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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편의점 '폐기'는 달고 맛났다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by Keaton Kim 2019. 4. 2.

 

 

 

편의점 '폐기'는 달고 맛났다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 1.

 

 

 

"아빠. 나 핵인싸에여. 친구 완전 많아여!"

"응, 그래? 좋겠네. 아빠는 완전 아싼데.ㅋ"

 

 

 

중학교에 들어간 막내가 자랑을 했다. 학교 생활이 즐거운 모양이다. 저렇게 자랑까지 할 정도면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류에 들어가겠지.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주류에 끼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그냥 어울리는 게 싫어서 일 수도 있을테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과는 별개로 혼자 노는 친구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미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친구가 있구나 하고 그냥 냅두던가. 니편 내편 나누어 따돌림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 2.

 

 

 

일본에서 편의점 알바를 6개월 정도 했더랬다. 그것도 시급이 아주 높은 야간 알바를. 계산하고, 청소하고, 물건을 진열하고, 새로 들어온 물건에 바코드를 찍고, 뭐, 그런 일이다. 편의점 알바의 장점은, 특히 야간 알바는 '폐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모두 회수해 놓는다. 그러면 아침 퇴근할 때 점장이 한 봉다리 담아 준다. 아마도 가난한 유학생인 나를 측은히 여겼을 것이다. 그 '폐기'는 달았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편의점에서 만화책을 비롯한 책과 잡지를 파는데, 그 중에는 아주 야한 책(잡지와 만화)도 있다. '썬데이 서울' 정도는 잽도 안되게 야한 잡지를 매대에 진열해 놓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서서 그 잡지를 읽는다. 한가할 때면 나도 가끔 읽었는데, 핥핥핥..... 이런 걸 버젓이 팔고, 남 눈치 보지 않고 읽는 사회. 오올ㅋ, 이 동네! 참 신기했다. 울나라에도 도입이 시급하다.

 

 

 

 

일본 편의점의 책 매대 수준. 온갖 잡지가 다 있다. 잠 못드는 밤이면 저기서 야한 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더랬다. 물론 일본어 공부도 쏙쏙되고. 이게 일석이조의 모범. 편의점은 오아시스다. 도시 한 가운데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 3.

 

 

 

사람이 자유의지를 잃어버리고 사회의 한 부품으로 사는 것은 불행한 것으로 배웠다. 실제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18년 동안 편의점의 점원으로 인생을 보낸 후루쿠라는 어떨까. 잠을 자는 것도 밥(책에서는 '먹이'라 표현했다.)을 먹는 것도 모두 점원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녀의 모든 생활은 편의점 점원이라는 역할에 맞춰져 있다. 편의점의 부품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불행은 커녕 썩 만족하며 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주위 사람이 보는 후루쿠라는 그렇지 않다.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없이 편의점 알바로 겨우 연명하는 여자. 이쪽 편에 선 사람들은 저쪽에 있는 그녀를 이상하게 본다. 그냥 보는 것으로 끝내면 다행이지만, 이쪽 편으로 당기기 위해 여러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 주류에 낄 수 있게 배려하는 동생의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그런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사실 편의점 점원으로 살아가는 게 사람들에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나름 잘 살고 있는데 왜들 이러시나.

 

 

 

그런데 이 상황, 기시감이 든다. 어른들이 잉여라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하는 행동 그대로이지 않은가.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깍고 다듬는.

 

 

 

 

 

# 4.

 

 

 

"편의점에서는 누구나 인간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모자란 사람, 잘난 사람 상관없이 편의점 직원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다면 누구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의점이 되레 편했습니다."

 

 

 

이 소설로 상을 받을 당시에도 편의점 알바를 했다는 작가의 인터뷰다. 편의점이라는 아주 조그만 사회라도 쓸모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사회의 부품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네 상황. 이제는 부품이라도 나름의 쓸모가 있다면 그것으로 인정받고 의미를 찾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편의점 인간으로는 쓸모가 많은, 그러나 주류에서 보면 사회 낙오자인, 하지만 사회에 폐가 되지 않고 나름 잘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을 응원해야 하나? 아니면 나도 충고라도 해 주어야 하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냅둘까? 이 소설의 주인공 후루쿠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좀 과장된 사회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그나저나 시라하와 게이코의 저런 동거도 가능한가? 울 나라에서는 어려운 얘긴데.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매 번 느끼지만, 저쪽 동네가 우리보다 좀 더 다양한 종족들이 산다.

 

 

 

 

# 5.

 

 

 

핵인싸라고 자랑하는 막내 아들과는 달리 나는 아싸다. 예전에는 조직의 주류에 들어가기 위해 억지로 끼어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주위에서 머라고 한다. 너무 혼자만 놀지 말고, 좀 섞이라고. 솔직히 말해 그들과 함께 노는게 재미 없다. 재미 있으면 당연히 함께 놀지.

 

 

 

"야, 놀기 싫은 사람들과 함께 섞여 비위 맞추고 노는 것도 사회 생활이야!"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근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갈께. 굳이 이쪽 저쪽 편가르기를 안해도 되잖아. 있는 그대로 사는 거지 뭐.  

 

 

 

 

근데, 편의점 얘기를 하다보니 옛날의 그 편의점 '폐기'가 생각나누만. 그 달고 맛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