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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바틀비를 인터뷰했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by Keaton Kim 2021. 7. 24.

 

바틀비, 이 문서를 함께 검증해보세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디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여기 이 서류의 검증을 도와주게. 자, 여기 있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어서! 내가 기다리고 있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왜 거부하는 거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p.30)

 

 

 

 

이 책은 뉴욕 월가의 한 변호사가 바틀비라는 청년을 필경사로 고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입니다. 바틀비는 창백하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나 다른 필경사와는 달리 기복이 없고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처리합니다. 그런 바틀비를 보고 변호사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틀비는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변호사가 시키는 일을 거부합니다. 업무를 거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의 소통도 거부합니다. 바틀비는 결국 해고되고 그 사무실을 떠나것도 거부하여 감옥에 가게 됩니다. 감옥에서도 음식을 거부하여 결국 감옥의 벽 아래에서 죽습니다.

 

변호사의 관점에서 쓴 일인칭 소설이라 바틀비의 행동만 보여줄 뿐,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변호사도 궁금합니다. 바틀비가 쓴 소설이었다면 속 시원하게 다 말해줄텐데 말이에요. 그래서 바틀비의 입장을 한번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왜 "하지 않는 편을 택했는"지 말이죠.

 

 

 

바틀비 A

 

나를 고용한 저 변호사는 사람 좋은 척 하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위선자야. 하는 일이라곤 부자들의 재산을 지키는 일이 전부지. 그런 일을 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부류야. 이 사회는 점점 부르주아가 득세하는 천민 자본주의로 흘러가고 있어. 내가 일을 안하는 편을 택한 건 그런 자본주의에 대한 나만의 혁명이야. 모두가 어쩔 수 없다며 사회에 적응해서 산다면 사회는 결코 변하지 않지. 영원히 자본주의 체제에 끌려다녀야 해. 나는 그걸 거부함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의 불평등한 계약을 깨뜨리는 혁명을 한 거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난 나만의 혁명을 계속 할 거야.

 

 

바틀비 B

 

내가 예전에 했던 일을 들려줄까? 난 우체국에서 일을 했어. 편지 배달이지. 근데 말이야, 받는 사람들이 없는 우편물이 있어. 그것도 꽤 많이. 거기엔 전쟁에 나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편지도 있고, 이게 없으면 당장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에게 부치는 소액의 돈도 있지. 이런 우편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 불태워버려. 난 태우기 전의 편지들을 다 읽어. 그 엄청난 사연들을 말야. 그 이야기들이 불에 타는 걸 보면서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일 말이야. 우리네 삶도 그 편지 같지 않아? 내가 문서 한 줄 더 베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틀비 C

 

어떤 것이든 홀로 존재하는 건 없어. 모든 건 서로 기대어 존재하지. 불교에서는 이걸 공空이라 불러. 그래서 바깥 세계 즉, 색色은 언제나 나와 연결되어 있지. 내가 힘들고 괴로운 건 바깥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의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야. 부처는 바깥 세계의 일에 반응하는 내 자아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부처가 아니라서 그게 안돼. 그러니 내 마음의 안식을 위해 바깥 세계에서의 일을 차단하는 수 밖에. 내가 안하는 편을 택한다는 건 그런 의미야. 그 결과로 나는 오직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말이야.

 

 

바틀비 D

 

변호사 선생의 업무 지시를 거부한 내가 나쁜가? 내가 나쁘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자네는 말할 수 있나? 변호사 선생이 바라는 '바틀비'는 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겠지. 하지만 인생은 그런게 아니란 걸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네 인생이란 불합리하고 무의미하며 오직 죽음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내일이란 건 없어. 난 단지 매일 문서를 똑같이 베끼는 그 단조로움이 싫었어. 그런 권태에서 벗어나는 길이 오직 죽음뿐이라고 해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거네. 자네도 한 번 해보게.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자네'에게서 벗어나시게. 그렇게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게. 그러면 오히려 머리 속이 맑아지면서 새로운 세상이 보일걸세.

 

 

바틀비 F

 

난 말이지, 사실 이 건물의 건물주야. 심심해서 뭐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던 차에 내 건물에 붙은 광고를 보고 알바를 시작했지. 근데 한 사흘을 하니까 그것도 지루해지더군. 그래서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해어. 일을 안한다고 하면 나를 고용한 저 변호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이야. 그랬더니 상황이 아주 재미있어지더군. 이 친구가 우왕좌왕하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묻길래 그냥 무조건 다 안하는 편을 택한다고 했지.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 뭐, 내 건물인데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결국 그 변호사는 사무실을 옮기더군. 아, 저런 고급 노동자를 골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