 1.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들어봤슈?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첫 문장이 인상적인 소설 탑 쓰리에 들어갈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문장입니다. (나머지 둘은 과 을 꼽습니다. 파묵의 도 인상적인 첫 문장입니다.)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사랑이 있어야 하고, 가족들간에도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구성원이 다 건강하고,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 행복한 가정에는 별 드라마가 없습니다. 하지만 잘 안되는 집구석은 참 다양합니다. 맨날 피터지게 싸움하는 부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자식넘, 백수인 남편,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2020. 3. 25.
내 주변에도 이데아와 메타포가 존재하나?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내 주변에도 이데아와 메타포가 존재하나? : 무라카미 하루키 1. 시간이 남는다. 남아도 무지 남는다. 책을 읽는거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집에 읽지 않은 책은 벌써 다 읽었다. 코로나 땜시 도서관 문을 닫은지 꽤 됐다. 할 수 없지. 서점에 들렀다. 하루키의 책이 나를 째려봤다. 째려보면 어쩔건데? 애써 무시했으나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정 그렇다면야. 2. 긴 족자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미모의 여인이다. 근데 이 미모의 여인이 밤이 되면 그림 밖으로 나온다. 막 돌아다니기도 하고 오지랖 넓게 현실 세계에 관여한다. 그러다 곤경에 빠지게 되는데 어떤 떠꺼머리 총각이 도와준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여인은 아침 닭이 울면 족자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 뒤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총각이 .. 2020. 3. 16.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 : 히라노 게이치로 <마티네의 끝에서>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 : 히라노 게이치로 들이야 오늘 외할아버지 제사다. 학원 가지 마라. 에이, 오랜만에 학원 가서 춤이나 실컷 출라고 했는데. 알았어. 엄마. 네, 장인 어른 제사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처가집으로 좀 일찍 가라고 아내가 그럽니다. 자기는 오늘 모임이 있어서 좀 늦겠다고 말입니다. 직장에 다닐 땐 멀리 있어서 제사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은 백수라 가지 않을 핑계가 전혀 없습니다ㅎㅎㅎ. 저녁 무렵 처가에 가니 동서들도 오고 식구들이 음식 장만에 분주합니다. 밤 10시쯤에 제사를 모시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아직입니다. 제사가 한창입니다. 아내는 여전히 무소식입니다. 제사가 끝났습니다. 아내는 오지 않았습니다. 처제, 처남, 처형들에 그 배우자까지, 세째딸인 .. 2020. 2. 10.
작은 책방에서 정지우 작가와 함께 읽은 데미안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작은 책방에서 정지우 작가와 함께 읽은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시스 (p.123) 동네 작은 책방 에서 고전 강의가 있댑니다. 안 갈 이유가 없습니다. 백수가 된 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입니다. 평소엔 이런 책 절대 안 읽습니다. 서양 고전을 읽을 좋은 찬스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습니다.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하, 어렵습니다. 데미안은 청소년 필독서 아니었나? 근데, 이렇게 어려워? 눈으로 글을 읽고 있으나 문장이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서사도 .. 2019. 5. 25.
야쿠자 모가지를 따라구요? : 오쿠다 히데오 <쥰페이, 다시 생각해!> 야쿠자 모가지를 따라구요? : 오쿠다 히데오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일로 요즘 머리가 아픕니다.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생각을 별로 안하고 싶은데, 이게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잠깐만 틈을 주면 머리 속에 여러 골치 아픈 일들이 지네들끼리 엉키고 설켜 뒤죽박죽입니다. 생각해봐야 답도 안나오고 도움도 안되는 이넘들을 확 내쫓아버렸으면 좋겠지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휴~~ 이럴 땐 역시 책입니다.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소설이면 좋겠죠. 서점에서 어슬렁거리던 중 오쿠다 히데오의 책이 눈에 띕니다. 옳지, 시간 순삭에는 이 냥반 소설이 딱이쥐~~~ 여러 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때 이 냥반 소설은 제목도 안보고 다 읽었는데, 요즘 좀 뜸해졌습니다. 상습적인 폭력을 가하는 남편을 .. 2019. 5. 15.
