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보이지 않았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건축가들의 책을 읽다 계속 걸리는 책이 있었다. 승효상 선생의 글에서, 정기용 선생의 글에서, 김종진 선생의 글에서 이 책을 언급했다. 예전부터 눈에 가시 같았는데, 이제서야 만났다. 반가움에 와락 달려들었다.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뭐야, 이 책은?" 이라는 외마디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꿋꿋하게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도 내가 뭘 읽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베네치아 출신의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보고 겪은 도시를 황제에게 알려준다. 하나의 도시에 대해 두세 페이지에 걸친 짧은 묘사로 쉰다섯 개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중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슷한 것도 있고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상상 속의 도시도 있다.
황제의 물음과 여행자가 대답한 도시는 거대한 은유와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다른 이들이 이 책에 대해서 쓴 글을 여러 편 찾아보았다. 책을 다시 들었다. 차분하게 내가 이해할 만한 도시를 읽었다. 좀 나아졌다.
마르코 폴로는 도시의 인구가 얼만지, 얼마나 넓은지, 몇 층짜리 건물이 있는지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로 도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걸로 도시를 담아낼 수 없다. 여행자는 자신이 느낀 도시를 상상과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도시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게 기억된다. 도시가 가진 얼굴은 하나지만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이유다. 하지만 칸에게는 획일적인 공간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p.18)
여행자는 자이라라는 도시를 묘사하면서 계단이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가 어떤 모양인지 지붕의 재료가 무엇인지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도시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루어지며 그 사건은 도시의 모든 단편, 즉 디테일에 세겨져 있다고 했다. 공간은 기억의 축적이라 배웠다. 삶의 흔적이 누적되어 있는 공간이 진짜 공간이라고 깨닫는 데에 나는 거의 30년이 걸렸다. 칼비노는 건축가도 아닌데 어쩜 저리도 명확하게 정의했을까.
이제 여러 계절 풍년이 들어 곡물 창고마다 곡식이 넘쳐났다. 불어난 강물들은, 청동 신전과 왕궁을 떠받칠 대들보의 운명을 타고난 숲의 나무들을 운반했다. 노예들의 카라반들은 대륙을 구불구불 횡단하며 산더미 같은 대리석을 옮겼다. 칸은 대지와 인간들을 내리누르는 도시로 뒤덮여 있고 재화와 교통수단들로 넘쳐나며 장식과 의식이 지나치게 많고 여러 조직들과 계급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고 부풀어 있으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무거운 제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국 자체의 무게가 제국을 짓누르고 있어.'
그는 연처럼 가벼운 도시를 꿈꾸기도 하고 레이스처럼 구멍이 뚫린 도시, 모기장처럼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도시, 나뭇잎의 잎맥 같은 도시, 손금 같은 도시, 불투명하고 허구적인 두께를 통해 볼 수 있는 세공품 같은 도시를 꿈꾸었다. (p.94)
칸이 이젠 너무 무거워진 자신의 제국이 다시 가볍게 되기를 희망하는 장면이다. 너무 무거워져 이제는 가라앉는 그의 제국을 보고 퍼뜩 떠오른 건 지금의 대도시였다. 아주 복잡하게 지탱하고 있으나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도시. 그러면 레이스처럼 구멍이 뚫린 도시, 나뭇잎의 잎맥 같은 도시, 손금 같은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칼비노가 바라는 이상적인 도시의 형태일텐데. 나뭇잎의 입맥과 같은 도시라니, 비유가 멋지지 않은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p.208)
지옥을 받아들이고 지옥의 일부분이 되어 사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여기가 지옥인 것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도시에서 인간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공간도 잃어버리고 산다. 그리고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잊고 산다. 현실의 지옥을 벗어나는 진짜 방법은,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지옥이 아닌 곳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세상이 규정하는 대로 살기 보다 내가 두 발로 꼿꼿이 서서 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사는 것, 현실의 지옥을 벗어나는 길이다.
여행자의 고향인 베네치아.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 치는 도시의 단편들. 나는 그것들과 마주하며 도시의 과거를 상상하고 현재의 삶을 그렸다.
베네치아는 산마르코 광장과 종탑 위에서 내려보는 섬의 조망도 좋았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람들이 손때가 묻어 있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었다.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나는 길을 잃고 헤맸다.
다시 읽어도 활자는 활자대로, 내 상상은 상상대로 평행선을 그린다. 좀처럼 교차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도시의 이미는 머리속에 자세하게 그려졌다. 자이라의 도시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선명해졌다. 저자가 묘사한 도시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종류의 공간이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더 읽으면 좀 더 많은 도시가 선명해질 것이다.
불현듯 아부다비 르와이스 사막을 배경 삼아 내가 짓던 아파트 너머로 넘어가는 석양이 떠올랐다. 그 환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풍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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