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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스토너라는 남자의 이승 여행기 : 존 윌리엄스 <스토너>

by Keaton Kim 2021. 7. 23.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네,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걸 소풍이라고 했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돌아갈 때, 여기가 아름다웠다고 말한댑니다. 어떻게 살면 내 삶이 아름다웠다 라며 죽을 수 있을까요? 아무나 할 순 없을 겁니다. 천상병 시인쯤 되면 가능했겠지요.

 

이 소설은 '스토너'라는 남자의 이승 여행기입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남자가 대학에 가고, 학문에 눈을 뜨며 교수의 길을 걷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깁니다. 새로운 연인을 만나 사랑도 나눕니다. 그리고 늙어서 죽습니다.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먼저 떠오른 것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었습니다. 스토너도 이승의 소풍이 끝날 때, 아름다웠구나 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스토너는 아주 행복했거나,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문학을 사랑하긴 했지만, 그의 연구가 큰 업적을 남길만한 것은 아니었고,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정교수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결코 인생의 동반자라 할 수 없었고, 딸의 인생도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채 시들어갔을 뿐입니다. 캐서린이라는 운명의 연인을 만나지만 이 사랑도 결국 완성하지 못합니다. 스토너가 행복했던 시기는 이 책 통틀어 몇십 페이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은 성공이나 명성이라고 부를만한 성취 없이 조용하게 시작해 조용하게 끝납니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란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p.384)

 

 

 

 

특이할 것 없는, 아니 평범하기까지 한 스토너의 일생이 왜 이리 여운이 남을까요? 나는 왜 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할까요? 그의 일생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책을 다 읽고 천상병의 시가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이런 질문들이 머리 속에 맴돕니다. 스토너의 일생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저의 이런 질문에 존 윌리엄스 작가가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이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p.393)

 

스토너는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일생에 여러 갈림길을 만납니다. 농과대학에 들어가서 영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게 당연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참전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려는 동료 교수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운명의 연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이별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해서 결정한 겁니다. 이 소박한 원칙을 그의 삶 내내 지켰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언제나 자신에게 솔직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 일을 사랑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고, 그런 행동에 대한 결과로 발생한 모든 일들을 덤덤히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묵묵히 견뎠습니다. 오직 자신의 삶을 살았고, 자신의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진짜 인생은 겉으로 보이는 평판이 아니며,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스토너는 죽음 직전에 잦아드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 답에 대해서 작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해답은 책을 읽은 독자들마다 다르겠지요. 지금 나에게 물어봅니다. 너의 인생에서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역시 답하기 어렵습니다. 스토너처럼 견디고 버티며 온전히 삶의 주인공으로 살면 답하기가 쉬워질까요?

 

그 해답을 찾기가 어려울 때 다시 이 책을 펼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