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의 로맨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줄거리
영국의 작은 마을인 롱본에 사는 베넷 가문에는 다섯 딸이 있다. 베넷 부인은 딸들을 좋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근처에 빙리라는 훈남 청년이 이사오자 동네 여자들은 난리가 난다. 첫째 딸 제인은 빙리가 맘에 들지만 애정을 숨기고, 당찬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빙리의 친구인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다아시를 만나지만 그의 무뚝뚝한 태도에 '오만하고 무례한 남자'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자유분방하며 매력적인 여자'로 판단하여 점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다아시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는데.....
# 제인 오스틴 (1775~1817)
영국의 소설가로 당대의 중상류층 젠트리(영국의 사회 계급 중의 하나로 대귀족 아래의 가신 계급. 조선으로 치면 양반)의 생활을 주로 썼다. 가난하지만 명민하고 생기발랄한 여주인공들이 고난을 겪은 끝에 행복한 결혼을 한다는, 연애소설의 전형을 만들었다. 전혀 심오하지 않다. <오만과 편견>은 1796년 집필된 작품이지만, 세상에 나온 것은 1813년이며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러니까 21살의 풋내기 아가씨가 쓴 소설이 200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 소설이 쓰인 시대
정약용이 강진에서 한창 유배 생활을 할 시절 이 소설이 나왔다. 무려 200년 전의, 그것도 영국 사회를 묘사한 소설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결혼이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며 개인이 끼어들 여지가 극히 적었을 것이다. 하물며 여성이 투표권과 상속권도 없는 시절이다. (베넷씨가 아들이 없어 상속을 하지 못해 끙끙거리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니 여성이 자신의 사랑을 남성에게 고백하는 과감한 대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그래서 말 못하는 제인을 보며 어이구, 이 답답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명문 가문의 돈 많은 청년 다아시의 사랑 고백을 차버리는 엘리자베스는 그 시대의 여자가 보면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겠다.
# 첫 문장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독신 남성이라면 틀림없이 아내를 갖고 싶어 할 것이라는 사실은 세계 어느 곳이나 통하는 진리다.
음, 그 시대엔 그랬단 말이지. 돈 많은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다는. (그럼 가난한 독신 남자는 아내를 가지고 싶어 하지 않나?) 이 문장은 당시 영국 상류층 사회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 돈 많은 훈남은 굳이 아내가 필요 없다. 여자가 필요하지. 근데 이 문장을 뒤집어 보면, '미혼의 여성은 재산이 많은 남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진리다.' 정도가 될텐데, 이 문장도 요즘은 틀렸다. 능력있는 미혼의 여성은 결혼하지 않는다.
# 로맨스 소설
니가 내 아들과 결혼한다고? 아들이 가진 돈에 니가 눈이 멀었구나. 이 돈 받고 떨어져.
흑흑. 어머님.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저는 니 아들을 진짜 사랑해요.
네 이년! 어디서 말이라고!!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시츄에이션. 그저 그렇던 사랑도 주위에서 심한 반대를 하면 그 사랑은 아주 단단해진다. 그리고 둘이 힘을 합쳐 장애물을 물리치고 사랑을 쟁취한다. 본래 사랑이란게 그렇다. 이 소설에도 다아시의 고모인지 이모인지 하는 허세 작렬 부인이 나와서 자신의 딸과 다아시를 결혼시킬 목적으로 엘리자베스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한다. 똑부러지는 엘리자베스가 포기하면 소설이 아니지. 그렇게 그녀는 주위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랑을 차지하여 결혼했다. 지금은 널리고 널린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조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 기. 승. 전. 결혼
소설 속에 나오는 네 커플.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평범하고 현실적인 샬롯은 자신의 재산과 지위에 맞추어 찌질이 목사 콜린스와 결혼하고, 막내 동생 리디아는 책에 나오는 최고의 쓰레기 위컴과 충동적으로 결혼한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제인은 주위의 도움으로 빙리와 맺어지게 되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의 믿음과 애정을 확인한 후 커플로 맺어진다.
제인 오스틴은 성격도 제각각이고 재산이나 신분도 제각각인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결혼에 골인하는지 보여준다.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 일대의 비지니스인 것이다. 당시에는 그랬던 모양이다. 요즘도 강도가 좀 약해졌을 뿐 그리 달라 보이진 않지만. 소설 속에 등장한 네 커플은 모두 행복하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지만 소설은 결혼 후의 모습은 안보여준다. 사실 결혼 후에 훨씬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 오만과 편견
기본적으로 오만한 남주와 편견을 지닌 여주의 이야기다. 다아시는 사교회장에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이 남자 성격 자체가 그렇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말 잘 안하면 오만해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이 남자의 겉모습과 다른 사람이 이 남자를 평하는 말만 듣고 다아시를 오만한 남자라고 여긴다. 다아시를 오만한 남자라고 여기는 엘리자베스도 조금 오만해 보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비판으로 오만해 보이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다아시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며,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해 가면서 여자는 남자의 오만함을 깨닫게 해주고, 남자는 여자의 편견을 깨게 해주어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 이렇게 골인한 결혼은 아무래도 행복한 결혼 생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사랑은 자고로 이래야 하지 않을까.
# 이 소설이 이백년 동안이나 사랑받는 이유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에는 책이 쓰일 당시나 지금이나 시대를 달리한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그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책에는 여러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오만한 남자 다아시, 우유부단한 남자 빙리, 찌질한 남자 콜린스, 완전 쓰레기 위컴, 고백 못하는 여자 제인, 된장녀 라디아, 주책 바가지 베넷 부인, 세상 일에 별 관심 없는 베넷, 총명하고 대찬 엘리자베스.....
제인 오스틴이 적나라하게 묘사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 주위에도 금방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진 오만한 모습이나 편견들, 그리고 욕망과 속물성도 여전히 쉽게 발견된다. 그렇다면 책에 묘사된 다양한 모습들은 우리의 본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본질....
# 그리고 감상
나는 이 책이 인간의 보편성을 주제로 한 심오한 철학이 담긴 책인 줄 알았다. 제목도 무려 오만과 편견 아닌가. 알고 보니 그것도 나의 편견이다.
200여 년 전의 영국 상류 사회 연애 소설이 무어 그리 재미있겠냐. 지금은 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막장인 소설이 널렸는데.
남들이 명작이라는데 나는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면 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 2005년에 키이나 나이틀리가 엘리자베스로 출연한 영화도 있던데. 소설 읽느라 소비한 시간 때문이라도 영화를 봐야겠다.
오래된 남의 나라 소설을 읽었는데, 오래된 우리 소설도 궁금하다. 정실이 되기 위한 첩의 사기극을 그린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나 뒤적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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