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 기타가와 에미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이전에 함께 공부하던 지인의 카톡 대문 사진. 저 문구를 보고는 캬~~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저런 멋진 문장을 어디서? 바로 카톡을 날렸다.
나 : 대체 이런 멋진 말은 어디서 나오는 거얔ㅋㅋ
지인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 나오는 영화 대사입니다.ㅎ
나 : 영화 막 검색해 봤는데, 급 땡기네여. 주말에 봐야 되거쓰~
지인 : 영화보다는 원작인 기타가와 에미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응? 근데 책 제목이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구? 이건 완전 내 얘기잖아? 나는 눈을 뜨자마자 퇴사를 생각하고, 근무하면서도 퇴사를 생각하고, 퇴근하면서도 퇴사를 생각한다구!!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 뒷 표지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영업부 신입사원 아오야마의 일주일이 적혀 있었다.
월요일 : 죽고 싶다
화요일 :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수요일 : 가장 처지는 날
목요일 : 조금 편해진다
금요일 : 조금 기쁘다
토요일 : 가장 행복한 날 (단, 휴일 근무하는 날은 제외)
일요일 : 내일을 생각하면 아아악....
완전 공감이다. 특히나 월요일 출근을 위해 근무지로 가는 막차를 타는 일요일 저녁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의 기분이 된다. 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버리면 좋겠다 라는 상상도 수도 없이 한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생활을 한 지가 십수 년이 넘었건만 정말 적응되지 않는다. 적응은 커녕 점점 싫어진다. 며칠 전에도 터미널에 배웅 나온 중3 딸에게 "아빠 가기 시러! 일하러 안가면 안돼?? ㅠㅠ" 하고 징징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회사 일이 힘들수록 버티라고? 힘들수록 때려치워! 네 인생이잖아
입사 반년 된 주인공 아오야마.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야근과 실적에 대한 압박과 상사의 모욕으로 삶에 대한 의욕은 제로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정규직이라는 자리를 내칠 용기는 없다. 그렇게 주말만을 기다리는 의미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겨우 부여잡고 있던 가느다란 인생의 끈을 지하철 역에서 막 놓으려는 찰나 의문의 인물 야마모토가 그를 구한다.
야마모토는 아오야마의 초등학교 동창이라 소개하고 이후로도 계속 찾아와 그에게 조금씩 마음의 여유와 활기를 되찾도록 도움을 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우울하기만 했던 타카시의 인생에도 즐거운 변화가 찾아온다. 늘 웃는 얼굴 뒤에 비밀을 간직한 듯한 야마모토가 누군지 궁금했던 타카시는 인터넷 검색으로 3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헉! 뭐야, 이 친구!
나한테도 이렇게 손을 잡아주는 준짱이 필요해~~~
책 읽은 김에 영화까지 봤다. 책도 좀 유치했지만, 영화는 더 유치하고 뻔한 스토리였다. 그리고 비누아트(호주 옆에 있는 자그마한 섬나라)라니...... 하지만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끔 나오는 손꾸락 오구라드는 대사가 왠지 힘이 되기도 했다.
엄니한테 전화를 했다.
나 : 엄니, 힘들어유. 회사 그만 댕기면 안될까?
엄니 : 그기 아이들 셋 낳은 가장이 할 소리가!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나 : 나 회사 그만 둘까봐. 나도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래.
아내 : 이기 미친거 아이가! 니가 정신이 있나 없나!
아오~~ 아오야마는 커녕 내 주위의 사람들은 다 이러냐.ㅋ 어리광 부릴 나이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보내는 시간의 주인공이 되고 싶단 말이다. 나도 더 이상 남의 시간을 살지 않겠어! 라고 외쳤다. 물론 속으로.....ㅋㅋ
소설 속 야마모토의 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있다. "도망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했죠. 나도 남편도 늘 힘내라, 열심히 해라 격려하며 길렀고요.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으니까 힘내라고 말이에요."
"넌 할 수 있어, 힘내" 라는 말이 아닌 "그래, 넌 좀 쉬어도 돼. 그동안 수고했어." 라는 말이 진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나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고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내 친구도, 직장 동료도 그렇다. 내가 진짜 듣고 싶은 말은 "좀 쉬어, 내가 니 밥은 멕여 줄께"다. 음, 기대치가 너무 높나? ㅋㅋㅋ.
사실 사십대 후반 중년의 위치라는 게 참 애매하다. 아오야마처럼 신입사원도 아니고, 아이 셋의 아버지다. 관두면 당장 생계가 문제다. 초딩 중딩 고딩인 세 아이 밥은 어떻게 먹일지 막막하고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보다 회사를 관둔 미래가 행복하다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겠지만, 그런 확신이 없다. 하지만 직장을 관둔 사람들이 굶어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그들도 어떻게든 살아간다. 소설 속 아오야마는 자신의 꿈을 찾았다. 그런 멋진 결말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내가 황폐해지지는 않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겠나.
괜찮아. 인생은 말이지, 살아만 있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험험, 정녕 그렇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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