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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야쿠자 모가지를 따라구요? : 오쿠다 히데오 <쥰페이, 다시 생각해!>

by 개락당 대표 2019. 5. 15.

 

 

 

야쿠자 모가지를 따라구요? : 오쿠다 히데오 <쥰페이, 다시 생각해!>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일로 요즘 머리가 아픕니다.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생각을 별로 안하고 싶은데, 이게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잠깐만 틈을 주면 머리 속에 여러 골치 아픈 일들이 지네들끼리 엉키고 설켜 뒤죽박죽입니다. 생각해봐야 답도 안나오고 도움도 안되는 이넘들을 확 내쫓아버렸으면 좋겠지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휴~~

 

 

 

이럴 땐 역시 책입니다.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소설이면 좋겠죠. 서점에서 어슬렁거리던 중 오쿠다 히데오의 책이 눈에 띕니다. 옳지, 시간 순삭에는 이 냥반 소설이 딱이쥐~~~ 여러 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때 이 냥반 소설은 제목도 안보고 다 읽었는데, 요즘 좀 뜸해졌습니다. 상습적인 폭력을 가하는 남편을 죽이고나서 일어나는 서스펜스 만땅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 이후로 첨이네요. 어떤 책이 좋을까 잠깐 고민하다 이 책을 집었습니다.

 

 

 

 

 

 

사카모토 쥰페이, 21살. 도쿄의 최대 유흥가 가부키초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은 야쿠자 조직의 말단 똘마니입니다. 어려서 이혼하는 바람에 아버지 얼굴은 기억도 안나고, 엄마는 주체못할 바람끼에 아들을 나몰라라 합니다. 삐뚤어지기 딱 좋은 환경에서 자란 쥰페이는 기대도 희망도 없이 살다 물이 땅으로 스미듯 자연스럽게 야쿠자의 세계로 들어오게 됩니다.

 

 

 

쥰페이는 겉으로는 불량한 기운을 뿜고 다니나 실제로는 정에 약하고 정의감도 있어 가부키초 밤의 여인들에게 꽤 귀염을 받습니다. 어느 날 조직의 오야붕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집니다. 상대 조직의 간부를 권총으로 죽이고 10년 옥살이를 하고 오라고 합니다. 그러고 감옥에서 나오면 조직에서 좋은 자리를 하나 주겠다고 말이죠. 어리바리한 쥰페이는 아무 생각없이 흔쾌히 승낙합니다.

 

 

 

근데, 원나잇스탠드로 만난 한 아가씨가 이 계획을 듣고는 사연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말릴 방법을 알려주세요~~ 하고 말이죠. 인터넷은 난리가 납니다. 쥰페이의 이야기를 들은 무수한 사람들의 댓글로 뜨거워집니다. 누리꾼들은 쥰페이를 말리기도 하고 격려하기고 하고, 자극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쥰페이 다시 생각해! 라는 댓글이 제일 많습니다(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그를 말리는 157번째 댓글은 이러합니다.

 

 

 

# 157.

21세의 쥰페이 군이 앞으로 10년 동안 할 수 있는 것. 히치하이크로 세계 일주. 자전거로 세계 일주. 도보로 일본 일주. 선박 면허 따서 태평양 횡당. 등산가가 돼서 세계 3대 봉우리 등정. 권투 도장에 다녀서 프로가 되어 세계 챔피언 타이틀 따기. 좌익 활동가가 되어 혁명을 일으킨다. 책을 많이 읽어 작가가 된다. 극단에 들어가서 연기자가 된다. 예능 프로덕션 요시모토에 들어가 연예인이 된다. 포르노 배우가 되어 1000명의 여자와 섹스를 한다. 일식집에 들어가 초밥 장인이 된다. 중국집에 들어가 볶음밥의 명인이 된다. 목수가 되어 자신의 집을 짓는다.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일군다..... 지금 생각을 바꾸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by 세계반점 (p.236)

 

 

 

감옥에서 10년간 옥살이 대신에 할 수 있는 걸 이렇게 구체적으로 달았습니다. 그쵸, 10년이면, 그것도 20대 시절의 10년이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전거 세계일주나, 볶음밥 장인이나, 목수가 되는 것이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것이나 모두 평범?한 일입니다. 쥰페이가 맘만 바꿔 먹으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포르노 배우가 되어 많은 여자들과 응응을 하는 건, 참 부럽군요ㅋㅋ. 역시 성진국 일본다운 발상입니다.

 

 

 

누리꾼들은 댓글로 그 실행을 말리다가 그 중 몇몇은 직접 쥰페이를 만나보면 어떨까 하고 말합니다. 급기야 가부키초에 모입니다. 이 사람들, 참 대단합니다. 역시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435번째 댓글입니다.

 

 

 

# 435.

무작정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결국 5명이 모였어요. 모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쥰페이 군을 찾을 수가 없네. 분해요. 저의 무력함을 실감합니다. by 바다의 소녀. (p.320)

 

 

 

 

 

[헉, 약후방] 요건 보너스입니다ㅋㅋ. 이 소설은 일본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야나기 유리나입니다. 쥰페이의 사연을 올린 여인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우연히 검색하다 언니 사진이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사진을 올려버렸네요. 이노무 손꾸락을ㅎㅎ.

 

사진 출처 : https://zcos.tistory.com/193

 

 

 

결행을 하루 앞둔 저녁에, 예전 대학교수였고 남에게 보여지는 삶만 살아왔던 니시오 영감이 내 아이를 안아 보는 감동, 큰일을 성취한 기쁨, 부모의 임종을 지키는 슬픔, 오랜 벗과 밤새 얘기하는 정겨움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젊었을 땐 몰랐던 젊음의 가치에 대해서 말이에요. 위에서 '지금 생각을 바꾸면 10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누군가가 말했지만, 나는 10년 후에 뭘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질문을 바꿔 나에게 10년이란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 보낼까요? 니시오 영감이 말한 생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삶을 살까요? 10년 후에도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을까요? 나도 아직 젊은데....

 

 

 

어휴, 또 샛길로 빠졌네요. 요즘 병입니다. 잠깐만 틈을 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나저나 역시 오쿠다 히데오입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흠뻑 빠졌습니다. 쥰페이와 함께 신나고 외롭고 조마조마했습니다. 자, 쥰페이의 선택은 어떨까요? 온갖 난관을 뚫고 총구에 불을 뿜을까요? 아니면 며칠 동안 여러가지 일들로 세상이 좀 달라보이게 된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만의 선택을 할까요? 궁금하시죠? 하지만 안가르쳐줌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