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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친밀한 관계속의 거대한 폭력에 관한 보고서 :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

by 개락당 대표 2017. 2. 6.

 

 

 

친밀한 관계속의 거대한 폭력에 관한 보고서 :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

 

 

 

인류는 가족 제도의 응원 속에 한 인간이 '아내'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그녀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를 건설해 왔다. 그것을 사소한 문제, 탈정치적 문제로 치부해 왔고 철저히 비가시화했다. 남성 문화는 자기가 '정복한' 여성은 구타해도 된다고 약속했다. 오랫동안 남성과 여성의 섹스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고 소유되는 절차였다. 부부 강간이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다. 가정 폭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폭력이다. (책 머리말)

 

 

 

이슬람 여성들은 언제 어디에서도 무슬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녀들의 독특한 의상 덕택입니다. 옷의 주 목적은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는 데 있습니다. 머리에 써서 가슴까지 가리는 히잡, 얼굴과 손을 드러내고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 눈만 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리는 니잡, 그 눈마저도 모두 가리는 부르카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슬람의 여성이 어떤 정도의 의상을 입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녀의 남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의 전통 의상은 문화이자 억압이며, 저항이자 자존심입니다.

 

 

 

보기에는 이슬람보다 훨씬 개방적인 사회인 한국에서는 어떠할까요? 아내와 남편은 가정 내에서 동등하게 서로 보듬고 협력하는 존재일까요? 이 책,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는 한국 사회의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하며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내 폭력'에 대해 낱낱히 파헤칩니다. 모두가 쉬쉬하며 밖으로 내보이기를 꺼려했던 사실에 대한 폭로이며, 그렇기에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남편의 폭력, 얼마나 심각한가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3자가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더욱이 그것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 폭력'은 곪고 곪아 그것이 가장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으로 터져야 주위 사람들이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합니다. 지난 1년간 10명의 남편 중에 적어도 3명 이상이 아내를 한번이라도 폭행한 적이 있다고 밝힙니다. (p.41)

 

 

 

'맞을 짓'을 한 아내와 '때릴 권리'를 가진 남편

 

 

저자는 가정 폭력을 "아내가 가족 내 성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남편이 판단할 때, 남편이 임의로 수행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처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맞을 짓을 해서 맞는다는 전제는 아내도 남편도 모두 받아들이는 하나의 규범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맞을 짓'을 규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편이라는 점, 그리고 그 규정에 대해 사회도 동조한다는 점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남편이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남편을 '패는' 아내는 없다는 비유가 절실하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폭력의 공간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아내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는 가정에서 아내는 탈출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맞지 않고 살 인간의 권리'와 '가정에서의 어머니와 아내의 도리'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가 계속됩니다. 결혼을 한 여성이 구타를 하는 남편에게서 벗어나려면 그녀가 여태껏 이루어 온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주위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비난을 감내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폭력당하는 아내가 가정에서 어머니, 아내이기 이전에 사회적 개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이 글의 요지는, 모든 문제는 인권 문제라는 식의 당위적 선언이 아니다. '아내 폭력'이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려면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기본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피하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등 남성 중심의 공동체적 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개인성, 시민성을 획득하는 문제는 곧 가족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어 왔다. '아내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가족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중재가 요구된다. (p.249)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해 만든 가정 내 성폭력에 관한 공익 광고다. 성폭력 피해자의 46%가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문구가 충격적이다. 이 광고는 Saint Hoax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중동의 한 아티스트 작품이다.

사진 출처 : http://www.sainthoax.com/princestdiaries/ 

 

 

 

이 책은 여성학자 정희진이 석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쓴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2001)의 개정판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사례 연구와 면접, 상당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한 페미니스트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일방적 외침이 아니라 객관성을 담보한 연구 결과의 보고서입니다. 가정 폭력의 원인과 대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남성과 여성과의 권력관계, 그리고 나아가 그것을 인식하는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 대한 책입니다.

 

 

 

어느 시대든 어떤 사회든 여성은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시대를 통털어 여성의 지위가 가장 높아진 지금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전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것이 모르는 사람이 일으키면 사회 문제가 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애써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사실 그것이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데도 말이죠. 

 

 

 

이 책은 그런 고통을 당하는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일 뿐 아니라 아내를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남편, 아내에게 부당함을 느끼게 하는 어떤 종류의 폭력을 한번이라도 행사해 본 적이 있는 모든 남편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