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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악의 평범성,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by 개락당 대표 2019. 4. 27.

 

 

 

악의 평범성,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케이트 윈슬렛이 나오는 이 영화를 본 건 몇 년 전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봤더랬다. 몇몇 장면, 예를 들면 케이트 윈슬렛의 아찔한 뒤태라던가, 유대인 포로 수용소의 적막감과 쓸쓸함, 여주인공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충격적인 결말 등은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꽤 인상적인 영화였다. 우연히 서점 매대에서 이 책을 만났다. 얼마 전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 공부하다가 어느 블로그가 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보다 이 책이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문장이 생각났다. 책을 손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등 뒤에서 타월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는 문질러서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러나 나더니 타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가 내 몸에 밀착해 왔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나의 등에 그리고 그녀의 배를 나의 엉덩이에 느꼈다. 그녀 역시 알몸이었다. 그녀는 양팔로 나를 휘감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나의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빳빳해진 나의 성기를 어루만졌다.

 

 

"바로 이것 때문에 너는 여기 온 거야!" (p.37)

 

 

 

그래,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그녀 한나. 그들은 함께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소년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그녀의 이 도발적인 행동이 책에서는 이해가 되었다. 한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가족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단순한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삼십대 중반의 여성은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했다. 

 

 

 

소년을 어땠을까. 사춘기 시절의 철없던 열병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책 읽어주기, 샤워, 섹스, 잠시 누워 있기, 이 행위들은 신성한 의식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단지 육체적인 사랑만 있었다면, 몇 개월간의 뜨거움이 그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며 그녀가 자신의 몸 위에서 잠이 들 때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해당자 선별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지요?"

"여섯 곳에서 각 10명의 수감자를 뽑았습니다."

 

 

"당신들 중 누구도 뒤로 빼지 않고, 모두 함께 행동했습니까?"

"네."

 

 

"당신은 당신이 수감자들을 죽음으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왔고, 이전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자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당신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은 후송돼서 죽어야 해'라고 말했나요?"

"그러니까 저는..... 제 말은..... 하지만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p.144)

 

 

 

유대인 여성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고, 수백 명의 죽음을 방조한 죄를 묻는 판사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수용소가 비좁았고 새 수감자들이 계속 들어왔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것이 자신들의 할 일이었다고 항변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증거로 인용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즉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유의지에 따라 과잉처벌을 받아들인다.

 

 

 

아이구 답답아!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른 감시원의 죄까지 모두 뒤집어쓰는 상황에서 자신의 문맹이 밝혀지는 게 무슨 그리 큰 치부라고. 그리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볼 수 없어서 뭐라 말을 할 순 없지만, 아주 나쁜 넘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인줄 알았다. 한나 슈미츠처럼 순수하고 품위가 있는 보통 사람에게도 이 테제는 적용된다. 사유하지 않은 죄, '악의 평범성'은 아주 무서운 말이구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말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책꽂이 앞으로 다가갔다. 프리모 레비, 엘리 비젤, 타데우시 보로프스키, 장 아메리(프리모 레비부터 장 아메리까지 모두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강제수용소를 경험하고 살아남았던 유대계 작가들이다) 등 희생자들이 쓴 글과, 그 옆에는 루돌프 회스가 쓴 자서전적인 글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보고서 그리고 강제수용소에 대한 학술적인 글들이 있었다.

 

 

"한나가 이것들을 다 읽었나요?"

 

 

"그녀는 적어도 이 책들을 신중하게 주문했어요. 나는 여러 해 전에 그녀를 위해서 강제수용소를 다룬 서적들의 총목록을 구해주어야 했어요. 슈미츠 부인은 읽는 법을 배운 뒤로 곧장 강제수용소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p.256)

 

 

 

한나가 출소 바로 직전 자살을 하고, 미하일이 한나가 수감되어 있던 방에서 교도소장과 나눈 대화다. 한나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후, 자신이 나치의 감시원으로서 했던 일에 대해 복기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정체를 뒤늦게 감옥에서 깨달았다. 충분한 감옥 살이로 그녀의 죄는 다 씻겨졌지만, 그녀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자살로 자신의 마지막 품위를 지켰던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겠지만, 사유할 수 있게 된 그녀의 선택인 자살에 수긍이 갔다. 정치인 노회찬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녀가 남긴 여러 유품들 중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상장을 받는 자신의 사진을 본 미하일은 눈물을 삼킨다. 미하일에게 한나가 일생의 사랑이었듯 한나도 미하일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사랑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소설은 역사와 정치, 그리고 철학을 거쳐 다시 사랑으로 이야기는 돌아왔다.

 

 

 

위희 모든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책을 읽자마자 다시 영화를 찾아봤다. 전에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영화 속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꿈틀거렸으며 그 의미들이 마치 용수철처럼 내게 튕겨왔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책을 읽을 때의 상상력을 영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책 읽어주는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책과 영화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남녀의 사랑이 아픈 역사와 엮이면서 그 사랑은 버려지고 꺾이면서 그 형태가 변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 속에 살아남아 았다. 아, 이 먹먹하고 아련함이라니.  

 

 

 

한나와 미하일의 사랑의 울림에 부딪혀 나는 멍이 들었다. 한동안 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