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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시스티나 성당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by 개락당 대표 2025. 5. 9.

 

오늘 새벽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추기경단의 비밀 회의인 콘클라베 둘째날에 제267대 교황이 선출되었다. 선거인단의 수석 추기경은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하베무스 파팜 - 우리에게 교황이 탄생했다 - 을 외쳤다. 페루에서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새 교황이 되었다. 즉위명은 레오 14세다.

 

 

잘 지내보자고 인사하시는 새 교황. 그래요, 잘 지내보아요. 사진 출처 : https://m.kukinews.com/article/view/kuk202505120006#_enliple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善終,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죽음을 뜻하는 말)하셨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그 착하게 생기신 얼굴이 인상적이었고,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직접 오셔서 유족들을 위로하셔서 우리에게도 친근한 교황이었다. 늘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푸근한 할아버지였다.

 

막상 교황이 돌아가시니 당신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이루어지는도 궁금했다. 먼저 영화 <두 교황>을 찾아봤다. 영화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 성향을 지닌 프란치스코가 만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대립하지만, 이해와 포용으로 이를 극복한다는 이야기다. 

 

교황은 한번 뽑히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럼에도 베네딕토 16세는 스스로 물러났는데(역대 교황 중에서도 세 번 밖에 없다고 한다. 앞 선 두 번은 교회의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했던 것이니 자발적 퇴임은 처음이다), 그 이유에 대해 영화는 보여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에서 활동을 하다 어떻게 교황이 되었는지도 잘 나와 있었다.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 두 거장의 연기가 빼어났다. 영화 마지막 쿠키 영상에 두 교황의 나라인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결승을 나란히 보는 장면이 나온다. 보는 나도 즐거웠다.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pdbak/223802643267

 

실제 교황인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트 16세. 베네딕트 16세는 2013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임하시고 2022년에 선종하셨다. 거의 10년을 더 사신 걸 보면, 물러난 이유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게 맞는 듯.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pdbak/223802643267

 

 

콘클라베는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를 말한다. 라틴어의 cum(함께)와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클라비에서 나왔다.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데, 시스티나 성당에서 문을 잠그고 그 안에서 선거를 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출퇴근을 하면서 투표를 했다는데, 그게 이삼 년이 걸릴 때도 있어서 주변 주민들이 밥 해먹이기 너무 힘들어 문을 잠궜고, 그래도 선출이 안되면 밥과 물을 점차 적게 넣어줬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현명하다.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사람은 80살 이전의 추기경이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133명이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도 계신다. 그런데 투표 방식이 독톡하다.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가 후보다. 133명 모두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3분의 2이상 득표해야 되는 극한의 조건이다. 이게 된다고? 

 

그런데 이게 몇 번만으로 끝이 난다. 보통 네다섯 번으로 선출된다. 엉?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합종연횡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거 아냐? 몰아주기도 나오겠지? 그 콘클라베의 과정이 궁금했다. 음모와 모략과 야심이 섞인 최고의 비밀 투표 과정. 이번에 그런 과정을 담은 영화가 나왔다고 막내가 알려줘서 찾아보니 벌써 극장에 내려갔다. 아쉬워서 그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을 사서 읽었다. 

 

 



 

책에는 역시 상상했던 음모들이 가득했다. 교황이 되기 위한 추기경들의 어둡고 추악한 모략들이 나왔다. 물론 교황이 되기 싫어하는 추기경들도 있었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추기경도 나온다. 숨막힐 듯 스펙타클한 반전의 반전....까지는 아니지만, 꽤 흥미롭게 읽었다. 콘클라베를 통해 후보들이 어떻게 압축되어 가는지도 잘 표현되어 있었다. 

 

책을 다 읽으면서 드는 의문점은 크게 두 가지다.

 

1. 교황은 카톨릭이라는 종교의 지도자일 뿐인데 우리는 왜 열광하나?

2. 교황을 뽑는 추기경은 왜 죄다 남자들뿐인가? 

 

그치, 세계 불교의 대빵, 대빵 부처는 못들어봤다. 이슬람의 왕도, 카톨릭이 아닌 그냥 기독교의 대장도 들어보지 못했다. 유독 교황만이 주목을 받는다. 좀 찾아보니 교황이 세속의 일들에 대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다른 종교는 몰라도 교황은 세계의 여러 이슈에 대해 발언도 하고 참견도 하고 위로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실천하셨다.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인데, 책에 나온 여자들, 즉 수녀의 역할은 콘클라베에 참여한 추기경들의 밥을 차려주는 부엌데기 정도였다. 거 너무한 거 아뇨? 기본적으로 여자는 사제(주교와 신부, 주교는 교황, 추기경, 대주교 등을 포함한다)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게 카톨릭에서는 뜨거운 논제인데, 실제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없고, 예전에 어떤 교황이 말했는데, 그걸 아직도 따른다고. 

 

하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추기경이 모두 남자인 것은 좀 심하다. 프란치스코가 교황이 된 이후,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권위주의가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해결은 간단하다. 교황이 "이제부터는 여자도 사제가 될 수 있어." 이 한마디면 된다. 책의 마지막 반전은 이 주제와 관련되어, 작가가 바라는 바티칸의 개혁과 개방이라는 희망의 상징이 담겨있다.   

 

 

콘클라베가 이루어지는 시스티나 성당. 성베드로 성당의 오른쪽에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성당이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고, 천정에는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는, 어마무시한 성당이다. 영화 <두 교황>의 한 장면 중에 시스티나 성당에서 두 교황이 밀담을 나누는데, 시스티나 성당이 잘 나온다. 사진 출처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5/05/07/PZUD3DRN7ZHRNF5GCBLUWQIN3Q/

 

콘크라베 기간 동안 추기경들의 숙소를 쓰이는 '성녀 마르타의 집'. 예전에 콘클라베를 하다가 잠 자는 게 너무 불편했던지 이래선 안되겠다고 새로 지어 1996년에 완공했다. 성베드로 성당 왼쪽에 있다. 사진 출처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5/05/07/PZUD3DRN7ZHRNF5GCBLUWQIN3Q/

 

참고로, 550년 동안 비워져 있던 성베드로 성당의 외벽에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2023년에 설치되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모습이 멋지다. 이는 지금 유흥식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졸라서 성사되었다. 특히 우리 조각가가 만들어야 한다고 우겼다고. 추기경님 만세, 김대건 신부 만세다. 사진 출처 :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65

 

 

교황 자리에 대한 야망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추기경들이 책에 나왔지만, 실제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교황은 한번 뽑히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힘든 자리다. 세속적 쾌락은 아얘 없고, 검소한 생활에 하루 15시간의 과도한 업무다. 더우기 전임 교황이 그토록 잘했던 프란치스코다. 이쯤 되면 밈에 떠도는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이 사실일 것 같다.

 

이번에 뽑힌 레오 14세는 추기경들 중에서도 신참이자 막내 라인이다. 추기경들이 막내를 내세워 자기 생애 두 번의 콘클라베는 없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느껴진다. 콘크라베를 마치고 나온 다른 추기경들의 환한 미소가 이를 반증한다. 우리 유흥식 추기경이 가장 환하게 웃었다. 얼쑤 신난다. 이제 집에 간다. 

 

콘클라베는 어찌보면 가장 민주적인 선거 방식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합종연횡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추기경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분들이니 그 속에서 포용과 관용으로 합의점을 잘 찾아냈다. 소설과 현실에서 모두. 레오 14세도 앞선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위로를 전해주는 교황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