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외설이라고?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당신 엉덩이는 정말 예뻐유. 당신은 누구보다도 더 예쁜, 가장 예쁜 엉덩이를 가졌슈. 정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제일로 예쁜 엉덩이에유. 그리고 구석구석 전부 정말 여자다운 엉덩이에유. 엉덩이가 단추구멍만 해서 사내아이들 것이나 다름없는 지지배들의 엉덩이가 아니에유. 정말이에유! 당신 엉덩이는 부드럽게 휘어져 내린 굴곡이 있어서 남자라면 당신 배 속의 창자까지 진짜로 사랑하게 해유. 이 세상을 받쳐 들 수 있는 엉덩이에유, 정말이에유.
나는 그것이 좋아유. 그것을 좋아해유! 그리고 딱 십 분을 산다 하더라도 당신 엉덩이를 쓰다듬고, 그것을 알게 된다면 한평생을 제대로 산 거라고 생각할 거에요. 알겠쥬! 산업사회의 제도든 뭐든 상관할 거 없어유! 여기에 내 평생이 있으니까유. (2권 p.119)
바로 이거다. 세상을 떠받칠 만한 엉덩이라니. 칭찬과 찬양에도 등급이 있다면 A++을 주고도 남을 만하다. 이렇게 자신을 칭찬하는 남자를 만난다면(비록 여자를 꼬실 목적으로 진심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찌 여자가 넘어오지 않으리오. 게다가 멜로즈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진실된 남자다. 코니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저 문구는 밖에서 비를 흠뻑 맞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술레잡기를 하고 난 다음에 오두막으로 와서 사냥터지기인 멜로즈가 주인 마님 코니에게 하는 대사다. 지금 울나라의 어느 이름 모를 연인이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기는 커녕 훌륭하다. 내가 아내에게 해도 마찬가지다. 나도 저런 대사를 해보고 싶다. 당신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건 내 한평생을 제대로 사는 거라고. (근데, 누구에게 하지?)
아니유! 나는 한 여자에게서 쾌락과 만족을 얻고 싶었지만 그것을 한 번도 얻지 못했슈.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서 쾌락과 만족을 얻지 못하면 나도 그 여자한테서 그것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에유. 그런데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슈. 그것은 두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유. (2권 p.86)
멜로즈는 이런 대사도 했다. 연인이 서로 사랑을 나누었는데, 상대방이 나에게서 쾌락을 얻지 못하면 나도 상대방에게서 쾌락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 섹스는 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멜로즈는 몸으로 나누는 사랑의 핵심을 알고 있다. 남자, 혹은 여자만 만족을 얻기 위해 나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결코 진정한 쾌락을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하다. 얼마나 멋진 말이냐. 형님, 상남자여유!
영화 채털리 부인의 연인 (2015년)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황홀한 사춘기, 엠마뉴엘 부인, 마타하리, 애마부인, 산딸기 씨리즈..... 응팔 세대의 남자라면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그 옛날에 봤던 실비아 크리스탈이 나온 영화가 엠마뉴엘 부인인지 채털리 부인인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출판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 야한 묘사라고? 그걸 기대하셨다면 접는 게 맞다. 나도 쪼금 기대했지만, 그런 묘사는 없다. 오히려 같은 영국 작가인 제임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훨씬 야하다. 이 작품이 나왔을 시기엔 그랬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싸구려 야설이 온통 나뒹구는 세상인데. 그리고 그런 야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랑의 행위를 하는 장면이 아주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한번 해봤으면 하고.
이 소설은 1928년에 나왔다. 영국에서 모든 여자가 투표할 권리가 생긴 게 바로 이 때다. 그니까, 여자에게 투표권을 주니 마니 할 때, 병신 남편을 대신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하인과 바람이 나는 내용에 섹스의 적나라한 묘사까지 있는 소설이니 발표 후 그 난리가 난 건 어림짐작할 만 하다.
..... 그러면 여자는 굴복해야 했다. 남자는 성욕이 가득한 어린아이 같았다. 여자는 남자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심술부리고 발버둥 치고 지금까지 유쾌하게 이어오던 관계를 망쳐버리곤 했다.
그렇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를 내주면서도 내면의 자유로운 자아는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섹스에 대하여 노래한 시인과 이야기꾼들은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을 진정으로 주지 않을 수 있다. 여자는 남자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도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여자는 섹스 문제를 이용하여 남자를 지배할 수 있었다. 성행위를 할 때 여자는 감정을 억제하여 절정에 오르지 않으면서 남자로 하여금 용을 쓰고 끝내도록 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여자는 관계를 연장하여 성적 흥분의 최고조에 오르고 절정에 이르는 동시에 남자를 하나의 도구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권 p.55)
지금 읽어도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섹스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관점이 다른 걸 이렇게 묘사했다. 로렌스는 남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자의 입장에서 섹스를 바라보고 그걸 정확하게 꽤뚫고 있다. 당시엔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을텐데 말이다.
외설이니 포르노니 하면서 재판까지 갔던 그 소설이 80년을 살아남아 지금은 고전이 되었다. 남편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나서는 여인, 산업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결혼과 이혼에 대해 당시의 관습을 확 뒤집는 묘사, 섹스가 이 멍든 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불륜에 대한 응징(불륜의 아이콘 보바리 부인은 비소를 먹고 자살했으며 안나 카레니나도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이 아닌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는 열린 결말..... 이런 이유로 여태 많은 이들로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내 책과 내 입장을 고수한다.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룰 때, 이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균형이 유지될 때,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존중할 때 삶은 견딜 만해진다는 입장을 말이다. (2권 p.287, 작가의 말 중에서)
부부가 나이를 먹고도 잘 지내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한다. 말이 잘 통할 것, 음식 취향이 비슷할 것, 서로 만족할 만한 섹스를 할 것. 이 중에서 하나를 뺀야 한다고 하면 의외로 말이 잘 통할 것을 뺀다고 한다.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고 섹스를 한다면 굳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한다. 남은 두 개 중에서 하나를 더 빼야 한다고 하면, 맞다, 음식이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서로 만족할 만한 섹스라는 말이다.
유투브의 어느 강사가 한 말을 인용했는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도 바로 이거다. 마음이 담긴 따뜻한 섹스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 물질 만능의 산업 사회가 인간 중심의 사회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그래요, 로렌스. 명심할게요. 육체와 정신이 서로를 존중할 때 부부사이는 견딜 만해진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멜로즈가 자신의 연인에게 하는 저 대사는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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