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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그리고 내 마음도 울렸다 : 할레드 호세이니 <그리고 산이 울렸다>

by Keaton Kim 2018. 5. 20.




그리고 내 마음도 울렸다 : 할레드 호세이니 <그리고 산이 울렸다>

 

 

 

아버지의 손은 상처투성이였고, 얼굴은 깊은 주름으로 덮여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 삽을 들고 손톱 밑에 때가 덕지덕지 낀 채 태어났을 것만 같았다. (p.49)

 

 

 

1952년 아프가니스탄의 샤그바드 마을. 압둘라와 여동생 파리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새어머니가 낳은 아기 이크발과 함께 살고 있다. 파리의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죽었기에 파리에게 압둘라는 오빠 이상의 존재다. 압둘라도 요정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파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다. 마치 부모처럼 동생을 먹이고 씻기고 돌본다. 동생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가 정말로 어렵게 사준 신발을 공작 깃털과 바꾸기까지 한다.

 

 

 

압둘라의 아버지 사부르는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지만, 그들 가족에게 겨울을 버텨내는 건 혹독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부르는 매제 나비의 권유로 더 자신보다 훨씬 더 좋은 양육 조건인 카불의 부잣집에 딸 파리를 보낸다. 손가락을 자르는 아픔이었지만, 손목을 자르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지극한 사랑으로 남다른 남매애를 보였던 압둘라와 파리, 그들은 결코 갈라져서는 안되고 갈라질 수도 없는 관계였지만 운명을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성장하게 되며 어떤 미래를 만날까? 재회는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시 만난다면 언제 어떤 식으로 만날까? 소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책을 읽고 나서야 책 표지의 그림이 보였다. 한참을 보았다.

 

 

 

아프가니스탄은 먼나라다. 중동에서 일할 때 모로코, 이집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프간 사람들을 만난 적은 없다. 블로그를 찾아봐도 이 나라에 갔다온 사람은 아주 드물다. 여행금지국이라 당연하겠지만, 가지마라고 하는 곳엔 기어이 가고야 마는 울나라 젊은이들의 오기와 투지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참 멀게만 느껴진다. 탈레반이 폭파한 바미안 석불과 나라를 가로지르는 힌두쿠시 산맥, 그리고 판지시르의 사자라 불리는 이 나라의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 정도가 내가 겨우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얼마전 아주 우연히 '12 솔져스'라는 영화를 봤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이게 911 테러 이후에 미국의 특수부대 요원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북부동맹과 연합하여 나쁜 탈레반 녀석들을 무찌른다는 내용인데, 그 배경이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그야말로 황량한 땅. 사막과 돌산으로 이루어진 상상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실화에 바탕한 그 영화의 씬들도 선명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땅이 궁금하면 꼭 추천드린다. 담백한 영화이고 나름 감명 깊었다.

 

 

 

황량한 돌산과 들판, 온통 회색의 땅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궁금한 차에 찾아보니 이 영화의 실제 촬영지는 뉴멕시코라고....ㅠㅠ. 이 영화에 나온 북부동맹의 대장 도스툼도 이 책에 살짝 등장했다.

 

사진 출처 : https://www.hdwallpapers.in/12_strong_2018_4k-wallpapers.html

 

 

 

조국의 위해 소련과 싸우고, 1989년 소련이 철수하고 나서는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원을 등에 업은 헤크마티아르와 싸우며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아흐메드 샤 마수드(1953~2001). 아프가니스탄의 영웅이었던 마수드는 2001년 알 카에다 소속 테러범들에게 암살당하고 이틀 뒤 911 테러가 발생한다. 책에 딱 한번 언급되셨다.

 

사진 출처 : http://www.museudeimagens.com.br/ahmad-shah-massoud-leao-do-panjshir/

 

 

 

당신이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 그건 그들이 당신에게 주는 선물인 거예요.

 

 

 

책의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아버지는 외교관이었고 어머니는 중등학교 교사였다. 1976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고 아버지는 파리의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에서 일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귀국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의학공부를 시작하여 내과전문의로 개업했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글을 써서 두 아프간 소년의 우정을 그린 <연을 쫓는 아이 - 2003년>를 발표했고, 2004년 전업작가로 변신하여 절망 속 상황을 함께 견뎌내는 두 아프간 여성의 이야기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2007년>을 썼으며 세번째 장편소설인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2013년에 발표했다. 벌써 5년이 지났으니 이제 곧 새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2006년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임명되었고 NGO활동과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자신의 조국에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다음백과 일부 인용)

 

 

 

세 권의 책을 모두 번역한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전작에 비해 스토리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여운이나 울림이 더 오래가고, 정치성이 약해졌으나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곳곳에 드러나 있으며 평범한 사람이 견뎌내야 하는 삶과 고통에 더욱 주목했다고 한다. 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의 소설은 나같은 이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사랑이다.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원죄 같은 사랑 말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하늘에서 본 카불

 

 

도심 외곽의 주거지

 

 

한 농촌의 모습과 총

 

 

산과 산 속의 들판

 

아프가니스탄의 모습. 위의 사진 출처 : http://www.museudeimagens.com.br/ahmad-shah-massoud-leao-do-panjshir/

 

 

 

잘잘못에 대한 생각을

넘어선 저 멀리에

들판이 있다.

나, 그대를 그곳에서 만나리.

 

- 13세기 시인 잘랄 아드딘 루미 (책머리에 등장하는 시)

 

 

 

서사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읽는 내내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했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 아픈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사랑과 희망을 품고 있었고, 내가 상상한 만큼 소설 속 인물들은 비참하지도 않았다.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 압둘라와 파리가 다시 만나는 장면. 작가는 어쩜 그렇게 둘을 만나게 했나.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였던가. 아이씨. 쪽팔리게.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좀 찾아보았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내부적인 다툼은 여전했고 얽히고 설킨 국제 정세도 어지러웠다. 소련의 침공부터 시궁창이었던 이 나라는, 단 한명의 지도자라 부를 수 있는 마수드가 죽은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잠깐 점령했으나 미국의 공격으로 쫓겨나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도 자기들끼리 여전히 싸우고 있다. 권력 때문인지 종교 때문인지 분명치도 않다. 현실은 시궁창이고, 가까운 미래도 여전히 시궁창일 것 같다. 호세이니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바램과 희망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 어쩌면 그래서 소설 속 이야기의 울림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