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에서 정지우 작가와 함께 읽은 데미안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시스 (p.123)
동네 작은 책방 <숲으로 된 성벽>에서 고전 강의가 있댑니다. 안 갈 이유가 없습니다. 백수가 된 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평소엔 이런 책 절대 안 읽습니다. 서양 고전을 읽을 좋은 찬스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습니다.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하, 어렵습니다. 데미안은 청소년 필독서 아니었나? 근데, 이렇게 어려워? 눈으로 글을 읽고 있으나 문장이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서사도 감칠맛이 전혀 안납니다. 베아트리체, 너 정체는 뭐냐, 그렇게 빨리 사라지냐? 에바 부인과의 불륜? 텔레파시 소통?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브로맨스? 이것도 저것도 잠깐 다리만 담갔다 뺍니다. 영혼과 운명의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요즘 시대는 이거 없어진지 오랩니다.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니 안의 무언가를 찾아라' 정도 될 것 같은데, 팍팍 뇌리에 꼿히는 것이 아닌 뭔가 미적지근합니다.
데미안에서 가장 명문장이라 일컫는 위의 인용 문장을 읽었습니다. "응?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고? 태어나려는 자는 그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뭘 굳이 깨뜨리고 나오려고 그렇게 애를 쓰나? 귀찮게. 야, 나오면 힘들다. 안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래지 않냐. 그냥 알에 가만히 있어...."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책이 "알에서 나와 온전한 나를 완성해야 되지 않겠나?" 라고 말하면 "아, 네~~~ 님이나 많이 하세요." 뭐, 이런 감상이었습니다. 고전을 대하는 백수의 자세입니다ㅋㅋ.
그런 대충의 감상을 가지고 강연장에 갔습니다. 정지우 작가? 첨 들어봅니다. 완전 백지입니다. 어떤 분이려나? 하고 소심하게 기대하고 있는데, 어떤 미소년이 '뙇' 하고 나왔습니다. 오, 충격입니다. 30대 초반의 완전 꽃미남이 강사였습니다. 나만 몰랐던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몇몇 사람만 남자고 대부분의 청중이 여자분들이었습니다. 크르르릉~~ 갑자기 없던 전투력이 생깁니다ㅋㅋ.
이 냥반은 어떻게 이 소설을 해석하려나 하고 칼침을 세우고 있는데, 꽃미남은 배경이나 해석, 혹은 작가에 대한 설명, 그딴거 집어치우고 그냥 소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잡니다. 그래서 작가가 발췌한 문장을 함께 읽었습니다. 문장에 집중하니 소설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소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려줍니다.
김해 장유에 위치한 동네 책방 <숲으로 된 성벽>에서 데미안을 읽는 정지우 작가.
아~~ 잘 생겼다. 쒸바.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은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p.8)
나라는 개인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이렇게 특별한 존재다. 하지만 나는 그저 사회에서 규정된 어떤 존재로 살고 있다. 아버지, 남편,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김부장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특히나 획일화된 요즘은 잃어버린 특별한 존재인 나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왜 이렇게 나를 찾으려 하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나 자신,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살다보면 규정된 이름들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거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체험에서는 이 순간이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우리들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혀지지만 가장 비밀스런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흘린다. (p26)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오직 나의 경험과 체험으로 이루어진 나 자신이다. 어린 시절, 혹은 지난 시절의 생채기들은 아물고 꿰메지겠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그게 바로 나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어 내 앞 어딘가에 그려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걸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노는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p.129)
내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그것은 미래의 어떤 지점이다. 나는 그것을 내 머리속에 그리며 상상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지금 나의 모든 행동은 미래의 그 모습을 위해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순간은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하나의 하찮은 과정이 된다. 이건 아니다. 지금의 내가 가장 중요하며 지금 내가 행동하고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미래의 모습은 나도 모르겠다. 지금을 소중히 하며 살면 미래도 마찬가지겠지.
정말로 자신의 운명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자, 그에게는 그때부터는 자기 비슷한 사람이 없어. 완전히 홀로 서 있지. 주위에는 오직 차가운 우주뿐이지. (p.173)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나는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다. 발가벗은 나를 만나 얼마나 견딜 수 있나? 내 주변의 세계가 좁아질수록 내 내면의 세계는 넓어진다. 졸라. 그래서 나는 저 하늘의 별에도 닿을 수 있다.
우리가 의무이지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느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들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기꺼이 살리라는 것. (p.196)
미래의 어떤 지점을 정해 놓고 그것을 위해 현실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무엇이 오든지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각오를 다지는 일,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지금 할 일은 오직 이것이다.
함께 읽는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정지우 작가와 함께 한 데미안은 내가 읽은 데미안과는 전혀 다른 책이 되었습니다. 대체 난 무얼 읽은 거냐 인간의 소명이란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고 싱클레어는 온전한 자신을 마침내 찾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정지우 작가의 말을 되짚으며 그가 말한 구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단 완전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에 대한 안내서 같습니다.
이런 류의 인간들은 몇 압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인간들이죠. 겉으로 보기엔 개차반인 잉간들입니다ㅋㅋ. 이방인의 뫼르소가 그렇고,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그렇고,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렇습니다. 작가에게 짧게 물어보니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는 군요. 그 실존주의 말입니다. 아, 드디어 니체까지 공부를....
정지우 작가의 강연은 참 좋았습니다. 꽃미남이어서 잠깐 살기?를 품었지만, 그의 조곤조곤한 말솜씨에 모두 녹아내렸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은 깊었고, 부드러운 말은 아직 온전한 자신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돌도 되지 않은 아이도 봤습니다. 가족과 함께 강연을 함께 다니는 것도 멋있었습니다. 이제 정지우 작가의 팬이 되었습니다. 지우 오빠♡♡♡. 정작가 식겁하겠는데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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