악의 평범성,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악의 평범성,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 베른하르트 슐링크 케이트 윈슬렛이 나오는 이 영화를 본 건 몇 년 전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봤더랬다. 몇몇 장면, 예를 들면 케이트 윈슬렛의 아찔한 뒤태라던가, 유대인 포로 수용소의 적막감과 쓸쓸함, 여주인공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충격적인 결말 등은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꽤 인상적인 영화였다. 우연히 서점 매대에서 이 책을 만났다. 얼마 전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 공부하다가 어느 블로그가 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보다 이 책이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문장이 생각났다. 책을 손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등 뒤에서 타월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는 문질러서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러나 나더니 타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2019. 4. 27.
편의점 '폐기'는 달고 맛났다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편의점 '폐기'는 달고 맛났다 : 무라타 사야카 # 1. "아빠. 나 핵인싸에여. 친구 완전 많아여!" "응, 그래? 좋겠네. 아빠는 완전 아싼데.ㅋ" 중학교에 들어간 막내가 자랑을 했다. 학교 생활이 즐거운 모양이다. 저렇게 자랑까지 할 정도면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류에 들어가겠지.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주류에 끼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그냥 어울리는 게 싫어서 일 수도 있을테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과는 별개로 혼자 노는 친구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미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친구가 있구나 하고 그냥 냅두던가. 니편 내편 나누어 따돌림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 2. 일본에서 편의.. 2019. 4. 2.
이젠 마음의 창에 불을 켤 때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이젠 마음의 창에 불을 켤 때 :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을 탄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9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아니, 하루키도 못탄 노벨문학상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이 냥반이 탔다고? 대단한 일본인이네...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계속 거기서 자라고 살며 글을 썼습니다. 정체성은 일본인이고, 그 외는 영국 사람이겠지요. 지인의 추천과 함께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도 그렇고, 어떤 책인지 궁금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956년 영국의 한 저명한 저택인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살아온 스티븐슨은 그가 모시던 달링턴이 죽자 새로운 미국인 주인을 모십니다. 새 주인의 권유로 6일간의 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집사라는 일을 수행하느라 집을.. 2018. 12. 31.
어느날 찾아온 당신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습니다 : 오드리 니페네거 <시간 여행자의 아내> 어느날 찾아온 당신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습니다 : 오드리 니페네거 지니가 나에게 와서 소원을 빌어봐 라고 말하면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시간여행의 능력일 겁니다. 과거로 돌아가 이불킥을 하고 있는 나에게 조언을 한다거나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건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시간 여행은 영화나 소설의 단골 매뉴이기도 합니다. 백투더 퓨쳐는 시간여행 영화의 정석이라 불릴만 하구요, 터미네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에 남는 시간여행의 영화는, 시간여행의 능력을 인지하고는 어제 동생에게 뺏긴 푸딩을 되찾는 10대의 철없이 순수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 그런 엄청난 능력이 있음에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만큼 현재의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다는 등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유투브에서 영화 를 소개해주는.. 2018. 12. 13.
영화도 좋고 책도 좋구나 : 신카이 마코토, 카노 아라타 <언어의 정원> 영화도 좋고 책도 좋구나 : 신카이 마코토, 카노 아라타 형, 그거 책으로 읽으면 영화와는 또 달라. 한번 꼭 읽어봐. 아이들과 잠깐 들른 서점에서 이리저리 책 구경을 하다 를 발견했습니다.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저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2년쯤 전의 일인데도 말이죠. 독서 모임에서 함께 공부하던 한주 녀석이 자기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며 영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추천하던 책입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바로 샀습니다. 영화를 본 지는 오래되어 내용은 선명하지 않지만, 아직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비가 내리는 장면의 놀라운 영상미입니다. 응? 이거 만화 맞어?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아름답던 공원의 풍경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알게 되어 그가 이전에 만들었.. 2018. 11. 30.
오만한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의 로맨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오만한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의 로맨스 : 제인 오스틴 # 줄거리 영국의 작은 마을인 롱본에 사는 베넷 가문에는 다섯 딸이 있다. 베넷 부인은 딸들을 좋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근처에 빙리라는 훈남 청년이 이사오자 동네 여자들은 난리가 난다. 첫째 딸 제인은 빙리가 맘에 들지만 애정을 숨기고, 당찬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빙리의 친구인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다아시를 만나지만 그의 무뚝뚝한 태도에 '오만하고 무례한 남자'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자유분방하며 매력적인 여자'로 판단하여 점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다아시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는데..... # 제인 오스틴 (1775~1817) 영국의.. 2018. 10. 21.
