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총기 사건, 그리고 그 후... :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 책에 담긴 궁극적 메시지는 충격적이다. 내 자식을 내가 모을 수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자식을 아는 게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렵게 생각되는 낯선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나 딸일 수 있다. (p.11)
미국 콜로라도의 리틀턴의 평범한 환경에서 자란 고등학생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유쾌한 형과 같이 놀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400달러 짜리 중고차를 사서 아빠와 함께 고치기도 하였고, 장애 학생을 돕은 직업을 가진 엄마와 함께 요리도 즐겨 했습니다. 리틀 야구단에서 투수로도 뛰었고, 컴퓨터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도 합격하여 미리 자기가 다닐 대학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내성적이긴 하지만 독립심이 강했고, 어떤 규칙이 왜 필요한지 납득을 하면 대체로 늘 따르는, 신경 쓸 일이 별로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이름은 딜런 클리볼드입니다. 1999년 4월 20일, 딜런 클리볼드와 친구 애릭 해리스는 자신이 다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 총과 폭탄으로 무장을 하고 갑니다. 그리고 900여 발의 실탄을 난사하면서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힙니다. 그리고 둘은 도서관에서 자살하였습니다.
1991년에 찍은 수 클리볼드의 가족 사진이다. 왼쪽 늘씬한 여인이 저자이며 그 옆이 큰 아들 바이런, 그리고 남편 톰이고, 남편 앞에 있는 꼬마가 막내 아들 딜런이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딜런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그로부터 8년 후 세상을 경악시킨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살인범이 된다.
사진 출처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86084&code=13150000&sid1=cul
책의 저자는 수 클리볼드입니다.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입니다. 콜럼바인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아들이 무사하기만을 바랬고, 아들이 총격 사건의 살인범임을 알았을 때, 아들이 죽기만을 빌었습니다. 총격 사건 이후 평범했던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아들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 슬픔을 드러낼 수도 없는 가해자의 엄마, 세상의 모든 비난을 받는 살인자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그녀의 삶과 정신은 살아 들끓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저자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그런 비극을 예감할 만한 일이 가족의 삶에서 단 한가지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십대들에게 흔히 있는 술이나 마약, 게임, 여자, 마리화나에 중독된 적도 없었고, 부모 속을 썩힌 적도 없던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이 좋은 엄마라고 느끼게 해 주던 딜런이었습니다.
그토록 끔찍한 일을 실행할 정도면, 그리고 이토록 친밀한 모자 사이였다면, 아들의 모습에서 어떤 조그만 실마리라도 눈치를 챘어야 된다는 자책을 끊임없이 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던 17년 동안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그 처절한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은 바다위로 보이는 빙산일 뿐이다. 바다 아래쪽에 잠겨 있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부분인 아이의 다른 모습은 내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이토록 슬픈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아이를 대하는 첫걸음이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 부모가 키우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마을의 친구, 마을의 친구 부모님, 마을의 선생님, 마을의 상점 아저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의 부모이지만, 마을의 친구 부모가 되고 마을의 선생님이 되고 마을의 아저씨도 된다.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과 거스 밴 샌트 감독의 <엘리펀트>가 그렇다. 특히 엘리펀트는 샌트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고 까지 평해지며 칸 영화제에서 상도 탔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이 특히 사랑하는 작품으로, 21세기 최고의 영화들 중 한편이라고....
이 책도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충격적이다. 숨이 막혀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딜런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해서 딜런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한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 데 (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p.309)
이해할 수 없는 일(악마가 된 아들)을 이해하려고 16년 동안의 시간을 바칩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들과의 아름다운 시간을 반추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전혀 몰랐던 비디오 속의 괴물과 같던 아들이 머리속을 떠나가지 않습니다. 아들을 생각하는 것은 추억이자 고통입니다. 그 피눈물의 시간을 거쳐 저자는 아들의 죽음이 자살이었음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시작한 딜런의 문제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치겠다는 욕구로 이어졌고, 살인은 자살의 한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실타래가 마침내 풀렸습니다.
"좋은 부모라면 마땅히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알죠." 근데 수 클리볼드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아이의 상태를 몰랐던 걸까요? 저자가 가장 아파했던 말입니다. 저 말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저자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은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착각입니다.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아이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얼굴 뒤에 숨은 내면을 보려 애쓰고, 아이의 허물을 낱낱이 읊기보다는 아이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고통을 그대로 인정하고, 한번이라도 아이를 더 안아주어야 합니다. "나는 아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당신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찌르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백발의 초로가 된 저자 수 클리볼드의 모습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지옥과 같았던 지난 시간을 견뎌온 자취가 느껴진다. 현재는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 예방에 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유튜브에 그녀의 최근 인터뷰 동영상(abc News)을 봤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인터뷰 도중 그녀는 계속 울었다.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며 아들에게 미안해했다.
그녀는 총격 사건 이후에도 계속 같은 직장에 다녔고, 같은 집에 살았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준 이웃이 있었다. 총격 사건도 충격이지만, 이 사실도 충격이었다. 미쿡은 미쿡이다.
책은 의외로 담담합니다. 아니 담담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담담함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고요한 슬픔과 아득한 절망과 처절한 시련과 싸늘한 분노와 치열한 자책과 뜨거운 사랑이 저 너머에 이글거립니다. 책의 완성은 오직 수 클리볼드입니다. 그녀는 이 모든 비극을 뛰어 넘어,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타인들에게 알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남은 생을 바칩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숭고함에, 삶의 경건함에, 인간의 위대함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가 다같이 키운다고 생각하면 불안과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 속에서 이기적인 육아에 빠지지 않고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고통과 상처를 삼켜 흡수하여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가 없다면 우리의 실존은 너나 할 것 없이 위태롭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던 수 클리볼드가 다시 살아나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공동체의 복원력 덕분이었다.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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