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외국)

오일러 공식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by 개락당 대표 2018. 7. 1.

 

 

 

오일러 공식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220 : 1+2+4+5+10+11+20+22+44+55+110 = 284

284 : 1+2+4+7+71+141 = 220

 

 

정답이야, 자 보라고,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한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처음 우애수를 발견한 사람은 정말 훌륭하네요.

 

 

암 피타고라스였어. 기원전 6세기 때 얘기지.

 

 

그런 옛날에도 숫자가 있었나요?

 

 

물론이지. 숫자는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아니 이 세상이 출현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어. 숫자의 탄생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알았을 때 이미 거기에 있었을 뿐이지. 수를 낳은 자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우둔한지 몰라..... (p.37)

 

 

 

한 젊은 여인이 세토 내해가 보이는 어느 집에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됩니다. 그 집은 벌써 아홉 번이나 가사도우미가 교체되었다는 군요. 조심스런 마음으로 고객인 노인과 첫 대면을 합니다. 인사 대신 노인은 자신의 발 사이즈을 묻습니다. 24라고 하니 참으로 청결한 숫자군, 4의 계승이야 라고 말합니다. 

 

 

 

기억이 어느 시점에서 멈춰버리고, 현재의 기억마저 80분만 지속되는 천재 수학 박사와 그의 집에 온 열 번째 가사도우미, 다짜고짜 신발 사이즈를 묻는 노인의 괴팍함에 잠시 당황하지만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곧 수를 통해 다른 이와 소통하는 박사의 방식에 점점 익숙해갑니다. 그리고 한신 타이거의의 열렬한 팬인 그녀의 아들이 합류하면서 박사는 그에게 '루트'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세 사람의 관계는 더욱 두터워집니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p.42)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ambhu&logNo=221297078237

 

 

 

2003년에 오가와 요코가 쓴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기억에 장애가 있는 늙은 수학자와 그의 가사도우미,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시간을 함께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숫자로 대화하면서 박사의 특별함을 깨달아 가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수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수의 세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한 번 볼까요?

 

 

 

28. 자신의 약수를 더하면 자신이 되는 수. 완전수.

완전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숫자지. (p.66)

 

 

 

루트 마이너스1은..... 그런 수는 없지 않나요?

아니지, 여기 있잖나. 아주 조심성이 많은 숫자라서 말이야. 눈에 띄는 곳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히 있어. 그리고 그 조그만 두 손으로 이 세계를 떠받들고 있지. (p.7)

 

 

 

i와 π를 곱한 수로 e를 거듭제곱해서 1을 더하면 0이 된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오일러의 공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유성 같았다.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한 줄의 시였다. 거기에 담긴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나는 메모지를 다시 정액권 지갑에 집어넣었다. (p.183)

 

 

 

위의 저 공식을 10초 쯤 째려보았습니다. 별로 감이 안옵니다. 전혀 상관이 없는 다섯 개의 숫자를 다시 노려봅니다. 아무래도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검색을 해봅니다. 수학 전문가들이 '이 세상의 어떤 다이아몬드도다 멋지고, 어떤 보물보다 아름다운 공식'이라고 평가를 했고, 저 공식이 왜 아름다운지 구구절절 설명해놓은 글을 보았지만 저는 저 공식의 아름다움에 다다를 수가 없군요. 박사는 느껴보라고 했는데 말이죠. ㅋ

 

 

 

 

 

 

박사의 수업을 들으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그가 모른다, 알 수 없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모른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향한 길잡이였다. (p.92)

 

 

 

혹시나 가사도우미와 그의 아들 루트와의 사랑에 박사의 기억이 돌아오려나 하는 기대를 해보았지만, 소설은 그렇게 내 맘대로 전개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사가 이야기하는 수의 세계 만큼이나 소설 속 인간들의 이야기도 아름답습니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해, 그리고 아무런 득실을 따지지 않는 서로에 대한 순수함 말입니다. 참,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다는 군요. 소설 속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창 밖에 장마비가 한창 내립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어느새 비는 그쳤네요. 벚꽃 날리는 봄에 읽어도 좋은 책이었겠지만, 지금처럼 장마비가 내리는 시기에 읽어도 좋습니다. 온종일 내리는 비에 습해진 마음이 가습기를 가동한 마냥 뽀송뽀송 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