회색빛 이스탄불을 빨간 속살을 지닌 도시로 바꾼 책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회색빛 이스탄불을 빨간 속살을 지닌 도시로 바꾼 책 : 오르한 파묵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1권 '내 이름은 빨강' 챕터 중에서) 이 소설은 1591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술탄 휘하의 세밀화가들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울나라로 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한 해 전이군요. 몇백 년 전의 남의 나라 이야기라 몰입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물론 스토리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지만 말이에요.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사항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소설의 특징두요. 아무래도 배경들을 이해하고 나면 이 소설이 좀 더 쉽게 읽히겠지요. # 오스만 제국 (1299~.. 2018. 10. 6.
인생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 기타가와 에미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인생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 기타가와 에미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이전에 함께 공부하던 지인의 카톡 대문 사진. 저 문구를 보고는 캬~~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저런 멋진 문장을 어디서? 바로 카톡을 날렸다. 나 : 대체 이런 멋진 말은 어디서 나오는 거얔ㅋㅋ 지인 : 에 나오는 영화 대사입니다.ㅎ 나 : 영화 막 검색해 봤는데, 급 땡기네여. 주말에 봐야 되거쓰~ 지인 : 영화보다는 원작인 기타가와 에미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응? 근데 책 제목이 라구? 이건 완전 내 얘기잖아? 나는 눈을 뜨자마자 퇴사를 생각하고, 근무하면서도 퇴사를 생각하고, 퇴근하면서도 퇴사를 생각한다구!!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 뒷 표지가 유난히.. 2018. 9. 16.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 대하여 : 알베르 카뮈 <이방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 대하여 : 알베르 카뮈 우리 동네에서 독서대전이라는 게 열렸습니다. 채사장의 강연이 있길래 이건 빠질 수 없어~ 하고 자고 있는 딸을 깨워 함께 달려갔습니다. 무엇을 얘기할까 잔뜩 기대를 했는데, 채사장이 가지고 온 것은 알베르 카뮈의 이었습니다. 헐~~ 토요일 오전에 카뮈라고? 눈이 부신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그 '이방인' 말이야? '인문학적 사유와 성장'이라는 무거운 주제임에도 채사장의 말빨을 탁월했습니다. 이 책 해석을 다하고 나서 이제 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그 시간에 자기 책을 읽으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그만큼 소설의 해석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실제로 그의 강의가 끝나자 을 완벽히 소화한 듯 했습니다. 그랬더니 더 궁금해졌습니다. 얼른 사서 읽었.. 2018. 9. 9.
오일러 공식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일러 공식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 오가와 요코 220 : 1+2+4+5+10+11+20+22+44+55+110 = 284 284 : 1+2+4+7+71+141 = 220 정답이야, 자 보라고,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한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처음 우애수를 발견한 사람은 정말 훌륭하네요. 암 피타고라스였어. 기원전 6세기 때 얘기지. 그런 옛날에도 숫자가 있었나요? 물론이지. 숫자는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아니 이 세상이 출현하기.. 2018. 7. 1.
그리고 내 마음도 울렸다 : 할레드 호세이니 <그리고 산이 울렸다> 그리고 내 마음도 울렸다 : 할레드 호세이니 아버지의 손은 상처투성이였고, 얼굴은 깊은 주름으로 덮여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 삽을 들고 손톱 밑에 때가 덕지덕지 낀 채 태어났을 것만 같았다. (p.49) 1952년 아프가니스탄의 샤그바드 마을. 압둘라와 여동생 파리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새어머니가 낳은 아기 이크발과 함께 살고 있다. 파리의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죽었기에 파리에게 압둘라는 오빠 이상의 존재다. 압둘라도 요정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파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다. 마치 부모처럼 동생을 먹이고 씻기고 돌본다. 동생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가 정말로 어렵게 사준 신발을 공작 깃털과 바꾸기까지 한다. 압둘라의 아버지 사부르는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일자.. 2018. 5. 20.
어디가 놀라운 삶인가? :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어디가 놀라운 삶인가? : 주노 디아스 그녀가 예고 없이 그의 무릎에 살포시 앉아 목에 얼굴을 살며시 기댄다든지 하는 그런 친밀함, 그가 그때껏 숫총각이었다는 말을 그녀가 들어주는, 평생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커플만의 친밀함, 그 오랜 기다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한 건 이본이었다. - 뭐라고 부르지? - 글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p.389) 숫총각으로 죽으면 쪽팔려서 저승에도 못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이야기다. 이 나라에 사는 오스카 와오도 숫총각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엄청나게 뚱보에다 못생기고.. 2018.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