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이스탄불을 빨간 속살을 지닌 도시로 바꾼 책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1권 '내 이름은 빨강' 챕터 중에서)
이 소설은 1591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술탄 휘하의 세밀화가들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울나라로 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한 해 전이군요. 몇백 년 전의 남의 나라 이야기라 몰입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물론 스토리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지만 말이에요.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사항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소설의 특징두요. 아무래도 배경들을 이해하고 나면 이 소설이 좀 더 쉽게 읽히겠지요.
# 오스만 제국 (1299~1922)
현재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수도로 하여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이란, 아제르바이잔, 북쪽의 우크라이나, 폴란드와 남쪽의 예멘,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제국입니다. 오스만 투르크 또는 터키 제국이라고도 불렸습니다. 1차 세계 대전까지 존속하였으며 터키의 국부로 불리는 아타튀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세우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유럽을 떨게 만들었던 역대 최강이자 최후의 이슬람 제국이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오스만 가문이 오늘날의 앙카라 부근에서 나라를 세우고 지금의 터키를 통일한 후 파죽지세로 유럽으로 진출했습니다.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삽시간에 꿀꺽하면서 발칸 반도를 접수했습니다. 한창 기세가 등등할 무렵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한 새로운 이슬람 국가인 티무르와 한판 붙었는데 아주 발렸습니다. 이때 좀 주춤했지만 빨리 회복하였고,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오스만이 점령하면서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꾼다)을 정복하여 로마 시대를 끝장내버렸습니다. 유럽이 벌벌 떤 이유가 있었군요. 그들의 최대 전성기는 1530년에서 1560년이라고 합니다. 소설의 배경인 1591년은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가 막 끝나가려 할 무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비흐자드 (1450~1535)
인간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슬람 문화에서는 그림이 발달하기 힘들었다는군요. 하지만 그 그림이 이슬람의 교리를 표현한다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모순 사이에서 건축물과 동식물, 그리고 인물을 세밀하고 화려하게 표현한 세밀화는 이슬람 미술사의 백미라 불린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비흐자드의 그림은 이슬람 세밀화의 완벽한 모범이라 불립니다.
목욕하는 쉬린을 바라보는 휘스레브. 바흐자드의 그림이다.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우리네 탱화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책에 나오는 이스탄불의 세밀화가들이 죽도록 동경한 이가 바로 비흐자드라는 화가인데요, 티무르 제국이 분열과 쇠락의 길을 걸을 때 헤라트(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다채롭고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풍부합니다. 이슬람 화가들이 너무나 존경했고 그와 같은 경지에 다다르길 바랐습니다. 그 시대 이슬람 세밀화가계의 메시 정도랄까요.ㅋ
# 전통 VS 근대
당시 오스만 세밀화가들의 그림은 신의 시점에서 본대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원근법을 무시하고 중요한 것은 중앙에 크게 그렸습니다. 모든 사물은 신이 본 것처럼 상세하게 그렸습니다. 이것이 이슬람 세밀화의 전통이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의 유럽은 르네상스가 절정을 넘어 이미 근대로 진입하였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왔죠. 미술에서도 베네치아 화풍으로 불리는 서양의 그림은 달랐습니다. 사람이 본 그대로 그렸습니다. 가까이 보이는 건 크게, 멀리 보이는 것은 종교적으로 중요하다 하더라도 작게 그렸습니다.
16세기 초에 활동했던 베네치아 화풍의 최고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노의 대표작 <우리비노의 비너스>. 나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 관능적이다. 한눈에 봐도 같은 시기의 비흐자드의 그림과는 많이 다르다.
사진 출처 :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venus-of-urbino/bQGS8pnP5vr2Jg?hl=ko
이슬람 전통 양식을 고집하는 세력들과 근대적인 유럽의 화풍을 받아들이려는 세력과의 갈등과 분열이 이 소설의 서사를 이루는 가장 큰 줄기입니다. 그것때문에 살인까지 일어나게 되죠. 이런 대립은 단순이 미술의 한 양식의 문제 뿐만 아니라 아예 세계관의 충돌일 것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경계에 있는 이스탄불이 어떤 정체성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문장의 형식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자는 내가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숨소리를 들어 보고 맥박까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옆구리를 힘껏 걷어차더니 우물로 끌고 와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미 돌에 맞아 깨져 있던 내 머리는 우물 바닥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얼굴과 이마, 볼도 뭉개져 형태를 분간할 수 없다. 뼈들도 부서졌고 입안엔 피가 가득하다. (1권 '나는 죽은 몸' 챕터의 첫 부분)
소설의 첫부분입니다. 시체가 등장하여 말을 합니다. 각각의 주인공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등장 인물 뿐만 아니라 개, 동식물, 악마, 심지어 색깔까지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헐~~. 하지만 좀 읽다보니 익숙해집니다.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형식이 꽤 매력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악마가 하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 소설의 줄거리
1591년 겨울, 이스탄불의 밤. 주인공 카라가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종 사촌 세큐레를 사랑했지만 이모부인 에니시테에 의해 내쳐졌습니다. 머나먼 타국인 페르시아를 헤메다 이제서야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세큐레는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두게 되지만 막상 남편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했다 실종됩니다.
한편 에니시테는 술탄의 지시로 당대 최고의 세밀화가들을 동원해 비밀리에 그림책을 만듭니다. 그 그림은 전통적인 이슬람 화풍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 화풍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그림책을 통해 술탄은 오스만 제국의 위엄을 널리 알릴 생각이었죠. 여기에 참여한 세밀화가들 중 엘레강스가 살해됩니다. 범인은 에니시테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견해 차이로 에니시테마저 충동적으로 죽입니다.
세큐레는 아버지가 죽음으로서 시댁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해 서둘러 카라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면서 카라에게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라고 하면서 그때까지 한 침대를 쓰지 않겠다는 엄청난? 협박을 합니다. 카라는 술탄에게 그림책에 참여했던 세밀화가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하면서 화원장인 오스만과 함께 범인 색출에 나서는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이스탄불의 갈라타 타워
사진 출처 : https://yandex.com/collections/card/5884b5811e37f6742421616e/
솔직히 말해서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이라는 시간과 공간 모두 낯설었습니다. 그 시공간에 몰입되는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카라를 사랑하지만, 사랑보단 자신과 어린 아이들을 가장 잘 부양해줄 수 있는 남자를 고르기 위해 머뭇거리는 세큐레, 그깟 화풍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세밀화가들과 화원장의 태도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문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서사가 있습니다.
책을 내려놓고 의미를 곱씹어봅니다. 이슬람 화풍이건 서양 화풍이건 동양 화풍이건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화원장 오스만이 지키려는 이슬람의 전통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에니시테의 노력도 모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도 그런 의도였을 겁니다. (물론 저는 범인이 누구인지가 궁금했고, 카라가 범인을 잡고나서 세큐레가 카라에게 내리는 상에 더 흥미가 갔지만 말입니다. ㅎㅎ)
건축가 서현은 그의 책 <빨간 도시>에서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이젠 회색빛으로 시들어가던 이스탄불이 이 소설이 인해 빨갛고 파란 속살을 지닌 도시로 변모했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한 절찬을 없습니다. 파묵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서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을 했던 이스탄불이 더 궁금해집니다. 벌써 마음은 그 빨간 속살을 확인하러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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